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칠리아 팔레르모 공항에 도착하다.
김연순
드디어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시칠리아로 간다. 공항에 도착해 라이언 항공사를 찾아 짐을 부치고 잠시 카페에 앉았다. 에스프레소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커피가 유난히 맛있다.
비행기는 50여 분을 날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공항에 도착했다.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레르모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으로, 이탈리아의 마피아 범죄 조직을 소탕한 검사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와 파올로 보르셀리노(Paolo Borsellino)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시칠리아에 도착하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비 오는 시칠리아라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까지 낭만적이다. 예약해 둔 숙소까지는 버스를 탔다. 중앙역에서 내려 5분 걸으면 숙소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여전히 비가 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비 맞으며 다닌다. 우리도 현지에 적응해야지, 그냥 비 맞으며 숙소까지 걸었다.
숙박 사이트에서 예약하고 이틀 전에 확인도 했건만, 당일 체크인 시간이 다 되어도 어째 연락이 안 된다.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정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인터폰은 없는 데다 인터넷도 안 터진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린다.
맞은편에 작은 카페테리아가 보여 일단 그리로 들어갔다. 춥고 배고프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샌드위치와 파니니, 커피를 주문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숙소 운영자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했으나 묵묵부답이다.
카페테리아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맞은편 숙소 주소를 보여주며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숙소 주인을 아느냐 물었다. 다행히 잘 아는 사람이란다. 그리고는 전화를 하는데 역시 전화 연결이 안 된다. 그렇게 애써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 직원은 급기야 직접 가보겠다며 빗속으로 뛰어나간다.
잠시 후 비에 흠뻑 젖어 돌아왔지만 역시 연락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든다. 인근의 다른 호텔을 안내해 주겠다는 말에 우리는 이미 숙박비를 지불했으니 좀 더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오래된 동네 사람처럼 친절한 호의에 감복하며 우리는 뭐라도 더 팔아주고 싶었다.
그 지역 맥주를 주문했다. 비가 오는데 차가운 맥주를 마시자 으슬으슬 한기가 돌며 몸이 떨려 온다. 왜 연락이 안 되는 걸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오늘 들어갈 수는 있는 건가. 이럴 수가. 꿈에 그리던 시칠리아, 내가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닌데...
기다림에 진이 빠질 무렵 드디어 숙소 운영자와 연락이 닿았다. 카페 직원에게 거듭 감사함을 전하고 넉넉하게 팁을 두고 나왔다. 왓츠앱을 통해 안내받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상자 속에서 열쇠를 꺼내 드디어 입실했다. 들어와 보니 숙소는 사진보다 넓고 깔끔했다. 마침내 들어왔네, 가방을 내려놓으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남편은 장을 보러 나갔다. 물과 과일, 연어, 세탁세제 등 며칠 동안 지낼 생필품을 사 왔다. 가져간 누룽지를 끓여 계란 프라이와 밑반찬 서너 개로 저녁을 먹었다. 오늘 같은 날, 누룽지가 최고다. 끓이는 냄새도 구수하고 걸쭉한 그 맛도 일품이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며 몸이 노글노글해진다.
'태양의 광장'으로

▲ 팔레르모의 콰트로 칸티
김연순
다음 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오전 10시쯤 나와 팔레르모의 명소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로 갔다. 콰트로 칸티는 이탈리아어로 '네 개의 모퉁이'라는 뜻의 교차로를 말한다. 팔레르모 구시가지의 중심에 있다. 1600년대에 만들어진 네 개의 건물 외벽은 층별로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1층은 사계절을 의미하는 작은 분수와 조각상이 있고, 2층은 시칠리아를 통치한 스페인 국왕 네 명의 동상, 3층은 팔레르모의 4대 수호성인의 조각상이 건물 전면에 각각 세워져 있다. 해가 비치는 동안 해의 이동에 따라 네 모퉁이 중 한 곳은 항상 밝게 빛나기 때문에 '태양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팔레르모의 명소답게 관광객들이 많다. 거리의 연주자가 바이올린으로 영화 <여인의 향기>의 주제곡을 연주하고 있다. 익숙한 곡인 데다 선율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가던 길 멈추고 그만 푹 빠져들었다. 멀고 먼 시칠리아까지 와서 팔레르모 구시가지 거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누리는 게 꿈만 같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 듣다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연주자의 악기 케이스에 동전을 넣었다.
팔레르모 대성당으로 들어서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사람들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선생님의 인솔로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단체로 들어오는데 초등학생들이 모두 이어폰을 끼고 집중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모습을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외관부터 특이한데, 얼핏 보면 요새 같기도 하다. 외벽 장식은 대표적인 아랍-노르만 양식으로 12세기 노르만 왕조 시절, 이슬람 장인들의 기술과 미적 감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톨릭 성당이었다가 이슬람 모스크였다가를 반복하며 비잔틴, 고딕, 바르크, 네오클래식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차례로 더해졌다.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니 독특하고도 풍성한 아름다움을 뿜어져 나온다.

▲ 팔레르모 대성당 외관
김연순
대성당에 오는 방문객들의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성 로살리아(Santa Rosalia)다. 성 로살리아는 팔레르모를 페스트 비극에서 구했다고 전해지는 수호성인이다. 팔레르모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버리고 동굴에서 수도 생활을 했는데, 1624년 그의 유골이 발견된 후 팔레르모에 창궐하던 흑사병이 멈추었다고 해서 이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팔레르모 대성당 안 성 로살리아의 유골이 모셔진 은제 유골함과 예배당 앞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매년 7월이면 성 로살리아를 기리는 대규모 축제도 펼쳐진다. 로살리아 동상을 실은 배 모양의 수레는 축제가 끝나면 성당 마당 한쪽에 전시되고 있다.
노르만 궁전에서 만난 특별 전시

▲ 아란치니
김연순
점심으로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와 함께 아란치니와 샌드위치를 샀다. 아란치니는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인데 고기나 채소 등 다양한 종류의 재료와 밥을 섞어 동그랗게 뭉쳐 튀겨낸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주먹밥과 비슷한 형태이다. 성당 마당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았다.
마당 곳곳에 앉아 사람들이 먹는 것처럼 우리도 그래 보고 싶었다. 이런 게 여행자의 설렘이자 기쁨이지 싶다. 벤치에 앉아 아란치니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 눈이 절로 감긴다. 문어를 넣은 갓 튀겨낸 밥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시칠리아의 아란치니에 그만 감동해 버렸다.

▲ 팔라티나 예배당 내부
김연순
야자수와 선인장이 가득한 정원을 지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노르만 궁전으로 향했다. 9세기 이슬람에 의해 건설된 노르만 궁전(Palazzo dei Normanni)은 이후 시칠리아를 점령한 노르만 족의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비잔틴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재 되어 있는 시칠리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고 있다. 한동안 시칠리아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다 현재는 주 의회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
노르만 궁전에 때마침 특별 전시 '인상파의 보물 : 모네와 노르망디'가 진행 중이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인상주의 유화 작품으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풍경과 해안을 담은 작품들이다. 내게 더 인상적이던 것은 미디어아트로 전시 중인 모네의 작품이었다. 풍랑 이는 바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좌초의 위기를 겪고 있는 배. 거센 바다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작은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만큼 모네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 생생했다는 거다.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다음에 방문한 팔라티나 예배당은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로 구성된 대표적인 예배당이다. 예수와 성인들의 에피소드를 모자이크에 담고 있는데, 중후하고도 화려한 금빛이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한다. 비잔틴 양식의 천장과 벽, 이슬람 양식의 벌집 모양 천장과 아라베스크 문양의 벽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신기하게도 한국의 절이 떠오른다. 절에서 많이 본 단청과 매우 비슷하다. 시칠리아의 성당에서 왜 한국의 절이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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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 섬과 뭍을 오가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홍시'라는 별칭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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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튀긴 밥에 눈 질끈, 시칠리아에서 감동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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