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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늘(9월 2일)은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관하는 모의평가가 치러지는 날이다. 고3 수험생들에게는 수능을 치르기 전 마지막 모의평가다. 난이도와 상관없이 9월 모의평가의 점수가 수능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속설이 공공연하다 보니 아이들의 긴장도가 여느 때보다 높다.
동시에 고1과 고2도 시험을 치렀다. 다른 게 있다면, 출제 기관이 교육과정평가원이 아닌 시도 교육청이라는 것뿐이다. 특히 고1과 고2에게 9월 모의평가는 지난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다. 결과가 나오면 담임교사들의 개별 성적 상담이 이어진다.
2교시 수학 영역 시험 시간. 시험지를 배부하기도 전인데,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든 아이들이 여럿이다. 다가가 깨우니 하나같이 벌건 눈으로 일어나 놀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잠에 반쯤 취해 있는 것이다. 답안지에 학년, 반, 번호, 이름을 마킹한 뒤 이내 다시 쓰러졌다.
시험 시작 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잠결이라 듣지도 못한다. 듣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다. 시험 때 '수포자'의 공통적인 행동은 '찍고 자는' 것이다. 물론, 서술형 답안은 마킹 흔적 없는 공란이다.
부러 깨우면 잠깐 일어났다 다시 엎드리는 일이 반복된다. 그들의 눈빛에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짜증이 잔뜩 묻어난다. 깨우기 위해 책상을 노크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지 다른 아이들이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1교시 때부터 저렇게 계속 잠을 잤다는 거다.
시험이 시작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 그대로 방치할 순 없다. 깨운다고 해서 정신 차리고 시험에 집중할 리도 없다. 코를 골지 않도록 잠자는 자세를 바꿔주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감독관의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그들은 점심을 먹은 뒤 3교시 영어 영역과 4교시 탐구 영역 시험 때도 줄곧 엎드려 잘 것이다. 모의평가든 교내 고사든, 종일 잠을 잘 수 있어 시험 기간이 방학만큼이나 좋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 채 30분도 안 지났는데, 절반 넘게 책상 위에 고꾸라졌다.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사정... 이게 최선일까?
수업 시간에 반복적으로 깨워도 계속 엎드려 자는 건 명백한 교권 침해다. 이는 교사의 정당한 수업권과 교실 내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졸음을 이겨낼 수 있도록 교실마다 '스탠딩 책상'을 비치해 놓은 학교가 많지만, 그들은 이마저도 활용할 마음이 없다.
그런데, 수업이 아닌 시험 때 잠자는 걸 두고 교권 침해라고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응시 여부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이자 권리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상황에서 묵인할 순 없는 노릇이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걸 굳이 벌한다면 교칙상 '교사의 지시 불이행'으로 볼 순 있겠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시험이 모두 끝난 뒤에나 처분이 가능한 일이다.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교실 뒤에 세울 수도 없고, 퇴실을 명할 순 더더욱 없다. 그들을 깨우자고 번호순으로 정렬된 시험실 대형을 흐트러뜨리는 건 곤란하다. 애꿎은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곤히 잠든 그들을 나무라듯 깨우려니 어째 좀 가엾은 마음이 든다. 퀭한 눈에 초췌한 얼굴에선 이팔청춘이라는 10대 아이들의 혈기왕성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어날 때 그들의 껄렁한 태도에선 '시험 시간에 누군 좋아서 엎드려 자겠느냐'는 언뜻 반항기마저 느껴진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쩌면 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그 긴 시험 시간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테다.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시험지 넘기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교실에서 옴짝달싹하지 않고 버텨내야 한다.
들여다봐야 아는 것 하나 없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시간을 죽이는 건 그들에겐 차라리 고문일 테다. "빠짐없이 마킹을 다 했으니,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는 한 아이의 하소연을 듣노라면 더는 깨우기도 미안하다. 일찌감치 그의 답안지엔 같은 번호로 한 줄이 죽 그어져 있다.
잠에 취해 있는 그를 며칠 전 하굣길에 스치듯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어깨에 책가방 대신 기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수업 때마다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모습만 봐온 터라 기타 가방이 무척 어색해 보였다. 묻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며 으쓱해 했다.
기타 이야기만 나오면,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진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귀를 쫑긋 세운다. 기타는 잠에 취한 그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셈이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차라리 기타를 연습하게 한다면 저렇듯 '폐인'이 되어 하루를 보내진 않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물론, 이는 우리 교육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한 바람일 뿐이다. 사회화 기관으로서 학교는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교양을 습득하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다. 이는 개인별 호불호의 취사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의무 교육'을 표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당장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이를 깨워 기초적인 교양을 쌓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건 그다음에 할 일이라는 거다. 남다른 재능도 시민의식과 합리적 사고 역량 등 기초적인 교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적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실효적인 대책 없이 당위에만 매몰되면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고교학점제의 시행에 따라 실시하고 있는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최성보)'의 실패를 단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불과 도입한 지 2년 만에 최성보는 수차례 지침이 바뀌며 누더기가 됐다.
최성보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과목과 상관없이 '찍고 자는' 아이들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최선을 다해 가르쳤음에도 이구동성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게 공부'라고 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전국의 '수포자'들 행렬이 그 결과물이다.
그들에게 시험은 자존감만 떨어뜨리는 시간이다. 그럴 바에야 시험 때 엎드려 자는 대신 그 시간에 학교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배려하는 편이 낫다는 거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언뜻 몽니처럼 들리지만, 그들을 결코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절규다.
못 자게 깨웠더니 이젠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난리를 피운다. 일단 교실을 나가면 '함흥차사'다. 그들에게 시험 때 화장실은 '휴게실'이다. 한 아이가 물꼬를 트니 앞다퉈 손을 든다. 차례대로 한 명씩 보내려니 문을 여닫는 소리에 교실이 금세 소란해진다.
차라리 그냥 엎드려 잠자게 내버려둘 걸 그랬나 싶은 생각에 후회막급이다. 그렇게 수학 영역 시험 시간 100분이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배가 부르면 더 졸음이 쏟아질 텐데 3교시 영어 영역 시험 때는 대체 몇 명이나 쓰러지게 될지 걱정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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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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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찍고 자는' 아이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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