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일 작고한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고 성수남(1949년생)씨의 빈소에서 또다른 피해자인 김복희 '열매(피해자 및 지원 모임)' 대표가 고인의 아들 김정남씨와 인사하고 있다. 2026. 08. 31.
소중한
"5·18 행방불명자들, 가족 만나게 해주자"
성씨는 2023년 8월 조사위에 성폭력 피해를 진술했다. 이후 2024년 8월 열매 결성부터 2024년 9월 국회에서의 증언대회,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 왔다.
조사위 보고서엔 항쟁 이후 성씨와 남편 김씨가 남은 생애를 5·18 희생자를 위해 바치자고 다짐한 점도 기록돼 있다. 김씨는 성씨에게 "우리는 5·18 때 죽었다 생각하고, 5·18 행불자들이 가족을 만나게 해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 다짐처럼 부부는 5·18 이후에도 가슴 한 켠에 희생자들을 품은 채 민주화운동에 힘을 보탰다. 성씨는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올 때 이 열사를 기다리다 지친 대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남매는 그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운구차가 최종 목적지인 망월동 묘역에 도착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던 운암동을 지나야만 했어요. 그때 운암 주공2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요. 우리 단지 앞에 잔디밭이 넓게 깔려 있었는데 그날 전남대·조선대 등 학생들이 거기서 이한열 열사를 기다렸어요. 학생들이 지쳐서 잔디밭에 드러눕기도 했는데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주먹맙을 만들어서 줬어요. 그 모습을 본 다른 이웃 주민들도 주먹밥 만들기에 동참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특히 학생들이 눈에 밟힌다고 했어요.
남매는 '광주특위 청문회(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아버지 김씨가 찍은 사진이 등장했던 기억도 꺼내놨다. 1988년 11월 열린 이 청문회는 헌정 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생중계된 국회 청문회다.
그때 야당 국회의원들이 5·18 사진을 내보이니까, 여당(5·18 중 내란목적살인을 저지른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속한 민주정의당) 측 의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 사진 조작이다. 가짜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아빠가 그 사진을 가리키며 '저거 내 사진인데, 뭐가 가짜냐'라고 화를 냈어요.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김씨가 5·18 당시 촬영한 사진의 필름을 양림교회 앞 땅에 묻고 남동성당에 기증한 것도 남매의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촬영한 사진과 필름의 행방을 찾는 건 성씨의 "소명"이기도 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남편의 뒤를 이어 5·18 때 찍은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저는 제 삶의 소명이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얼굴과 손, 발을 닦아 준 시신들이 행방불명자가 되어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 지금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초기 도심 골목에서 너무 처참하게 죽어가던 사람을 돕지 못하고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여전합니다.
- 성씨가 2023년 8월 30일 조사위에 진술한 내용 일부
남매도 "어머니는 계속 그 사진을 찾고 싶어했다. 열매에도 사진의 행방을 물었고, 다른 5·18 단체에도 물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 지난 30일 작고한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고 성수남씨와 남편 고 김영복(1998년 작고)씨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부부는 5·18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참상을 사진에 담아 외부에 알려 2007년 제1회 오월어머니상을 함께 수상했다.
유족 제공
남편이 찍은 사진 드디어 찾고선...
지난 7월 30일, 성씨는 애타게 찾던 사진과 필름 654점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보관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성씨는 열매 동료들에게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남매도 "어머니는 계속 '아빠 사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로 찾은 후에는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라고 떠올렸다.
8월 중 기록관과 '기록물 협약식'을 하려던 성씨는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됐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섬망을 겪으면서도 성씨는 거듭해서 협약식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유언은 없었어요. 그런데 섬망이 왔을 때 갑자기 엄마가 밤에 일어나서 '나 일어나야 돼. 나 이 닦고 가야 돼'라며 몸이 말을 안 듣는데도, 침대에서 계속 일어나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 안 돼, 엄마 안 돼' 이러는데도 '기자 만나야 돼. 기자 만나기로 했어'라고 하셨어요. 마침 열매 간사(윤경회)에게 전화가 와서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는데 '이번 협약식 때 기자가 오기로 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줬어요. 그 정도로 사진을 되찾은 것에 크게 기뻐하셨어요. - 성씨의 딸
이뿐만 아니라 섬망 증세 중 "5·18 행방불명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 마련"을 이야기하던 성씨는 지난 30일 오후 10시 50분께 숨을 거뒀다. 그의 이런 뜻은 생전에 남긴 미술 작품 <우리들의 이야기>의 '못다 핀 꽃'에서도 드러난다.
빈소를 찾은 김신윤주 오월미술제 감독은 이 작품을 두고 "5·18 당시 성씨는 희생자들의 마지막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돌봤다"라며 "그때 희생자들은 '내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유언을 성씨에게 남겼는데, 성씨는 이를 평생 가슴에 품어왔다. 이 꽃은 이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 성수남씨의 작품 <우리들의 이야기> 중 '못다 핀 꽃'
김신윤주(오월미술제 감독) 제공
열정적인 큰 언니
그런데요, 우리 엄마는 그런 피해를 겪었지만 우울하지만은 않았어요. 정말 외향적이고 흥이 많았어요. 열매 활동도 정말 열심히 했고요. 저희가 말릴 정도였으니까.
한창 성씨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딸은 이 지점을 강조했다. 성씨와 열매 동료였던 김복희 대표도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슬퍼할 때는 슬퍼할 줄 아는 열정적인 큰 언니"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형님은 마냥 개인이 아닌, 공인으로서의 삶도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업적이 너무 조명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항쟁 당시 형님 손을 잡고, 자기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를 평생 가슴 속에 품으며 살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찍은) 사진을 그토록 찾은 것도, 사진을 통해서 한 명의 행불자라도 더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라며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면 형님처럼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했는데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했을 것 같다. 너무나 담대하고 훌륭한 여성"이라고 말했다.
열매는 성씨의 추모식을 2일 오전 11시 전남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역 제2묘역에서 엄수할 예정이다.

▲5.18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자의 '진실과 치유 퍼포먼스' 생전 고 성수남씨의 모습.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첫 재판이 진행된 2025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기자회견.
이정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공유하기
흥 넘치던 피해자들의 큰언니, 28년 전 떠난 '동지' 남편 곁으로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