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찬, 〈삶을 살아 내는 것〉, 2025, 종이에 먹, 970×1300㎜. 김효찬 작가는 고통스러워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라고 말한다.
이규승
그에게 '살아 낸다'는 것은 그림 속의 관념만은 아니다. 파킨슨병 확진을 받은 날 그는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겠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유도를 했던 그는 지금도 자전거와 러닝머신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하체와 상체를 6대 4 정도 비율로 나눠 근력운동을 한다. 요가로 유연성을 기르고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스케이트보드도 탄다.
운동을 하기 싫은 날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장례를 치르는 기간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날 운동하러 간 자신을 두고 "그런 날도 운동하는 나쁜 놈이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런 날에도 했는데 사소한 일 때문에 운동을 빠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운동은 이제 건강을 위해 시간이 날 때 하는 생활습관이 아니다.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사람이 하루하루 자신에게 지키는 약속에 가깝다. 파킨슨병 진단 이후 지금까지 그는 병 때문에 그림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손은 전보다 느려졌지만 그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역설적인 변화가 생겼다. 몸의 움직임은 예전보다 조금씩 제한되고 있지만 그림에서는 자신이 통제해야 할 영역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어내려 했던 화가는 이제 자신이 만들지 않은 얼룩에서도 그림을 발견한다. 몸의 자유가 조금씩 줄어드는 동안 그의 그림에는 우연이 들어올 자리가 커졌다. 몸이 굳어갈수록 그림은 오히려 자유로워진 셈이다.
우리는 각자의 우주에 살고 있다
김효찬의 작업에는 '우주'라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종교가 없는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새벽이면 그 기도가 어디로 향할지 생각했다고 한다. 갈 곳 없는 기도가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어딘가에서 흩어지거나,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처럼 우주 한쪽에 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찾고 있던 안드로메다가 실제 우주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각자의 우주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몸이 더 굳어 붓을 제대로 잡기 어려운 날이 오더라도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냐고 물었다.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물론이죠." 지금 시도하는 작업들이 그때가 오면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아직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간절하게 비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병이 낫게 해달라는 말도, 오래 살게 해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삶과 가족, 우주 이야기를 한참 나누던 그의 대답은 결국 그림으로 돌아왔다.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화가로 남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효찬은 특유의 농담을 섞어 자신의 기도를 들려줬다.
"죽는 그날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채로 아쉬움 속에 눈을 감게 해주세요. 내가 정말 천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 문장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지만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일을 만난다. 어떤 일은 지나가지만 어떤 일은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김효찬은 자신에게 떨어진 검은 얼룩을 지우려고 하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형상을 찾아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살아낸다'는 말은 고통을 극복했다는 선언보다 오늘도 다시 붓을 드는 행위에 가깝다.
김효찬은 자신의 삶도 이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가을에는 끝보다 아직 그리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온 사람이 같은 계절에 만나 그림 한 점 앞에 서는 것도 그에게는 어쩌면 오래전 보낸 기도에 대한 작은 응답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이야기하며 그는 절망이나 투병보다 '안녕'이라는 말을 선택했다.
"이 계절 당신을 만나 더 많은 별이 빛나는 우리의 우주는 안녕합니다."
김효찬 개인전은 오는 9월 30일까지 강동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의 처지도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삶을 살아 내는 것〉 등 먹과 잉크가 만들어낸 우연의 흔적에 최소한의 붓질을 더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김효찬 개인전 공식 배너
강동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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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 한겨레신문 객원 필진(2016~2023)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한다. 이밖에 문화예술 전문매체인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에 문화예술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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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굳어가는 화가, 직접 그린 건 손가락 세 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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