등록 2026.08.29 15:07수정 2026.08.2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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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그림자처럼 까만 고양이가 산다. 털빛이 워낙 새까맣다 보니 집 안에서도 보호색을 띤 것처럼 종종 눈에 띄지 않을 때가 있다. 평소라면 간식 봉지를 뜯는 소리만 나도 부리나케 나타나는 녀석이 그날은 조용했다.
아무리 집 안을 샅샅이 뒤져도 녀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소파 밑, 쓰레기통 뒤, 높은 책장 위부터 냉장고 위, 베란다 구석, 심지어 세탁기와 에어컨 실외기 뒤쪽까지 평소 즐겨 찾던 은신처를 모두 확인했지만 어디서도 고양이를 찾을 수 없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에도 잠깐 문이 열린 틈으로 집을 탈출한 적이 있었던지라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 보았다.
지난번에 한 번 탈출을 시도했을 때 아래층 아파트 계단 구석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기에, 아파트 계단을 층층이 오르내리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나 건물 안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아예 밖으로 나간 것일까? 길고양이 시절에 자주 머무르던 곳을 샅샅이 뒤지고, 심지어 주차된 자동차 아래까지 엎드려 들여다보았지만 녀석의 까만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실연당한 여자처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집 안에도, 밖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처음 녀석을 길에서 데려왔을 때, 나는 누군가 이 예쁜 아이를 매몰차게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자기 발로 집을 나온 걸 거야'라고 애써 합리화했었다.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텅 빈 집을 보며 '역시 네 발로 다시 나간 거구나' 싶어 배신감마저 들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마치 연인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것만 같았다. 바닥에 뒹구는 고양이 장난감을 집어 들고선 "이 장난감 제일 좋아하던 건데"라며 청승을 떨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실연당해 세상 다 산 것처럼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이별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홀로 깊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한동안 망연자실하게 있다가 터덜터덜 주방을 서성이는데, 살짝 열려 있던 싱크대 하부장 서랍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두컴컴한 서랍 안쪽에 까만 물체가 눈만 반짝거리며 웅크리고 있었다. 녀석이었다.

▲ 싱크대 서랍 안쪽을 잘 살펴보면 까만 물체 속에 동그란 두 눈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유현주
애가 타서 밖을 뛰어다니며 이름을 부를 때도, 장난감을 붙잡고 오열할 때도 녀석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마치 이 완벽한 은신처에서 숨바꼭질을 즐기며 '날 찾아보시지' 하고 득의양양해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얄밉고 원망스러우면서도, 무사히 집에 있어 주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너 왜 거기 들어가서 사람을 이렇게 놀래켜!"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녀석에게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녀석은 그저 영문 모르겠다는 듯 동그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까만 고양이 집사들의 남모를 고충, 그리고 빨간 체리 스카프
한바탕 숨바꼭질 대소동이 끝난 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터넷에 '검은 고양이 키우는 고충'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나 같은 집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바닥에 벗어 둔 까만 잠바와 헷갈려 밟을 뻔했다는 사연부터, 캄캄한 밤에 허공에 둥둥 뜬 눈만 번쩍거려서 기절할 뻔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까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서도 녀석들을 쉽게 구별하기 위해 목에 야광 목걸이나 밝은색 스카프를 채워 준다고 했다. 그 사실이 웃프게 다가오면서, 우리도 녀석을 위한 작은 표식을 하나 준비하기로 했다.
며칠 뒤, 온 가족의 애간장을 태운 대가로 녀석의 목에 스카프 하나를 채워 주었다. 까만 털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하얀 바탕에 탐스러운 빨간 체리가 달린 귀여운 스카프였다.

▲ 하얀 바탕에 빨간 체리 무늬가 그려 있고,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체리 방울이 포인트다.
유현주
스카프가 불편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녀석은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하얀 체리 스카프를 뽐내며 온 집안을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다.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어도 이제는 빨간 체리가 먼저 반짝하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실연당한 듯 오열했던 집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체리 스카프를 두른 까만 녀석은 오늘도 집안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평화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시는 이런 숨바꼭질로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며, 주방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서랍 안을 한 번씩 들여다보곤 한다. 못 말리는 우리 집 고양이와의 우당탕탕 일상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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