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헌씨가 2026년 4월에 출간한 에세이집 ‘이층에서 본 거리’
이은북
'음악가' 이두헌의 커리어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무탈히 풀린 것처럼 보인다. 1984년 KBS '젊음의 행진' 대학생 오디션에 합격, 이듬해에 발매한 1집 '새벽기차' 히트로 성공적인 데뷔를 이뤄냈으니. 그런 그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지 않았을까.
"없을 수가 없죠. 성공 직후 부담이 따랐어요. 기세를 이어가지 못해 그대로 사라지는 뮤지션들이 얼마나 많아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늘 초조했지만, 그런 생각할 시간에 그냥 많이 하는 게 방법이에요."
제 2, 제 3의 이두헌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 뮤지션들에게 그는 말한다.
"일단 저지릅시다. 이것저것 생각만 할 시간에 나의 결과물을 최대한 내놓고 사람들에게 평가받으세요. 전력으로 100곡을 준비한 끝에 피드백을 거쳐 최종 10곡을 엄선하는 식이죠. 음악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졌던 불신감이 자연스레 사라질 겁니다."
데뷔한 지 어느덧 40년이 된 이두헌의 음악 인생은 열 살 무렵 마주한 한대수의 음악에서 시작된다. 평생 동안 흠모한 이름으로 헌정곡까지 쓴 그에게 한대수는 운명에 가까운 우상이다. 이제는 그 자신이 번듯한 지침이자 선망의 대상이 된 이두헌은 '우상'이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지금의 세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 말 중에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아름'의 어원은 '나'라는 설이 있는데, 산이 산답고, 바다가 바다다워야 마땅하단 뜻이죠. 그런데 지금은 그 '다운 사람'이 좀처럼 없더군요. 한대수 선생처럼 음악가다운 사람, 시인다운 사람, 선생다운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사라지다보니 '우상'도 흐려지는 게 아닐까요?"
▲ - 이층에서 본 거리 SPACE LIVE 2015. 10. 25.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 실황 ⓒ 스페이스 공감
'이층에서 본 거리'의 가사와 통한다.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가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도 있고……' 격동의 사회를 겪으며 가사를 썼던 그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15살의 나이였다. 배재고나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슈가 불거진 이때 '어른' 이두헌은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죠. 우리가 청년이었을 때의 기성 세대는 진실을 감추려고 했어요. 거기에 맞서 최루탄과 고문에 죽어간 청년들이 우리 세대인데, 지금 세대는 진실이란 개념에 무감각해져 버렸어요. 그렇다 보니 그 안에서 혐오나 조롱이 나오는 거죠. 지금의 어른들이 민주화를 이뤄낸 직후 기득권을 챙기는 대신 진상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해 놨었어야 해요. 어른들이 등한시하던 진실이기에 당연히 지금 세대 대부분이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 같이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의 온전한 섬이 되듯 철저한 개인주의를 지향한 그는 현업에서의 성공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한 채 '대체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문득 휩싸이곤 했다. 끝모를 번민을 해소하기 위해 그가 택한 길은 초심으로의 회귀, 미국으로의 유학이었다. 이때 그가 가졌던 외로운 부담감은 4차 산업혁명 이후 AI가 도래한 시대 현대인들의 고민과도 닮아 있다.
"AI가 해내는 첨단 분야만 바라보며 다들 공포를 느끼는데, 사실 AI를 이용한 농법 등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없지 않나요? AI 기술로 현대화된 농축, 수산의 산물은 로봇이나 컴퓨터가 아닌 우리 사람들의 유용한 자산이죠. 즉슨 앞만 보지 말고 뒤를, 옆을 볼 줄 알았으면 한단 거예요. 쓰나미가 오고 있는 상황을 가정합시다. 어차피 휩쓸려 죽는 건 똑같겠죠. 하지만 앞만 보며 마냥 두려워하는 사람과 뒤를 보며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의 태도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카페 안 한구석엔 그가 평소 애독하는 책들로 가득찬 선반이 있다. 그 앞에 선 이두헌씨.
이승훈
이어 그는 현재의 K팝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제가 기타를 공부하러 미국으로 갔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보다는 미국이 훨씬 더 음악적으로 뛰어났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 음악이 더 나아요. 오히려 외국에서 K팝 스타일 제작과 시스템을 따르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음악이 대단히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생활과 밀착된 음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영미권 음악은 오직 시장 논리만 따르지는 않아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 같이 일상의 모습을 음악에 담죠. 반면, 우리 음악은 양계장에서 금만 먹여가며 황금알을 낳게 만드는 꼴이에요."
그는 앞으로 AI 시대에서 음악 안에 인간성을 담아내는 게 중요할 것이라 말했다.
"기술로만 음악을 만드는 건 이제 승산이 없을 거예요. 반짝반짝한 물건이 아닌, 좋은 물건이 나와야 해요. 조금 모자라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각을 담는 게 필요하죠. 이제는 본인 이야기를 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질 겁니다."
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은이),
이은북,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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