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종 열사를 기리는 공간 입구
여경수
27일(목요일)에는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동남아학회의 연례학술대회에 참석했다. 내가 발제한 주제는 동남아시아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전북대학교 학생회관을 다녀왔다. 이곳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어, 그곳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전두환 세력의 내란 행위가 시작되자, 18일 새벽 계엄군이 전북대학교에 진입하면서, 전북대학교에 있던 이세종 열사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주검으로 발견된 장소에 그를 기리는 공간이 있다.
오후 학회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는 전주시에서 진행한 답사행사에 참석했다. 전주시는 오는 10월 11일까지 매일 오후 7시 '소소하지만 다정한 여름밤 이야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가비는 없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답사는 매일 오후 7시 경기전 매표소 앞에서 출발하며,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해 전주의 문화를 설명해 준다. 코스는 매일 2개 노선이 번갈아 운영된다.
나는 목요일과 금요일 각각 참석했다. 이번에 계획된 코스에 모두 참석한 셈이다. 우선 목요일에 진행된 답사길은 경기전 광장에서 전동성당, 풍남문을 지나 웨딩의 거리를 거쳐 전라감영으로 이어지는 경로이다. 나는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경기전 앞에서 기다렸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전주는 이성계 선조들의 고향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조선의 본향으로 인식했다. 이성계 가문의 시조가 전주에 터를 잡고, 대대로 전주에서 거주했다. 다만 4대조 위의 선조가 삼척으로 이주하고, 다시 동북면으로 이주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전주를 그 뿌리로 여겼다.
전주객사의 이름이 풍패지관인 것도, 한나라 고조의 본향이 풍패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전주읍성의 남문인 풍남문도 그러한 연유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마침 내가 묵은 숙소의 이름에도 '풍남'이 들어갔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제과점이 전주 시내에 있었다.

▲ 전라감영 야경
여경수
풍남문을 거쳐 전라감영으로 들어서니, 조명이 비쳐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구름 사이로 달빛까지 비추니, 옛 영화가 재현된 것처럼 보였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관찰사가 머물던 공간이다. 직무 공간인 선화당, 연회장소인 관풍루가 복원되어 있다. 선화당 뒤로는 내아와 행랑도 자리잡고 있다. 아직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부채를 만들던 선자청 터도 있다. 전주 관청에서 만들던 부채가 한양으로도 진상되었고,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도 전주를 관광하는 외국인들이 부채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전라감영에는 관찰사들의 선정비가 줄지어 있다. 그중 한 관찰사에 관한 야사가 전해진다. 그가 선암사 근처에 있는 마애불에 숨겨진 신비의 서적을 찾다가 번개가 쳐서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현세에 나타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개벽 사상이 있다. 야사 속 마애불의 신비로운 서적도 그러한 개벽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담고 있는 셈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이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관군과 화약을 맺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던 것이 바로 그러한 개벽의 한 모습이었다. 또한 1980년 내란 세력에 맞서 싸운 이들도 새로운 개벽을 열어가는 이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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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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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첫 사망자를 기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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