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벗겨낸 양복의 비닐 퇴직 후 입지 않았던 양복을 정리하며 4년 만에 세탁소 비닐을 벗겨냈다.
이종범
"이 양복들, 안 입을 거면 이참에 정리하는 게 어때?"
날이 선선해지면서 옷장을 정리하던 아내가 물었다.
"그러게 입을 일이 없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그렇게 넘겼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매일같이 여닫는 옷장인데도 그 안에 걸린 양복은 지난 4년 동안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옷장 안에는 검은색과 쥐색 양복 몇 벌이 걸려 있다.
퇴직 후 양복을 입은 것은 딸의 결혼식 때가 전부였다. 그날 입었던 예복 정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퇴직 무렵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다가 찾아온 그대로, 세탁소 비닐조차 벗기지 않은 채였다.
금융권에서 일할 때 정장은 매일 갖춰 입어야 하는 근무복이었다. 바지 주름과 다림질한 셔츠의 상태를 살피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어야 출근 준비가 끝났다. 양복과 셔츠를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오는 일도 생활의 일부였다.
퇴직하고 나니 정장을 입고 갈 자리가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지인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때도 양복 대신 편하면서도 단정한 옷을 고른다. 한때 매일 아침 몸에 걸쳤던 양복이지만, 지난 4년 동안 옷장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넥타이 매장 앞을 지나가도 이제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기분을 바꾸고 싶거나 중요한 자리를 앞두고 넥타이를 샀다. 그렇게 모은 넥타이가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맬 일이 없어지니 새로 살 이유도 사라졌다.
구두도 신발장 깊숙이 밀려났다. 예전에는 강의 시간이 길어지면 발바닥이 너무 아파 교육생들에게 "한 시간만 구두를 벗고 강의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의할 때도 운동화가 기본이다.
양복을 입지 않게 되자 넥타이를 맬 일도, 구두를 신을 일도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내 옷장은 흔히 '기지 바지'라고 부르던 정장 바지 일색이었다. 색깔만 다를 뿐 비슷한 바지들이 옷장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퇴직 직후 옷장을 열었을 때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옷은 가득한데 외출할 때 입을 만한 옷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지 바지는 그대로 있었지만 모임이나 도서관 같은 곳에 입고 가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곳이 달라지자 옷장에 걸린 옷들도 더는 내 일상에 맞지 않았다.
그 답답함을 풀어준 사람은 딸이었다. 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딸이 갑자기 여주 아울렛에 가자고 했다. 딱히 할 일도 없어 따라나섰더니 나를 남성복 코너로 데리고 갔다.
"아빠, 이제 이런 옷 편하게 입고 다니세요."
딸은 몇 벌의 바지와 재킷을 골라 내 몸에 대보더니 입어보라고 재촉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내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시키는 대로 여러 벌을 갈아입으며 거울 앞에 섰다. 결국 면바지 두 벌과 청바지 한 벌 그리고 자주색 재킷 한 벌을 골랐다. 딸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그때부터 외출할 때마다 딸이 사준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장 바지에 익숙해진 몸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며칠 입어보니 확실히 편했다. 허리를 조이지 않았고 무릎을 굽혀 앉거나 오래 걸을 때도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강의복과 신발까지 바꾼 면바지
퇴직 초기에는 양복을 입지 않았지만, 강의하러 갈 때만큼은 재킷에 기지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정장에서 상의만 재킷으로 바뀌었을 뿐, 바지와 신발은 여전히 직장생활 때의 차림을 따르고 있었다. 누가 보면 꼰대 같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강단에 서려면 그 정도는 갖춰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사준 면바지에 재킷을 걸치고 강의하러 갔다. 처음에는 너무 편해 보이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지만 막상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몸은 편했지만 흐트러져 보이지 않았고,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의도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면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신발도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뀌었다. 기지 바지에는 구두가 자연스러웠지만 면바지에는 운동화가 잘 어울렸다. 이동할 때 발이 편했고, 강의하는 동안 서 있거나 강단을 오갈 때도 부담이 덜했다. 재킷을 걸쳤으니 운동화를 신어도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계절에 맞는 면바지에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는 차림이 내 강의복으로 자리 잡았다.
그 이후 단품으로 입는 재킷은 오히려 늘어났다. 여름용과 겨울용을 한두 벌씩 마련하다 보니 어느덧 일곱 벌이 됐다. 손이 잘 닿는 자리에는 면바지가 놓였고, 신발장 앞에는 운동화가 자리를 잡았다.
옷이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퇴직 전에는 옷을 갖춰 입는 것이 조직생활의 예의이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여겼다. 금융권에서 교육을 담당하다 보니 옷차림에서도 그 사람의 성실함과 자세가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강의할 때 옷차림은 교육생이 강사를 판단하는 첫인상 가운데 하나다. 다만 퇴직 후에는 '갖춰 입는다'는 말의 의미가 달라졌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야만 단정한 것은 아니었다. 깨끗한 면바지에 재킷을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의를 갖출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비싸고 멋진 옷이 아니라 그날의 자리와 역할에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옷이 첫인상을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내가 쌓아온 경험과 강의 내용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양복을 입어야 전문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내 안에 굳어진 기준이었는지도 모른다.
딸이 사준 면바지는 평소 외출복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강의하러 갈 때 이 정도는 입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내 기준도 바꿔놓았다.
그렇다고 양복을 입고 살았던 시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그 자리에 맞는 옷이었고, 나에게 꼭 필요한 옷이었다. 지금은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맡은 역할이 달라졌으니 옷차림도 달라졌을 뿐이다.
"자기야, 이 양복들 그냥 두면 안 될까?"
"그러지 말고 교회에서 가을 바자회 한다니까 거기 내놓자. 아직 상태가 좋으니 필요한 사람이 입을 수도 있잖아."
듣고 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딸의 결혼식에서 입었던 예복 정장을 제외하면 앞으로도 꺼내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입지도 않을 옷을 옷장에 계속 걸어두느니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이 나았다.
예복 정장 한 벌만 남기고 나머지 양복을 모두 꺼낸 뒤, 4년 동안 씌워져 있던 세탁소 비닐을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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