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9.04 08:59수정 2026.09.0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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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출할 때 나는 지갑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챙긴다. 전화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없으면 왠지 불안하다. 생각해보니 이제 스마트폰은 전화기만이 아니다. 돈이고, 신분증이고, 회원증이다. 때로는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신용카드도 넣어 두었다.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스마트폰을 꺼낸다. 식당이나 이발소에서도 현금 대신 카드나 계좌이체를 한다.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는 교통카드에 버스요금을 충전하여 사용한다. 교통카드 지갑에는 비상용으로 현금 만 원과 5만 원권 한 장을 넣어둔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지방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서도 지갑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 필요한 돈을 바지 주머니마다 조금씩 나누어 넣었다. 그때는 그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는 교통카드도 잃어버리고 신용카드도 가끔 잃어버렸다. 건망증도 늘었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서 안경을 찾고,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 자동차 키를 찾는다. 그런 내가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에 돈이며 신분증이며 회원증까지 넣어두고 다닌다.
지갑 대신 스마트폰
예전에는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릴까 봐 집에 두고 다녔다. 대신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다녔다. 소중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릴까 봐 또 다른 신분증을 들고 다닌 셈이다. 2025년 여름에는 실제로 주민등록증 때문에 고생한 적도 있다. 한국전력 지사에 일을 보러 갔다가 주민등록증을 복사해야 한다기에 맡겼다. 일을 마치고 전철역으로 가는데 갑자기 주민등록증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다시 뛰어갔지만 이미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다음 날 다시 찾으러 갔다. 더운 날씨에 시간도 한나절이나 허비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을 열면 모바일 신분증이 나온다. 모바일 신분증을 발급받은 것도 우연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내문을 보고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발급받았다. 막상 해놓고 보니 참 편리했다.
서울대공원에 가는 날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 적이 있다. 다른 신분증이 없어 노인복지관 회원증을 보여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돈도 없었다. 결국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친구들은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 전화번호를 한 사람의 것도 외우지 못했다.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그날 스마트폰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았다. 그 후 매주 일요일이면 나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간다. 모바일 신분증을 보여주면 무료로 티켓을 발급받아 입장할 수 있어 친구들과 함께 걷는다.

▲지갑보다 먼저 챙기는 스마트 폰 이 속에는 돈과 신분증,카드가 함께 들어있다
정일국
그래도 현금이 필요할 때
그렇다고 현금이 완전히 필요 없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갔다. 복지관 회원증을 가져오지 않아 위층 사무실로 올라가 회원이라는 확인을 받아왔다. 그런데 주머니를 보니 현금도 없었다. 어찌하랴! 난처하게 서 있는데 뒤에 있던 분이 대신 내주셨다.
"고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현금이나 동전이 필요한 곳은 아직 있다. 관공서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처럼 적은 수수료를 현금으로 내야 하는 경우다. 돌이켜보면 돈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종이돈과 동전에서 카드로, 카드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10년 전의 나에게 지금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네가 스마트폰 하나로 돈을 내고, 신분증까지 확인한다고?"
나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세상이 와버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만 변한 것은 아니다. 나도 변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잊어버리는 것은 다시 배우면 된다.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스마트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느라 집 안을 뒤지는 날이 와도 괜찮다. 다시 찾고, 다시 배우면 된다.
그날 이후로 복지관에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나도 현금을 조금 더 챙긴다. 혹시 나처럼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이번에는 내가 대신 내주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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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후 KOICA해외봉사활동. 현재는 봉사활동경험과 배낭여행 강연가로 활동 중입니다. 77세의 나이에도 배낭을 메고 세상으로 나가는 '백발의 보헤미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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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하루,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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