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토론장에 등장한 뜻밖의 글

그 어떤 글보다 가장 많은 공감 하트를 받은 시 한 편

등록 2026.08.31 11:07수정 2026.08.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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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때 그 주식 샀어요?"

오랜만에 만난 B에게 물었고 B는 아니라고 답했다. 다행이었다. 올봄 한창 주식에 들떠 있던 내가 주식을 하지 않던 B에게 전도하며 입문용으로 추천했던 종목이었다. 그때는 수익을 확신했었다. 하지만 현재 내 계좌가 마이너스란 말에 주식비관론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씩 보탰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게 주식이지"라고 대꾸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수익을 기대하며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오를 때는 더 오르기를 바라고, 내릴 때는 다시 오르기를 기다린다. 문제는 내가 확신했던 종목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고 고통스러워진다는 점이다. B가 사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무더운 여름이 뜨겁게 지나갔다. 새벽부터 경쟁하듯 울어재끼던 매미 소리도 사라졌다. 주식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올초의 호언장담이 한여름밤 꿈처럼 공허하다. 주식창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밤낮없이 울리던 휴대폰 알림 창 소란도 한풀 꺾여 조용하다. 매일아침 눈뜨자마다 컴퓨터를 켜고 주식창을 보던 시간이 먼 과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수익을 안겨줄 때는 장밋빛이었지만 마이너스인 지금은 장미 가시 같은 잔혹한 현실이다.

올해가 어떤 해인가. 사상 최초 코스피가 9000을 넘으며 너도 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시내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보는 고령 여성들의 십중팔구는 주식창이었다. 장래희망이 증권맨이라는 고등학생은 부모님에게 정식 허가를 받아 실제 주식매매를 한다는 소식도 들었고 방과 후 초등2학년이 쓴 동시에는 주식용어와 핫한 개별종목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주식열풍이었다. 나 역시 오전 8시 프리장부터 저녁 8시 넥스트장까지 주식열풍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22일 반도체 성장이 주도하는 코스피가 처음 5000을 넘으면서 코스닥 3000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나왔다. 나는 발 빠르게 코스닥 ETF에 투자했다. 잘만하면 금방 돈을 벌어 멋진 집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코스피가 오른 만큼 코스닥도 오를 거라 낙관했기에 B에게 추천도 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닥 낙관론엔 변함이 없었다. 매수한 코스닥 ETF 가 하락할 때마다 올라간다는 믿음으로 추매를 계속하며 비중을 늘렸다. 하락이 기회라고 생각해 예탁금도 가져왔다. 수익을 극대화 하려 새로운 계좌를 만들며 신규매수까지 했다. 그러나 바닥은 끝이 없었다. 결국 추매를 멈추었고 계좌는 한때 마이너스 50%를 기록하기도 했다. 손절과 추매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비중을 늘린 결과는 처참했다.


"요즘 주식이 아주 지랄이야 하나도 맞지가 않아 전문가들도 다 틀려" 하고 말하던 주식동지 Q와는 한동안 통화하지 않았다. 수익이 날 때는 매일 통화했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상황이 보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Q와 통화를 했다. 퇴근하면서 바람이 맑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 앉아 밤하늘을 본다고 했다.

나 역시 일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Q는 달빛이 맑다고 전해왔고, 나는 밤하늘을 보며 "이곳은 별 하나가 보여. 달은 구름 사이에 가려졌어. 달빛만 새어 나와"라고 답했다. 모처럼 바람이 시원한 늦여름 밤에 나눈 대화다. 주식통화만 늘 하다 맑은 밤하늘을 얘기하다니... 지금은 밤하늘에 풀벌레 소리도 위안이 되고 있었다.


Q는 신용을 썼다고 한다. 증권사 앱에 신용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쉽게 돈을 썼다고 하는데 신용은 한 달 안에 갚지 못하면 강제청산을 당한다. 반대매매, 즉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강제로 매매를 당하니까 개인은 물론 지수가 떨어지는 악순환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Q는 손실이 문제가 아니라 신용이 문제라고 했다. 요즘 주식 시장의 변동성은 예전과 다르기에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치가 소용없다. 중요한 건 손실을 만회하려는 마음이 또 다른 위험을 불러왔다는 사실이다.

신용을 썼다는 Q를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나 역시 신용은 아니지만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에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기는 투자 계약서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약한 그날밤부터 가슴이 쿵쾅거리는 불안증세를 겪었다.

고민끝에 결국 계약해지 요청을 했다. 신기하게도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편해졌다. 불과 일주일 만에 끝난 짧은 해프닝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중요한 건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를 얼마나 편하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 같다. 뭐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 숫자를 움직여야 하나 보다.

 수익을 안겨줄 때는 장밋빛이었지만 마이너스인 지금은 장미 가시 같은 잔혹한 현실.
▲ 수익을 안겨줄 때는 장밋빛이었지만 마이너스인 지금은 장미 가시 같은 잔혹한 현실. kellysikkema on Unsplash

주식을 하면서 느끼는거지만 주식은 여유돈으로 해야 마이너스 시장에서도 버틸 수 있다. 또한 급하다고 서두르면 안 된다. 얼마 전에는 초보때도 하지 않던 실수를 했다. 클릭을 서두르다 매도 매수를 착각해 손실을 봤다.

또 어떤 날은 금액과 수량을 잘못 표기했고, 절전모드 컴퓨터 화면을 켜려고 습관적으로 마우스를 탁탁 두 번 두드리다 원치 않는 매도를 하기도 했다.

어이없게도 그런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손실엔 한숨이 나온다. 주식 매매 시에는 확인, 또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고 컴퓨터 모드 사용 시에는 마우스 위치를 옮겨놓고 자리를 떠야 한다.

8월 30일 현재 코스피 6788선 코스닥 838선. 하루에도 급등락을 반복하며 널뛰기를 한다. 코스피, 코스닥이 반등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처럼 답답한 상황에서는 주식토론방을 자주 찾는다. 뜨겁고 차갑게 올라오는 실시간 토론을 보다보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된다.

'본전만 오면 두 번 다시 주식시장에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반성과 참회의 글, '다 같이 힘내자'는 응원의 글, 상황을 풍자하고 성토하고 비관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뜻밖의 글 하나를 발견했다. 모두가 울부짖는 가운데 '울지마라'며 등장한 그 글은 그 어떤 글보다 내 마음을 깊게 두드리고 있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과 외로움도 어쩌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지나야 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수선화에게>라는 시집 한 권을 구매했다.

주식시장이 언제 반등할지는 알 수 없다. 내 계좌가 언제쯤 본전을 회복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마음이 지칠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숫자나 수익률이 아닌 따뜻한 문장이 담긴 한 편의 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토론장에 등장한 어느 시인의 시는 그 어떤 글보다 가장 많은 공감 하트를 받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주가의 반등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는 하나의 '글'인지도 모르겠다.
#코스닥ETF #주식 #수익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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