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던 비를 자원으로'… 캄보디아 장관이 제시한 물 관리의 전환

[프놈펜에서 만난 비 ②] 제4차 IWA 빗물관리 국제학회 개막… 세계 전문가들 한자리에

등록 2026.09.03 10:40수정 2026.09.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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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은 단순히 흘려보내야 할 물이 아닙니다. 포집하고 저장하며 보전하고, 지속가능하게 관리해야 할 소중한 자연자원입니다."

9월 2일 캄보디아 프놈펜 왕립학술원(Royal Academy of Cambodia)에서 열린 제4차 국제물협회 빗물집수관리 국제학회(4th IWA Conference on Rainwater Harvesting and Management) 개막식에서 토르 체타(Thor Chetha)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이 강조한 말이다.

기후변화로 비가 내리는 시기와 강도가 달라지면서 캄보디아도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장관은 이제 기존의 물 관리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빗물을 빨리 배수해 버려야 할 골칫거리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모아두는 자원으로 볼 것인가. 이날 장관의 발언은 캄보디아의 물 관리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로 들렸다.

9월 2일 캄보디아 왕립학술원에서 열린 제4차 IWA 빗물집수관리 국제학회 개막식. 세계 각국의 전문가와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필자, 김상인 전 피지 대사, 김학수 전 UN ESCAP 사무총장,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 Sok Touch 왕립학술원 원장, 그리고 국제빗물연합 (iRHA)의 Han Heijnen 회장
▲9월 2일 캄보디아 왕립학술원에서 열린 제4차 IWA 빗물집수관리 국제학회 개막식. 세계 각국의 전문가와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필자, 김상인 전 피지 대사, 김학수 전 UN ESCAP 사무총장,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 Sok Touch 왕립학술원 원장, 그리고 국제빗물연합 (iRHA)의 Han Heijnen 회장 한무영

물과 함께 살아온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오래 전부터 물과 함께 살아온 나라다. 우기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건기에는 물이 부족하다. 톤레삽 호수는 계절에 따라 수위와 면적이 크게 달라지며, 주변 범람원과 함께 수산업과 농업, 생태계와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 왔다.

토르 체타 장관은 톤레삽의 계절적 물 순환이 700만 명 이상의 생계와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비와 강, 호수와 범람원, 농업과 생태계, 그리고 지역공동체는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물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물은 서로 분리해서 관리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하지만 중요하다. 도시의 빗물, 농촌의 물, 강과 호수, 지하수와 식수는 서로 다른 부서가 따로 관리할 대상만은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부터 시작해 물이 이동하고 저장되며 사용되는 전체 과정을 함께 보아야 한다.

앙코르 문명을 일으킨 캄보디아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몬순의 많은 비를 거대한 저수지와 수로에 담아두고 건기에 이용했다. 비가 너무 많을 때는 안전하게 분산시키고, 부족할 때는 저장한 물을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기후 회복력 (climate resilience)'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캄보디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생활과 문화 속에서 실천해 온 셈이다.


세계 전문가들이 프놈펜에 모인 이유

이번 학회의 주제는 '내일을 위한 빗물: 물, 기후 그리고 문화(Rainwater for Tomorrow: Water, Climate and Culture)'다. 9월 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여러 나라의 빗물 전문가와 연구자, 정부 관계자, 국제기관 관계자, 학생과 시민들이 참가했다. 프놈펜에서 학술회의와 정책대화가 진행된 뒤 참가자들은 시엠립으로 이동해 빗물 이용시설과 앙코르 지역의 역사적인 물 관리 시설을 둘러 볼 예정이다.

학회는 캄보디아 왕립학술원과 국제물협회(IWA) 빗물집수관리 전문가그룹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서울대학교, 국제빗물집수연맹(IRHA), 레인포올(Rain for All), 메콩연구소 등도 함께 참여했다. 왕립학술원의 속 뚜잇(Sok Touch) 총장은 개회사에서 물 관리가 캄보디아의 역사와 건축, 문화유산과 깊게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의 의미는 외국 전문가들이 모여 논문만 발표하는 데 있지 않다. 과거 캄보디아 사람들이 몬순과 함께 살아온 지혜를 되살리고, 이를 오늘날의 기후위기와 물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데 있다.

특히 학교와 마을에서 지붕에 내린 비를 받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간단한 기술은 중앙집중식 수도시설이 도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유용하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인력으로 시설을 만들고, 학생과 주민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개막연설을 하는 토르 체타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 토르 체타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이 개막식에서 기후변화 시대의 빗물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개막연설을 하는 토르 체타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 토르 체타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 장관이 개막식에서 기후변화 시대의 빗물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무영

현지 언론도 주목한 '빗물의 가치'

캄보디아 영문 일간지 <크메르타임스>도 이날 학회 개막 소식을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신문은 세계의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이 프놈펜에 모여 분산형 빗물 관리를 통한 물 안보와 기후 회복력 향상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빗물을 배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저장하고 보전해야 할 자연자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장관의 발언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현지 언론이 빗물의 가치를 이처럼 자세히 보도한 것은 의미가 있다. 빗물 문제는 그동안 국제적인 물 논의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이라고 하면 강과 댐, 지하수와 수도관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모든 물의 시작에는 비가 있다. 비를 관리하지 못하면 홍수와 가뭄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비를 모으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물만 끌어오려 한다면 비용과 에너지 사용도 커진다. 하늘에서 우리 가까이에 떨어지는 물부터 모아 쓰는 것이 새로운 물 관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프놈펜에서 세계로

이번 학회의 중요한 결과물 가운데 하나는 '프놈펜 빗물선언(Phnom Penh Declaration on Rainwater)'이다. 선언문에는 빗물을 기후위기 시대의 중요한 자원으로 인정하고,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빗물 교육과 연구, 정책과 실천을 확대하자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학회 참가자들이 뜻을 모아 선언을 채택하고, 속 뚜잇 왕립학술원 총장이 이를 공식적으로 선포할 계획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매년 9월 3일을 'UN Rain Day'로 지정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세계에는 이미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이 있다. 그러나 물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생각하는 날도 필요하다. 비가 내리는 원리를 배우고, 빗물이 우리 삶과 식량, 생태계와 문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가르치는 날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학교에 빗물 시설을 설치하고 학생들이 직접 물의 양과 수질을 관찰하며 배우는 '레인스쿨'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캄보디아에만 머물 필요가 없다. 안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세계 여러 지역의 학교와 마을로 확산할 수 있다.

개막식후 기념촬영 개막식에 참석한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와 국내외 빗물 전문가들.
▲개막식후 기념촬영 개막식에 참석한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와 국내외 빗물 전문가들. 한무영

비를 다시 바라보는 일

이번 개막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거창한 기술이나 대형 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빗물을 버리지 말고 모으자."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지나치기 쉬운 말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이 단순한 생각은 더욱 중요해진다. 비가 많이 내릴 때는 모아두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저장한 물을 사용한다. 먼 곳에서 물을 가져오기 전에 가까이에 내리는 비부터 활용한다. 정부가 모든 시설을 만들어주기만 기다리지 않고 학교와 지역공동체가 직접 참여한다.

이것이 캄보디아의 오랜 몬순 지혜이자, 우리가 제안하는 새로운 물 관리의 출발점이다. 프놈펜에서 시작된 이번 논의가 한 번의 국제학회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빗물을 보이지 않는 물에서 보이는 자원으로 만들고, 캄보디아의 경험을 세계와 나누는 일이 이제 시작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프놈펜에서 만남 비’ 두 번째 기사다. 세계적 목표인 SDG 6.1, 즉 모두에게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빗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학회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앞으로 프놈펜 빗물선언, UN Rain Day 제안, 국제 레인비디오 콘테스트, 그리고 캄보디아 레인스쿨 현장 이야기를 계속 전할 예정이다.

#캄보디아 #국제빗물학회 #수자원기상부장관 #IWA #프놈펜빗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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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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