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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 몰래 만든 고추잡채, 면은 탱글 맛은 달콤

    당면·청양고추·부추만 있으면 재료준비 끝... 추억의 맛을 집밥으로

    등록 2026.09.04 11:46수정 2026.09.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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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수요일 아침 8시, 여고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닝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려고 막 소파에 앉았을 때였다.

    "웬일이야? 바쁜 네가 이 아침에 전화를 다 하고."
    "네 목소리에 해무가 가득 묻어 있네. 촉촉하면서도 보들보들하네."


    근래 친구의 남편이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팔목 골절상을 입었다. 5주간 남편 수발과 친정어머니 병간호를 도맡아야 했던 친구였기에 전화받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학교 방학이었을 때도 동화로 등단했을 때도 밥 한 끼 같이 하자고 했지만,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 친구는 바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시간 있으면 만나자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이제 숨구멍이 좀 트이나 싶었다. 마침 같은 날 수성구 미용실 예약이 되어 있던 터였다. 친구가 사는 곳이 미용실 근처여서 머리를 다 하고 오후 5시쯤 만나기로 했다. 식당 주소를 찍고 도착해 보니, 내가 전에 살던 아파트 바로 건너편이었다. 이사를 나온 후, 한 번도 그 주위를 가 본 적이 없다. 가장 힘들었던 2012년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이제는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졌는지 그마저도 삶의 흔적으로 여겨졌다.

    여전히 자리 지키는 맛집

    초간단 고추잡채 재료 불린 당면, 채 썬 청양고추, 부추 그리고 간단 양념장
    ▲초간단 고추잡채 재료 불린 당면, 채 썬 청양고추, 부추 그리고 간단 양념장 황윤옥

    친구와 대구볼찜을 먹고 그 동네의 맨 끄트머리인 진밭골 카페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갈 때였다. 한 식당 바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 식당이었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고추잡채와 두부 지짐이었다. 두어 번 가서 먹어봤는데 특별할 것 없는 조합이 오히려 아주 특별한 맛을 냈다. 그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맛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집에서도 만들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도전해보는 편이다. 능이백숙도 집에서 끓여 먹고 문어삼합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그때는 고추잡채도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었던 음식 중 하나였다.


    친구 역시 집에서 고추잡채를 가끔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 6년이 지날 동안 한 번도 해 먹질 못했다. 메뉴를 까맣게 잊고 살았던 탓이 가장 크다.

    며칠 전 집에서 만든 청양고추 다짐 반찬이 동이 났다. 땡초김밥을 세 번이나 싸서 먹고 고기에도, 두부에도 올려 먹다 보니 한 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지난 3일, 점심을 먹으러 온 남편이 바닥난 반찬 통을 보더니 스리슬쩍 한마디했다.


    "청양고추 다짐 반찬 한 번 더 해 줘."

    오후에 장을 보러 가기 전 주방 서랍을 열어 보았다.

    "오호라, 당면이 있구나. 너는 내일 새로운 아이로 변신시켜 줄게."

    당면은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둔다. 집에서 닭볶음탕을 자주 만들어 먹는데 꼭 넣어야 하는 재료다. 남편이 당면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빼면 섭섭해한다.

    다음 날 오전에 남편이 쉰다고 해서, 전날 저녁 마트로 향했다. 청양고추는 사는 김에 넉넉하게 샀다. 멸치와 차돌박이도 샀고, 부추도 한 단 사 왔다. 남편에게 깜짝 요리를 선물해 주고 싶어서 미리 귀띔해 주지 않고 비밀리에 움직였다. 추억의 음식을 선사하고 싶었다.

    간편해진 잡채요리

    고추잡채 남편은 잡채덮밥을 저는 그냥 잡채를 호로록거리며 먹었습니다. 반찬은 물김치 하나.
    ▲고추잡채 남편은 잡채덮밥을 저는 그냥 잡채를 호로록거리며 먹었습니다. 반찬은 물김치 하나. 황윤옥

    청양고추 다짐 반찬은 전날 저녁에 해 두었으니 자고 일어나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야심 차게 준비한 고추잡채 만들기에 돌입했다. 하루 전 자기 전에 당면은 찬물에 담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러면 삶을 필요 없이 바로 요리해 먹으면 된다. 삶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야 면이 붇지 않고 불필요한 수분도 나오지 않는다. 요리가 완성된 후에도 당면이 양념을 쏙 흡수하면서 훨씬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식감이 유지된다.

    보통 잡채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갖은 채소를 썰어 볶아야 하고 당면 손질도 만만찮다. 그래도 다행인 게 요즘은 자른 당면이 있으니 훨씬 수월하다. 이런 준비 과정이 성가셔서 주부들이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만들지 않는 요리 중 하나가 잡채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걱정은 싹 접어두시라. 이 고추잡채로 말할 것 같으면 쉬워도 너무 쉬운 요리다. 재료는 당면, 고추, 부추 이 세 가지면 끝이다.

    먼저 청양고추는 반으로 길쭉하게 자른 다음 씨를 다 털어내고 가늘게 채 썬다. 씨를 털어내야 요리가 깔끔해진다. 부추는 씻은 후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다음은 양념장을 만들 차례, 이것 역시 너무 쉽다. 진간장과 홍게간장 2~3큰술씩, 설탕 조금을 섞어둔다. 간이 싱거우면 홍게간장이나 참치액젓으로 취향껏 맞추면 된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채 썬 청양고추를 넣어 약한 불에서 향이 올라올 때까지 볶는다. 불린 당면과 양념장을 함께 넣고 센 불에서 양념이 잘 배도록 빠르게 볶아준다. 불을 줄인 뒤 부추를 넣고 가볍게 섞어준다. 너무 뻑뻑하다 싶을 때 물을 조금 넣어주면 부들부들해진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통깨를 두르면 매콤달콤한 고추잡채 완성이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잡채를 커다란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옮겼다. 목이 막힐 때 한 숟가락씩 떠 먹을 수 있게 물김치만 하나 턱 꺼내놓았다. 밥을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잡채덮밥을 만들어 주니 후루룩 잘 먹는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나는 잡채만 호로록거렸다. 매콤한 맛이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만든다.

    "혹시 생각나는 거 있어?"
    "오~ 예전 아파트 옆 식당 메뉴네. 맛이 완전 똑같은데."

    이렇게 단박에 알아차리다니, 깜짝 메뉴는 대성공이었다.

    우리 부부는 남편이 바빠서 식당에 잘 가지 못한다.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찾아서 특별하면서도 소소한 집밥을 자주 해 먹는다. 화려한 외식보다 익숙한 식탁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소박한 한 끼, 그것이야말로 우리 집만의 가장 특별한 행복이다. 이번에 먹은 고추잡채는 단순히 음식만 먹은 게 아니다. 한때 지우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추억으로 승화시킨 회복 음식이었다.

    재료 준비도 간단하고 입맛도 살살 깨우는 매콤달콤 고추잡채, 오늘 한번 만들어 보실래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고추잡채 #초간단레시피 #불린당면 #세가지재료만있으면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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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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