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몇백 년 빈도' 폭우 시간당 강수량은 기상청 관측·분석, 기준선은 기상청 '극한호우' 재난문자 기준(50㎜)
그래픽 최영길
새벽 2시 32분 그리고 15분
두 재난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대응하기 가장 어려운 시간과 속도에 닥쳤다는 점이다.
거제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최고에 이른 것은 새벽 2시 32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다. 네팔 주민은 재난이 15분 만에 마을을 삼켰다고 증언했다.
재난의 규모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속도다. 아무리 정교한 경보 체계가 있어도, 재난이 경보보다 빠르면 사람을 대피시킬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는 재난 문자와 산사태 경보, 대피 명령 체계가 있다. 그러나 시간당 124.5㎜의 비가 새벽 2시에 쏟아질 때, 이 체계가 잠든 주민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만큼 빠르게 작동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경보가 울리는 것과 사람이 실제로 대피하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사태연구과 이창우 과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에는 사전에 재난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위험 지역을 예측해 사방댐이나 사방시설 등 구조물 대책을 설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의 모든 산을 대상으로 구조물을 설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인명 피해 우려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예·경보 체계를 운영한다"라며" 구조물 대책이 미처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많은 비가 예상될 경우 위험 정보를 제공하고, 기준 이상의 강우가 발생하면 예·경보를 통해 주민 대피 등 안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예보와 현장 정보에는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중앙에서 전국 곳곳의 실제 상황을 모두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모니터링 정보와 위험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하고, 최종적으로는 지자체장이 현장 상황을 판단해 주민 대피 등의 조치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사태 예방은 위험 지역에 사방댐과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는 구조적 대책과 강우와 위험 정보를 바탕으로 주민을 대피시키는 비구조적 대책이 함께 작동하는 체계"라며 "두 가지 안전장치를 함께 가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막을 수 없었던 재난과 막을 수 있었던 재난
그렇다고 모든 재난을 같은 무게로 볼 수는 없다. 네팔의 고산지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붕괴와 토석류는 막기 어려운 재난에 가까웠다. 주민의 증언처럼 불과 15분 만에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면, 재난 발생 이후 대응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극히 제한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곁의 물난리 가운데 상당수는 성격이 다르다.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그랬다. 강물이 넘칠 것이라는 경보와 신고가 있었지만, 부실하게 쌓은 제방이 무너졌고 대응 체계는 제때 작동하지 못했다.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같은 '물 재난'이라도 하나는 인간의 힘 밖에 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준비 안에 있다. 네팔을 거울로 삼는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재난에서 죽는 것과, 통제할 수 있었는데 죽는 것은 다르다.
기후 위기라는 큰 방아쇠는 우리가 당장 되돌리기 어렵다. 그러나 그 방아쇠가 당겨진 뒤 사람이 죽고 사는 마지막 순간은, 제방과 배수로와 경보와 대피라는 '인간의 영역'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충북과 단양은 안전한가
히말라야와 거제의 소식을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지역이 많다. 산과 강이 맞닿은 충북 북부권 역시 집중호우와 산사태 위험이 있다.
단양처럼 산과 강, 관광시설과 생활공간이 가까운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닥쳤을 때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자연이 준 관광자원과 재난 위험은 같은 지형에서 나온다.
따라서 단양을 포함한 충북의 재난 대비는 '관광객을 얼마나 부를 것인가'와는 다른 층위의 질문을 던진다. 기록적 폭우가 왔을 때 주민과 관광객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가.
관광도시의 미래가 관광객 숫자만으로 보장되지 않듯, 지역의 안전 또한 '그동안 큰일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재난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같은 재난의 두 얼굴 네팔 빙하 붕괴와 거제 극한호우 비교. 방아쇠는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다. 자료: USGS·NASA·기상청 발표 및 국내외 언론 보도 종합.
그래픽 최영길
지구 반대편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무너졌고, 우리 이웃 동네 거제에서 야산이 무너졌다. 이 두 장면을 따로 떼어 보면 하나는 먼 나라의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주변의 사고다. 그러나 함께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전례 없는' 재난이 더 이상 전례 없는 일이 아니게 된 시대의 두 얼굴이다.
그렇다면 재난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몇 년에 한 번 오는 비인가'가 아니라 '그 비가 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로,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갔는가'가 아니라 '다음에도 무사할 수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히말라야의 빙하와 거제의 야산이 함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재난을 숫자로 안심할 것인가, 경고로 읽을 것인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분 좋은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작은 질문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