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비지정문화유산 영류정 전국적인 현황으로 볼 때 지정된 문화유산이 아닌 비지정문화유산의 수량이 몇 곱절 많다.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은 지자체 의지에 따라 관리가 달라진다. 지정되면 역사이고 지정되지 않으면 버려야할 역사인가!
엄원식
지방에서 26년간 공직에 몸담으며 지역의 문화유산을 지켜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1년 365일 중 300일 이상을 문화유산 현장과 씨름하며 살았다. 문경에서 백자, 청화백자 등 도자기 분야 4종목을 시·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내고, 잊혀 가던 옛길을 최초의 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며 국보 승격까지 이뤄냈던 순간들은 내 공직 생활을 지탱해 준 유일한 긍지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 한편에는 무거운 체증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왜 진급이 안 될까?", "왜 우리 직렬에는 제대도 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개인의 능력 부족을 탓하기엔 우리가 짊어진 짐이 너무나 무거웠고, 제도는 가혹하리만치 무심했다.
박물관 실내를 벗어난 지자체 학예사의 냉혹한 현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예연구직은 크게 둘로 나뉜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공립박물관 등에서 전시와 동산문화유산을 관리하는 큐레이터, 그리고 지자체 본청에서 국가유산 전반을 책임지는 학예사다. 겉보기엔 같은 '학예사'지만 현장의 온도 차이는 극명하다.
박물관은 정기 휴일이 있고 개·폐관 시간이 법으로 엄격히 지켜진다. 다루는 대상도 주로 실내의 동산문화유산에 집중된다. 반면 지자체 본청 학예사들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야외 현장에서 지역의 모든 역사와 문화, 자연유산과 무형유산까지 통째로 떠안아야 한다. 문화유산 지정부터 보존 관리, 활용 사업 기획, 무형유산 전승 조율은 물론,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부동산 '현상변경허가' 민원까지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
사유재산권과 직결된 현상변경 민원은 담당자가 온갖 욕설과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기피 업무 1순위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자와 개발하려는 자 사이에서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면서도, 야간이나 주말을 반납하며 천연기념물과 문화유산 훼손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슈퍼맨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업무량 속에서, 본연의 임무인 '연구'는 사치스러운 꿈이 된 지 오래다.
도서관법엔 있고, 국가유산기본법엔 없는 것
가장 뼈아픈 것은 이들을 보호하고 지탱할 '법적 근거'의 부재다. 유사 직종과 비교해 보면 지자체 학예사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알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사서직과 박물관 학예사, 행정안전부 소속의 기록연구사를 보라. 도서관법은 공공도서관 및 인구수, 장서 수에 따라 사서 배치를 엄격한 '강제 규정'으로 명시해 두었다. 박물관 역시 박물관미술관법에 따라 학예사가 없으면 아예 등록조차 불가능하다. 2000년대 후반 도입된 기록연구사 또한 공공기록물법을 통해 모든 지자체에 의무 배치되며 탄탄한 직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유독 지자체 본청에서 국가유산 업무를 담당하는 학예사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명확한 채용 기준도, 배치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국가기관 관련 직렬(임업직, 환경직, 사회복지직 등)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채용되는 것과 달리, 국가유산 분야는 지자체장의 '선택'에 내맡겨져 있다. 지자체장이 이해하고 관심이 있으면 뽑고, 아니면 그만이다. 법이 보호하지 않는 전문직은 결국 조직 내에서 소수 직렬로 고립되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법적 유령'이 되고 만다. 언제까지 국가의 뼈대인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을 개인의 피눈물 나는 사명감에만 기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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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청에서 26년간 공직생활.
문화유산 지정, 관리, 보존 업무,
문화예술 정책 업무, 공연 업무.
전, 문경시 문화예술과장 역임.
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역임.
전, 문경문화예술회관장 역임.
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감사 역임.
전, 문경시 가은읍장 역임.
전, 전국학예연구회장 역임.
현, 국가유산활용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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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사서는 필수인데, 국가유산 학예사는 선택? '법적 유령'이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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