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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가 무너진 날, 거제의 산도 무너졌다

    빙하가 붕괴한 네팔, 200년 만의 폭우가 덮친 거제... 두 재난이 던진 공통의 경고

    등록 2026.09.03 14:11수정 2026.09.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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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현지 시각)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누와코트 지역의 데비가트에 토사들이 쌓여 있다. 2026.9.2
    ▲ 지난 1일(현지 시각)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누와코트 지역의 데비가트에 토사들이 쌓여 있다. 2026.9.2 연합뉴스

    2026년 8월, 열흘 남짓한 간격을 두고 지구 반대편과 우리 이웃 동네에서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8월 16일 새벽 경남 거제에서는 야산이 무너져 아파트 저층을 덮쳤고, 열흘 뒤인 8월 26일 네팔에서는 히말라야의 빙하가 붕괴하며 국경 마을 수십 곳이 진흙에 잠겼다.

    하나는 폭우가, 다른 하나는 빙하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산이 무너져 사람이 사는 곳을 덮쳤다는 결말은 같았다. 이 비극은 기후위기 시대에 극한 현상과 자연 재난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공통의 경고를 던진다.

    "산이 무너졌다" 방아쇠는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다

    네팔의 재난은 처음에 지진으로 오해받았다.

    8월 26일 오전, 네팔과 중국 티베트 자치구 국경 지대에서 거대한 진동이 감지됐다. 당초 규모 4.4의 지진으로 보도됐지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추가 분석을 통해 실제 지진이 아니라 빙하가 관련된 대규모 사면 붕괴와 토석류가 만들어낸 지진성 신호라고 설명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관측에서는 랑탕 리룽 봉우리 근처의 빙하가 무너진 흔적이 포착됐다.

    붕괴한 빙하와 토석류는 트리슐리강을 따라 하류로 밀려 내려가 마을을 덮쳤다. 네팔 당국은 이번 홍수로 도로 40여 킬로미터와 다리 80여 개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한 주민은 방송 인터뷰에서 "15분 만에 모든 것이 파괴됐다"라고 말했다.


    거제의 재난은 방아쇠가 달랐다. 빙하가 아니라 비였다. 8월 16일 밤부터 17일 새벽 사이, 거제에는 시간당 100㎜를 넘나드는 극한 호우가 쏟아졌다. 새벽 2시 32분까지 한 시간에 124.5㎜가 내렸다. 기상청은 이를 2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옥포동에서는 아파트 뒤 야산이 무너졌다. 토사가 저층 가구로 밀려들면서 1명이 숨졌고, 옆집에 살던 주민은 다쳤다. 이 아파트 주민 250여 명에게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200년 빈도'라는 착각

     지난 광복절 연휴 기간 경상남도 거제시에 누적 강우량 927㎜에 달하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8월 18일 오후 거제 옥포동 삼도로얄맨션 산사태 현장에서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 지난 광복절 연휴 기간 경상남도 거제시에 누적 강우량 927㎜에 달하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8월 18일 오후 거제 옥포동 삼도로얄맨션 산사태 현장에서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김보성

    거제에 내린 비는 '200년 빈도' 였다. 통영에서는 시간당 97.4㎜가 쏟아져 1986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기상청은 이를 '100년 빈도'로 분석했다.

    '200년 빈도'라는 말은 원래 매우 드물다는 뜻이다. 2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비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몇백 년 빈도'의 비가 최근 몇 년 사이 해마다 어딘가에서 쏟아지고 있다.

    2022년 서울에서는 강남 일대가 물에 잠기고 동작구 신대방동에 시간당 141.5㎜의 폭우가 쏟아졌다. 2023년에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5년 여름에는 충남 서산에 시간당 114.9㎜의 비가 내리는 등 경남 산청과 경기 가평, 충청 곳곳에서 산사태와 침수가 이어졌고, 충청의 한 마을은 산사태 잔해로 통째로 덮였다. 그리고 2026년 거제·통영이다.

    네팔의 빙하와 관련된 대규모 사면 붕괴와 토석류 역시 '전례 없는' 재난으로 불렸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200년에 한 번'이라는 계산이 해마다 현실이 된다면, 그 숫자는 여전히 유효한가.

    우리의 방재 기준은 대부분 과거의 확률에 기대어 설계돼 있다. 하수관과 제방, 배수 시설은 '몇 년 빈도'의 강우를 견디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강우 양상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과거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산정한 빈도만으로 미래의 위험을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시는 2022년 기록적 폭우를 겪은 뒤 방재성능 목표를 시간당 95㎜(30년 빈도)에서100~110㎜로 상향했다. 그러나 2025년 서산(114.9㎜)과 2026년 거제(124.5㎜)의 시간당 강수량은 그 상향된 기준마저 넘어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지난 5월 12일 발표한 2026년 여름철 홍수대책 자료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최대치를 경신하고 집중 호우가 빈발하는 등 강우 양상이 급변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전례 없음'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200년 빈도'라는 숫자를 안심의 근거로 읽을 것인가, 경고로 읽을 것인가.

    국립기상과학원 부경온 팀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00년 빈도'나 '200년 빈도' 집중호우는 과거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통계적 함수를 만들어 산정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빈도가 낮을수록 더 큰 규모의 강우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거제 산사태와 네팔의 산사태를 같은 기상학적 원인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건 모두 산사태라는 재난 형태는 같지만, 발생 지역과 당시 기상 조건, 지형 등 개별적인 원인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기후 변화와 극한 강우의 관계에 대해서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를 근거로 설명했다. 부 팀장은 "미래에는 극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강도도 강해질 것이라는 변화 경향은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특정 사례와 기후 변화의 인과 관계까지 규명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며 "개별 사건보다는 지구적 규모에서 극한 현상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설명했다.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몇백 년 빈도' 폭우 시간당 강수량은 기상청 관측·분석, 기준선은 기상청 '극한호우' 재난문자 기준(50㎜)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몇백 년 빈도' 폭우 시간당 강수량은 기상청 관측·분석, 기준선은 기상청 '극한호우' 재난문자 기준(50㎜) 그래픽 최영길

    새벽 2시 32분 그리고 15분

    두 재난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대응하기 가장 어려운 시간과 속도에 닥쳤다는 점이다.

    거제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최고에 이른 것은 새벽 2시 32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다. 네팔 주민은 재난이 15분 만에 마을을 삼켰다고 증언했다.

    재난의 규모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속도다. 아무리 정교한 경보 체계가 있어도, 재난이 경보보다 빠르면 사람을 대피시킬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는 재난 문자와 산사태 경보, 대피 명령 체계가 있다. 그러나 시간당 124.5㎜의 비가 새벽 2시에 쏟아질 때, 이 체계가 잠든 주민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만큼 빠르게 작동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경보가 울리는 것과 사람이 실제로 대피하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사태연구과 이창우 과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에는 사전에 재난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위험 지역을 예측해 사방댐이나 사방시설 등 구조물 대책을 설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의 모든 산을 대상으로 구조물을 설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인명 피해 우려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예·경보 체계를 운영한다"라며" 구조물 대책이 미처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많은 비가 예상될 경우 위험 정보를 제공하고, 기준 이상의 강우가 발생하면 예·경보를 통해 주민 대피 등 안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예보와 현장 정보에는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중앙에서 전국 곳곳의 실제 상황을 모두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모니터링 정보와 위험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하고, 최종적으로는 지자체장이 현장 상황을 판단해 주민 대피 등의 조치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사태 예방은 위험 지역에 사방댐과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는 구조적 대책과 강우와 위험 정보를 바탕으로 주민을 대피시키는 비구조적 대책이 함께 작동하는 체계"라며 "두 가지 안전장치를 함께 가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막을 수 없었던 재난과 막을 수 있었던 재난

    그렇다고 모든 재난을 같은 무게로 볼 수는 없다. 네팔의 고산지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붕괴와 토석류는 막기 어려운 재난에 가까웠다. 주민의 증언처럼 불과 15분 만에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면, 재난 발생 이후 대응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극히 제한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곁의 물난리 가운데 상당수는 성격이 다르다.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그랬다. 강물이 넘칠 것이라는 경보와 신고가 있었지만, 부실하게 쌓은 제방이 무너졌고 대응 체계는 제때 작동하지 못했다.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같은 '물 재난'이라도 하나는 인간의 힘 밖에 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준비 안에 있다. 네팔을 거울로 삼는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재난에서 죽는 것과, 통제할 수 있었는데 죽는 것은 다르다.

    기후 위기라는 큰 방아쇠는 우리가 당장 되돌리기 어렵다. 그러나 그 방아쇠가 당겨진 뒤 사람이 죽고 사는 마지막 순간은, 제방과 배수로와 경보와 대피라는 '인간의 영역'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충북과 단양은 안전한가

    히말라야와 거제의 소식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지역이 많다. 산과 강이 맞닿은 충북 북부권 역시 집중호우와 산사태 위험이 있다.

    단양처럼 산과 강, 관광시설과 생활공간이 가까운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닥쳤을 때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자연이 준 관광자원과 재난 위험은 같은 지형에서 나온다.

    따라서 단양을 포함한 충북의 재난 대비는 '관광객을 얼마나 부를 것인가'와는 다른 층위의 질문을 던진다. 기록적 폭우가 왔을 때 주민과 관광객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가.

    관광도시의 미래가 관광객 숫자만으로 보장되지 않듯, 지역의 안전 또한 '그동안 큰일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재난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같은 재난의 두 얼굴 네팔 빙하 붕괴와 거제 극한호우 비교. 방아쇠는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다. 자료: USGS·NASA·기상청 발표 및 국내외 언론 보도 종합.
    ▲같은 재난의 두 얼굴 네팔 빙하 붕괴와 거제 극한호우 비교. 방아쇠는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다. 자료: USGS·NASA·기상청 발표 및 국내외 언론 보도 종합. 그래픽 최영길

    지구 반대편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무너졌고, 우리 이웃 동네 거제에서 야산이 무너졌다. 이 두 장면을 따로 떼어 보면 하나는 먼 나라의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주변의 사고다. 그러나 함께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전례 없는' 재난이 더 이상 전례 없는 일이 아니게 된 시대의 두 얼굴이다.

    그렇다면 재난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몇 년에 한 번 오는 비인가'가 아니라 '그 비가 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로,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갔는가'가 아니라 '다음에도 무사할 수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히말라야의 빙하와 거제의 야산이 함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재난을 숫자로 안심할 것인가, 경고로 읽을 것인가.
    #네팔홍수 #거제산사태 #기후위기 #산사태 #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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