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수가 휩쓸고 간 네팔 라수와 지역의 모습
이장우
카트만두에서 운전기사를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2차, 3차 홍수가 온다는 정부 경고에 재난 현장 쪽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운전기사가 많았다. 재난 현장을 '가려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8월 29일, 카트만두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사서 트럭에 실었다. 정오에 출발해 지역 조정본부가 있는 비두르로 향했다. 가는 길 검문소에서는 트럭에 실린 물건이 뭔지, 누가 보낸 건지 물었다. 구매 영수증을 보여주고서야 통과했다.
비두르의 지역조정위원회(DCC) 사무실에서 물자 지원을 이야기하자 돌아온 답은 "정부 창고에 넣고 가라"였다. 정부가 필요한 곳에 배분하겠다는 것이었다. 가까운 지역은 정부가 이미 충분히 커버하고 있으니, 직접 전달하고 싶다면 커버하고 있지 못하는 더 먼 지역으로 가달라고 하였다.
11년 전이 떠올랐다. 2015년 지진 때는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산길을 오르면 마을 주민들이 길을 막았다. 내 또래의 청년과 임산부까지 나와서, 물자를 자기 마을에 내려놓지 않으면 길을 비켜주지 않겠다고 했다. 오죽하면 저렇게 하나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자를 빼앗기듯이 주게 되면 그들을 강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기에, 한 시간을 넘게 설득하고 협상해 원래 목표했던 멀고 지원이 닿기 어려운 마을로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 네팔 정부의 통제는 훨씬 잘 작동하고 있었다. 물자가 어디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가는지 기록되고 있었고, 현장에 카오스라 부를 만한 상황은 적었다.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말이 답답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재난 현장에서 정부의 조정 기능이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소식이다. 정부 담당자는 라수와 쪽 베트라와티의 구호 집결지를 지정해 주며 우회로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가 알려준 우회로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흙길로 바뀌었다. 곳곳에서 물이 길을 가로질러 흘렀고, 해가 지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지점에서 길을 가로지르는 물살이 눈에 띄게 거세지고 수위가 높아졌다. 뒤따르던 차들도 선두 차의 신호에 따라 모두 멈췄다.
엔진을 끄고 창문을 닫은 채 차 안에서 기다렸다. 불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코디네이터로 함께 가 주신 고마운 박타님이 차 옆으로 와서 물이 차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물이 차 바닥 가까이까지 올라왔다. 내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 지나 새벽 3시 45분에야 비가 그쳤고, 차량들이 다시 움직였다. 물에 쓸려 나간 길 위에는 돌을 주워 채워 넣어야 했다. 멈춰 있던 차들에 탄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함께 돌을 날랐다.
이 하룻밤의 결론은 육로로, 우회로를 통해 물자를 실어 나르는 방식은 위험하기도 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트럭 한 대를 더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지원을 설계하는 일이다.
살아남은 550명의 학생, 가족을 잃은 120명

▲ 라수와의 칼리카스탄에 구호물자를 전달했다.
이장우
다음 날 새벽 5시에 라수와의 칼리카스탄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이 집 밖 높은 곳에 모여 있었다. 4시 반쯤 산 쪽에서 홍수가 나서 모두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눈에 불안과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잠시 그들 곁에 서 있다가 구호 집결지로 향했다.
아침에야 도착한 집결지는 언덕 위의 스리 닐라칸타 중등학교였다. 학생이 550명인 학교인데, 학교가 높은 곳에 있어 학생들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집은 아래 베트라와티 바자르에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 가운데 120명가량이 부모와 가족을 잃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자에 서명하고 인수인계하는 동안에도 그 말이 계속 귀에 남았다.
집결지는 어려운 상황에도 잘 운영되고 있었다. 식품과 비식품을 분리해 보관하고, 들어온 물자를 문서로 기록하고, 가장 가까운 대피소부터 배분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 이 집결지 너머 길이 끊긴 국경 쪽 마을에는 정부와 군 헬기 외에는 아무도 닿지 못한다.
가까운 대피소를 찾아가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그들이 먼저 꼽은 것은 침구와 매트, 수건, 그리고 취사용 가스였다. 길이 끊기면서 LPG가 지역 전체에서 바닥나고 있었다. 전기가 없어 휴대전화가 꺼져 있으니 태양광 램프와 충전기, 가능하다면 발전기가 절실하다고 했다. 옷도 필요했다. 말은 안 했지만 위생용품, 베개, 양말과 슬리퍼, 아이들을 위한 물건도 부족했다.
그리고 숫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가족이 같은 지역 혹은 다른 지역의 친척 집에 얹혀 지내고 있었다. 한 집에 수십 명이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가정들은 대피소 명단에 없고, 그래서 지원 대상에서도 빠지기 쉽다. 이재민을 받아준 집이 무너지면 이재민도 다시 무너진다.
한 달 뒤가 더 걱정이다

▲ 네팔에서 구호활동중인 피스윈즈 활동가들
이장우
지금 식량은 접근 가능한 지역부터 비교적 충분히 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한 달 뒤다. 뉴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모두의 관심이 식을 때쯤엔 지원이 줄어든다. 하지만 물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재난 현장에선 항상 똑같은 곡선을 보아왔다.
의료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현장에서 더 오래 남을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새벽 4시 반의 물소리에 온 마을이 언덕으로 올라가는 곳, 가족을 잃은 아이가 120명이나 되는 학교. 물리적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해 심리사회적 지원이 지금부터 설계되어야 한다. 이것이 몇 주가 아니라 몇 년의 문제인 이유다.
왕복 24시간을 넘게 길 위에서 보내고 트럭 한 대 분량의 물자를 전달한 셈이다. 그 하루가 헛되지 않으려면, 이 긴 이동이 정확한 곳에 정확한 것을 가져다주는 데 쓰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와의 긴밀한 조정, 그리고 현장 정보를 가진 사람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네팔의 사람들과 정부는 이번 초기 대응 이후 매우 길고 튼튼한 복구와 기반시설 재건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강이 쓰나미가 되어 삼킨 마을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덕 위 학교에서 물자를 내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 어둠 속 차 옆으로 와서 물이 차오른다고 알려주던 사람들, 돌을 함께 나르던 손들을 생각한다. 다음에 네팔에 올 때는 부디 재난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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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잃은 아이 120명... 17시간 달려 마주한 불안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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