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1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남소연
위원회가 피해 지원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확인한 문제도 있었다.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불법 사금융 같은 민생 범죄의 피해는 돈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거와 생계가 흔들리고 채무와 신용 문제가 발생한다. 심각한 불안과 우울 등 심리적 위기가 뒤따르기도 한다.
피해 지원 단체들은 초기 지원이 늦어지면 피해자의 절망과 고립이 심해지고 실제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며 신속한 지원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그런 피해자에게 심리 상담은 이곳으로, 주거 지원은 저곳으로, 법률 지원은 또 다른 기관으로 각각 찾아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
피해 초기부터 심리·의료·법률·주거·생계 등 필요한 지원을 확인해 신속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권고에서는 경찰이 모든 지원을 직접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찰서를 수사 단계의 기본 접점으로 삼아 필요한 전문기관으로 연결하는 통합지원체계를 제안했다. 피해자가 기관을 찾아다니는 체계에서 기관들이 피해자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체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법무부도 하고 있는데 경찰도 해야 하나
법무부가 이미 범죄 피해자 정책을 총괄하고 원스톱 지원 체계를 운영하는데 경찰까지 별도의 전담 조직을 만들면 업무가 중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리가 있다. 2004년 이후 법무부를 중심으로 발전한 피해자 보호·지원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피해자가 범죄 직후 가장 먼저 만나는 국가기관은 대부분 경찰이다. 경찰 역시 현재 피해자의 안전 조치와 위기 상담, 심리·경제적 지원 기관 연계 등의 업무를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
이번 권고는 경찰이 법무부의 기능을 가져오거나 새로운 지원 기관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수사단계의 초기 접점인 경찰의 인력과 조직을 보강하고, 기존 법무부·검찰·지자체·공공·민간 지원기관과 제대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다만 법무부와 경찰이 따로 체계를 확대한다면 중복과 혼선은 생길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법무부냐 경찰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을 포함한 정부 차원의 명확한 역할 조정과 협업이다.
높은 치안 수준에 걸맞게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치안 수준 자체가 낮은 것은 아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살인율은 1996년 이후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고, 2021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1명 미만이었다. 2022~2023년 야간에 혼자 걸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 비율도 약 80%로 OECD 평균보다 약 5%포인트 높았다.
다만 이를 한국 경찰의 개별 사건 초동수사 정확성이나 수사 전문성이 외국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로 확대해서 해석할 수는 없다. 범죄율과 체감 안전도는 사회 전체의 치안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지 개별 사건의 수사 역량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지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질문은 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높은 치안 수준에 비해 범죄가 발생한 뒤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가지는 절차적 지위와 권리는 충분한가.
외국에서도 피해자에게 사건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 진술과 절차 참여, 법률 조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해 왔다. 각국의 형사 사법 제도가 달라 제도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우리도 이제 범죄 피해자의 수사·재판절차상 지위와 절차적 권리를 한 단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범죄 피해자 정책은 크게 발전했다. 그동안의 변화가 범죄 피해자를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사람으로 인정한 첫 번째 전환이었다면 이제 또 한 번의 전환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에서 실질적인 절차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전담조직과 법률 조력,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 심리·의료·주거·생계 지원의 연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경찰과 법무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이 피해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살인 미수 피해자를 변호하면서 든 생각도 결국 여기에 닿는다. 범죄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왜 자신의 사건에서는 '주변인'이어야 하는가.
이제 범죄 피해자 보호의 수준은 지원 제도가 몇 개 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범죄가 발생한 순간부터 수사와 재판, 피해회복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안전과 절차적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치안 수준이 높아진 만큼 범죄 피해자의 절차적 지위와 권리, 보호와 지원의 수준도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한다.
'보호 받는 피해자'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피해자'로. 이번 경찰 수사개혁위원회의 첫 권고가 그 두 번째 전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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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훈 변호사는 형사사건, 영장실질심사, 형사재심, 국가폭력·과거사 사건, 국가배상 사건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대변인으로 검찰개혁 관련 활동도 해왔습니다. 헌법학 박사이며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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