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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장시술 네 번, 설악산 산행 7번 째 만에 공룡의 등을 타다

    지루하고 힘든 걸음과의 싸움, 19.1km 16시간 25분 공룡능선 산행기

    등록 2026.09.04 17:04수정 2026.09.0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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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봉에서 본 풍경 대청봉에서 바라 본 속초시와 동해바다 풍경
    ▲대청봉에서 본 풍경 대청봉에서 바라 본 속초시와 동해바다 풍경 정도길

    길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육신과 정신의 한계를 시험했다. 포기하고, 주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평탄한 길 100미터라면 1분정도 걸리지만, 짧게는 3분이 걸렸고, 길게는 6분이 걸렸다. 걸으면서 자꾸 시계를 들여 봐야만 했다.

    다리는 경련이 오는 듯, 한 발자국을 떼 놓기가 힘들었다. 산행에서 오르막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내리막길이 마냥 편한 길도 아니었다. 체감으로 느끼는 60~70% 급경사 너덜 길은 외려 오르막보다 더 위험한 길이었다. 이런 길은 발을 잘못 내딛거나, 발이 꼬여 넘어지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8월 마지막 주, 여름이면 공룡의 등을 타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설악산으로 향한다. 7번째 만에 도전하는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이다. 공룡능선은 설악산의 여러 코스 중에서 제일 험한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탐방로 안내도에 의하면, 공룡능선은 '매우 어려움' 구간으로 희운각대피소에서 마등령삼거리까지 5.1km에 4시간 20분이 걸린다고 안내돼 있다.

    산을 좀 다닌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고 싶은, 힘들지만 매력 있는 코스로 인식돼 있다. 2년 전 도전했다가 중청에서 등산화 밑창이 떨어지는 바람에 대피소 예약을 취소하고 오색으로 하산해야만 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드디어 공룡의 등을 타고, 5시간 동안 설악의 풍경에 흠뻑 빠졌다.

    공룡능선 공룡능선은 설악산 등산로 중에 제일 험한 코스로 알려져 있다.
    ▲공룡능선 공룡능선은 설악산 등산로 중에 제일 험한 코스로 알려져 있다. 정도길

    이번 산행을 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공룡능선 구간은 산세가 험하고 힘들다는 것은 산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공룡능선은 코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약 19km 내외 거리에 빨리 걷는 사람이라도 13시간 안팎으로 걸어야 하는 힘들고 지루한 코스다.

    30~50대라면 무난히 산행을 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60대 마지막 나이라면 쉽지마는 않은 거리와 시간이다. 나는 심장 시술을 네 번이나 받았다. 심장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치의와 긍정적인 상담 끝에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배낭은 꾸려졌고 발길은 설악산으로 향했다.

    이번 여정은 8월 25일과 26일, 1박 2일 걸음으로 희운각대피소에 예약을 마쳤다. 잘 걷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종주를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쉬엄쉬엄 설악의 풍경에 빠지면서, 나 자신 수행을 위한 명분으로도 삼았다. 힘든 시간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지나온 삶에 후회하고 반성할 일은 없었는지, 또 여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울산바위(뒤) 공룡능선을 타면서 보게 되는 울산바위(뒤)와 동해 푸른바다.
    ▲울산바위(뒤) 공룡능선을 타면서 보게 되는 울산바위(뒤)와 동해 푸른바다. 정도길

    심장시술 네 번, 주치의와 상담으로 공룡능선에 도전

    들머리인 오색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은 상쾌하면서도 흥분에 들떴다. 하루 코스가 아니었기에 일찍 출발할 필요는 없었다. 혼자 산행은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홀로 산행하는 스타일이다. 걷는 속도에 따라서 일행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산행하는 내내 조용히 나만의 시간에 빠져 보는 것도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어 좋기 때문이다. 오색 코스는 들머리부터 대청봉 정상까지 오로지 오르막길로 돼 있다. 너덜 길과 계단 길로 반복되며 등산객을 지치게 만든다. 급경사 등산로는 코에 닿을 듯, 땅만 보며 걷게 된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 26. 8. 25. 07:40,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이다.
    ▲남설악탐방지원센터 26. 8. 25. 07:40,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이다. 정도길

    이번 산행을 위해 거금을 들여 스마트워치도 구입했다. 기능도 다양해 등산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꼭 필요한 용품이라는 생각이다. 걷는 구간은 익히 잘 알지만, 만약을 위해 시계에 등산로도 다운받았다. 그밖에 고도, 소요시간, 거리, 페이스, 심박 수 그리고 평균속도 등 다양한 정보는 큰 도움이 되었다.

    30분마다 물을 마시라는 알림은 넉넉한 우군이 돼 주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독일에서 왔다는 한 젊은이와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는 연신 "설악의 풍경이 환상적이다"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힘든 걸음으로 5시간 만에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해발 1708m)에 올랐다. 스마트워치 고도계는 표지석에 표시된 1708m와 정확히 일치했다. 맑은 날씨는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보여준다. 속초와 양양 시가지 그리고 푸른 동해바다가 피로를 말끔히 씻겨준다.

    울산바위와 내일 걸어야 할 공룡능선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암석지대는 중국의 장가계 풍경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도중에 만난 외국인의 말처럼 환상적이다. 점심은 밤알이 2개 든 팥죽과 초코파이 두 개로 해결했다. 정상에는 서너 사람만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청봉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해발 1,708m), 스마트워치 고도계와 정확히 일치했다.
    ▲대청봉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해발 1,708m), 스마트워치 고도계와 정확히 일치했다. 정도길

    이제부터 목적지인 희운각대피소까지는 대부분 내리막길이다. 심적으로 좀 편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에 편한 걸음이다. 중청에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중장비는 가동을 멈춘 채 주변이 어지럽혀져 있다. 한계령휴게소 방향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소청에 이르니 설악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왼쪽 방향으로는 소청대피소와 봉정암 그리고 백담사로 향하는 코스와 용아장성이다. 정면으로는 희운각대피소가 산골짜기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고, 그 뒤로는 거대한 암석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웅장한 모습의 울산바위는 동해를 지키는 지킴이 역할을 하는 듯 느껴진다.

    대청봉에서 보는 설악의 풍경과 동해바다, 중국 장가계 부럽지 않아

    오색에서 출발한 지 7시간 32분 만에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입실시간은 오후 3시부터 7시까지로, 시간 여유가 있어 배낭을 벗고 땅에 드러누워 하늘을 봤다. 흰 구름과 푸른 색 하늘이 조화롭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험한 고생을 하는지 생각에 잠겼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삶은 도대체 무엇이며, 죽음은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최근 존경하던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은 '생과 사'란 무엇인지,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생각을 접고 대피소 안내 직원의 설명을 듣고 방을 배정받았다. 복층 구조로 된 방은 1인실로 생각보다는 폭이 넓고 깔끔한 상태로 거의 호텔 수준이라는 느낌이다.

    희운각대피소 오색에서 7.5km 7시간 32분을 걸어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희운각대피소 오색에서 7.5km 7시간 32분을 걸어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정도길

    설악산국립공원 대피소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날 희운각대피소는 평일이라 그런지 등산객은 20여명쯤으로 보인다. 국립공원 대피소는 취사도구는 개인이 준비해야 하며, 이곳에는 전자레인지 2대만 있을 뿐이다. 저녁은 햇반과 컵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어떤 이는 버너에 삼겹살을 구우면서 제법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다.

    소등시간은 오후 9시로, 다음 날 오전 4시에 일어나 신선봉 일출을 볼 예정으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출발하려니 헤드랜턴이 불이 켜지지 않는다. 집에서 충전할 때 고무 타는 냄새가 나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고장이 나 버린 모양이다.

    날이 밝고 걸음을 할 수 있는 오전 5시 45분이 돼서야 출발이다. 무너미고개부터 본격적인 공룡능선의 시작이다. 안내판에는 "현 위치에서 소공원까지는 8시간 이상 소요되고, 반드시 2인 이상 탐방(단독산행 금지)"이라 적혀있다.

    20여 분이 지나고 첫 번째 난관을 만났다. 급경사 암벽에 쇠파이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데, 위를 보니 아찔한 느낌에 겁도 났다. 아침 이슬로 손이 미끄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난관을 돌파하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대피소에서 1시간여 만에 오른 신선봉, 장엄한 동해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으로 느낌을 대신했다.

    급경사 구간 설악산 공룡능선은 이런 급경사 구간이 반복된다.
    ▲급경사 구간 설악산 공룡능선은 이런 급경사 구간이 반복된다. 정도길

    이제 겨우 공룡의 등에 올라탄 시간이다. 공룡능선은 울퉁불퉁한 공룡의 등처럼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걸 맞는 이름이다. 내리막 오르막 구간은 끝도 없이 반복되고, 힘이 들 즈음 풍경이 좋은 데서 휴식을 취하며 사진도 담았다.

    1275봉 인근에서 신선봉 일출을 보려고 오전 4시에 출발한 부부일행을 만났다. 21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운영자 부부는 영상 촬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듯하다. 1275봉은 공룡능선에서 대표적인 화강암 암벽 봉우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범의 어금니를 닮았다는 범봉과 울산바위도 나를 봐 달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다. 고행의 여정 끝, 5시간 만에 마등령삼거리에서 공룡의 등에서 내려야 했다. 여기서는 오세암을 지나 백담사로 이어지고, 내가 가고자 하는 소공원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1275봉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암봉인 1275봉.
    ▲1275봉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암봉인 1275봉. 정도길

    5시간 동안 공룡의 등을 타고 놀았다

    설악산 탐방로 구간별 난이도는 5단계로 나뉜다. 매우 쉬움, 쉬움, 보통, 어려움 그리고 매우 어려움 등이다. 마등령삼거리에서 설악산 이정목(다목적 위치 표시판) 번호 '02-04'까지는 '어려움', 그 다음부터 비선대까지 '매우 어려움' 구간이다. 마등령삼거리에서 비선대까지 3.5km에 3시간이 걸린다는데, 1km에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실제로 나는 2시간 56분이 걸렸다.

    산행을 떠나기 전 어느 블로그를 보았다. 1954년생 본인은 2시간 26분이 걸렸는데, 다른 1952년생은 2시간이 걸렸다며 '대단하신 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두 분보다 몇 살 아래지만 시간이 더 걸렸고, 그 두 분이야말로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청봉(왼쪽) 공룡능선을 타면서 뒤돌아 본 운무에 쌓인 대청봉(왼쪽).
    ▲대청봉(왼쪽) 공룡능선을 타면서 뒤돌아 본 운무에 쌓인 대청봉(왼쪽). 정도길

    마등령 1쉼터에서 앞서 간, 지난 밤 잠시 대화를 나눴던 50대 초반 남성을 만났다. 그는 벤치에 누워 있다가 인기척에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다리가 아파 도저히 못 걷겠다며, 스프레이 파스를 뿌린다. 비선대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는 말에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하고 먼저 발길을 옮김에 안타까움만 느껴진다. 이정목 02-04번부터는 아찔할 정도로 급경사다. 큰 바위로 된 너덜 길은 발 디딤 하기가 쉽지가 않다. 잘못 비끗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체력이 바닥으로 향할 때쯤, 희망이 보인다. 비선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다리에 올라섰다.

    비선대 비선대에서 본 암봉.
    ▲비선대 비선대에서 본 암봉. 정도길

    비선대부터 소공원까지는 3.0km로 평탄한 구간이다. 그렇다고 체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마냥 쉽게 걸을 수도 없다. 그래도 너덜 길보다는 한층 수월하다. 힘든 걸음 끝에 소공원에 도착했다. 이날 희운각대피소에서 11.6km를 8시간 53분을 걸었다. 전날 오색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 7.5km를 7시간 32분을 걸었다. 이틀 동안 19.1km, 16시간 25분을 걸은 셈이다. 그렇게 타 보고 싶었던 설악의 공룡능선, 내년에 또 갈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때가 돼 봐야 알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
    #설악산 #공룡능선 #대청봉 #희운각대피소 #마등령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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