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청령포 육지속의 섬같은 지형이라 강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청령포.
전명원
나는 사실 여러 해 전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를 다녀온 기억이 있다. 지금처럼 영화로 유명해지기 전의 청령포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마당과 그 마당을 향해 기울어 자라는 소나무들을 오래 바라보다 돌아왔었다.
그랬던 청령포가 영화로 유명해진 이후 날이면 날마다 관광객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흥도가 그리 바라던 광천골의 '당나귀 행렬'이 이제라도 이뤄진 것일까 싶은 사진을 보면서 남다른 기분이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촬영지를 궁금해하는 남편과 다시 한번 청령포를 가보리라 맘 먹었지만 그 인파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봄을 지나고 이제 여름의 끝자락쯤에 와 있는 지금쯤이라면 당나귀 행렬이 멈추지 않았을까 싶은 기대로 길을 나섰다.
8월 말이 가까워 아침저녁의 더위는 다소 식었고, 평일이었으니 한가할 것이라 예상했다. 여러 해 전의 기억만 가지고 방문한 청령포는 그새 사뭇 달라져 있었다. 허허벌판 같던 주차장엔 이런저런 시설과 안내판이 많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산할 거라는 내 기대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너졌다. 8월 말의 남은 더위, 그리고 평일임에도 여전히 당나귀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표는 유인 매표소 외에 키오스크로도 구매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3000원이며, 거기엔 청령포로 건너가는 뱃삯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 청령포는 육지 속의 섬이라는 말처럼 섬이 아님에도 배로 건너가야 하는 곳이다. 직접 와서 보면 왜 이곳이 유배지로 적합한지 영화 속에서 열변을 토하던 촌장 엄흥도의 대사들이 공감 간다.
평일이었으나 건너가는 배도 기다려서야 탔다. 한 대만 왔다갔다 하던 예전과 달리 몇 대의 배가 보였는데도 그랬다. 푸른 강을 배가 나아간다. 헤엄쳐서 건널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주변 다른 관광객들의 웃는 소리처럼 배는 금방 건너편에 닿는다.

▲단종어소 1996년 홍수로 유실후 복원되었다는데 다소 아쉽다.
전명원
청령포에선 단종어소와 관음송, 망향탑, 노산대등 단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단종어소는 1996년 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했다고 하며, 옆으로 궁인들의 행랑채가 있다. 단종어소가 너무 번듯한 기와집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궁인들의 행랑채를 들여다보며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니 여러 해 전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단종어소 뒤편으로는 단종이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했다는 관음송이 있고, 망향탑, 노산대 뿐 아니라 단묘 유지비, 금표비 등이 있어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청령포를 가득 채운 소나무들이 인상적이어서 천천히 그사이를 걸었다. 나보다 영화에 더 감동을 받아 여러 번 이야기 하던 남편이 말했다. "이 소나무들은 다 봤겠지?"
그 말대로 단종어소를 둘러싼 소나무 숲은 아마도 기억할 것이다. 특히 관음송은 600살이 넘은 노거수라고 하니 단종의 슬픔을 보고 들어 '관음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이해가 간다. 문득 우리 주변의 오래된 것들, 그러니까 돌이나 나무를 생각하니 그것들이 말로써 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순간을 봐 왔을 것인가 싶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관음송 단종어소 뒤편의 수령 600년이 넘었다는 거목이다
전명원
청령포의 소나무 숲을 벗어나, 단종어소를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다. 남쪽은 기암절벽과 산으로 막히고, 나머지 세 방향은 강이니 배로 그 강을 건너지 않고는 나갈 방법이 없는 이 자리가 어쩐지 아득해졌다. 풍경은 더할 나위 아름답지만 그건 관광객이니 당연하고, 모든 것을 잃고 그나마 지금의 삶조차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함으로 가득한 어린 왕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영화 속 어린 단종의 말을 떠올리며 먹먹해하고 있을 때쯤, 건너편에서 배가 가까이 다가왔다.
운영시간 오전 9시~ 오후 6시
(오후 5시 입장 마감 /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다음 평일 휴관)
입장료 성인 3,000원 청소년/군인 2.500원 / 어린이 2,000원 / 경로 1,000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며, 글을 씁니다. 나름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