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을 기념해 나온 <노무현 평전>(위즈덤하우스)의 표지.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집필했다. 노무현재단의 첫 공식 평전이다.
위즈덤하우스
전반부 다섯 개 장은 한 소년이 인권변호사가 되고 청문회 스타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를 연대기로 따라간다. 그런데 이 연대기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다.
1963년 농협 입사를 목표로 부산상고에 들어갔지만 입사시험에서 떨어졌다. 1966년 고졸 학력으로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시험 최종 합격까지 9년이 더 걸렸다.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첫 도전에 당선됐으나 1년 뒤 의원 사퇴서를 던졌다. 10년 뒤 서울 종로 재보궐에서 당선되고는 6개월 만에 다시 사퇴했다. 2000년에는 지역구도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 출마해 낙선했다.
2008년 5월 어느 봄날, 노무현은 모교인 대창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 앞에 섰다. 연설의 첫마디가 이랬다. "내가 7번 선거를 해서 4번을 졌거든요. 그런데 대통령도 했어요." 어린이도 알아들을 만한 문장 하나에 인생 역정이 통째로 들어 있다.
저자는 이 실패의 기록을 미화하지도, 비장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산 출마를 둘러싼 통념에 토를 단다.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나갔다는 칭찬도, 무모했다는 평가도 모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부산 어느 지역에서도 노무현은 상대 후보와 엇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했고, 위험하지만 승산이 있는 도전이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200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그는 "위인의 약점은 범인의 위안이다"라고 썼다. 설법 도중 허리가 아파 눕고 싶다고 한 석가모니, 결혼식을 앞두고 노심초사하던 청년 링컨에게서 그는 보통 사람의 가능성을 봤다. 이 평전을 읽는 독자가 노무현에게서 얻는 것도 결국 같은 종류의 위안일 것이다.
공식 기록에서 소거된 것들
평전을 일대기와 갈라놓는 지점은 6장부터 선명해진다. 재임 5년을 다룬 이 장은 연대기가 아니라 의제와 사건 중심으로 짜였다. 북핵, 파병, 대연정, 한미FTA, 행정수도. 저자는 연대기나 비망록 방식도 시도했지만 주제가 불분명하고 산만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작은 일화와 곁가지를 과감히 덜어냈다고 밝혔다.
대신 남은 것은 공식 기록에서 지워진 표정과 혼잣말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논리로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날, 노무현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게 소감을 물었다. 재판관들 머리가 참 좋다는 답이 돌아오자, 자기도 처음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이 결정을 "헌재에 의한 쿠데타"로 규정했다. 다음 날 아침 조찬에서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온다. 국가보안법을 잘못 건드려 수호 신령들을 노하게 한 것이 실수였다는 것이다.
북핵 국면의 한 장면은 더 아프다. 예측이 깨졌음을 인정한 그는 이 상황을 벌교 기찻길에 비유하며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설명하던 중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다. 배신감이 호흡을 거칠게 했고, 그 감정은 곧 자책으로 바뀌어 좌중에 흩어졌다. "LA 발언, 결국 바보가 되었습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다룬 대목에서는 결이 또 달라진다. 행사를 앞두고 정치인들은 으레 사람이 적게 올까 걱정하는데 노무현은 정반대였다고 저자는 적는다. 사람이 많이 올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차비를 보태준 것도 아닌 사람들이 땡볕과 칼바람을 뚫고 찾아오는데 정작 해준 것이 없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열정은 뜨거웠고 매너는 쿨했다는 문장으로 저자는 그 시절 지지자들을 요약한다.
2009년 봄 봉하마을 대목에 이르면 문장이 짧아진다. 3월 말 장군차 나무를 옮겨 심는 날 노무현은 오랜만에 밖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는 서둘러 사저로 돌아갔다. 봄을 느낄 자유가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어쩌면 스스로 그 자유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쓴다.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혼잣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대연정'의 물음표와 "말이 많은 대통령"이라는 훈장

▲ 8월 31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노무현 평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책은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집필했다.
장철영
저자는 묻는다. '노무현은 왜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대연정을 고심했는가.'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서 그랬다는 답이 가능하지만, 저자가 아는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엄중한 일이라도 머릿속 생각을 감추는 법이 없었고, 있는 그대로의 속내를 참모와 공유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유독 이 주제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 없이 혼자 결론을 내리다시피 했는가.
저자는 답을 내놓는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때는 파장이 워낙 커서, 그리고 실패 이후에는 상처와 타격이 너무 커서 그 이유를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이제 와 되짚어보면 대연정 제안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그렇게 혼자 몰두하고 집착하며 구상했던 그 시간 자체였던 것 같다고 적는다.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의 가장 아픈 실패에, 그것도 20년 넘게 곁을 지킨 참모가 물음표를 다는 일. 헌사와 평전을 가르는 선이 여기 있다.
8장과 9장은 연대기에서 아예 빠져나온다. 리더십과 캐릭터를 다룬 8장에는 실용과 원칙 사이, 사람과 일하는 법, 시스템 마니아, 금기를 넘는 호기심 같은 소제목이 늘어선다. 반기문을 유엔으로 보낸 과정이나 인사청문회 확대를 밀어붙인 대목, 측근과의 거리를 재는 장면들이 여기 모여 있다. 시간순으로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성격이라는 축으로 다시 배열한 셈이다.
<평전>의 저자가 노무현의 말과 글을 담당했던 참모라는 사실이 가장 잘 살아나는 곳은 마지막 9장이다. 그는 노무현이 재임 시절 가장 많은 말을 남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처럼 권력기관에 눈치를 주며 법 위의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노무현이 가진 유일한 권력은 인사권뿐이었고 나머지 모든 사안을 풀어가는 수단은 오로지 말과 글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설화(舌禍)'마저 다르게 읽는다. 말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는 방증이며, 말하지 않고 힘으로 통치하는 대통령보다는 백번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논쟁적인 해석이다. 참여정부의 설화가 불러온 정치적 대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판단은 근거를 갖고 제출된 평가이고, 독자는 그것과 다툴 수 있다. 평전이 일대기와 다른 지점이 또 여기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우선 물리적 부담이다. 928쪽에 4만 9500원. 노무현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권하기에는 문턱이 높다. 재임 5년을 다룬 6장 하나가 330쪽을 넘어 책의 3분의 1을 넘어선다. 의제별 서술이 촘촘한 것은 미덕이지만, 그 시대를 통과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밀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발간사가 바라는 것처럼 "아직 노무현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첫 관문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저자가 스스로 밝힌 그 거리다. 평전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해석의 경합인데, 이 책의 해석은 대체로 하나의 시선에서 나온다. 비판적 평가가 필요한 지점에서 서술의 온도가 낮아지는 대목도 있다. 이건 결함이라기보다 이 책이 처음부터 안고 출발한 조건에 가깝다. 저자가 그 한계를 감추지 않았다는 점, 재단 평전평가위원회가 초고를 검토했고 891쪽부터 이어지는 참고 자료와 주(註)로 근거를 밝혀두었다는 점은 함께 기록해둘 만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놓인 자리는 분명하다. 노무현만큼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정치인도 드물다. 누군가에게는 부림사건의 변호인이고, 누군가에게는 '5공비리 청문회 스타'인 초선 의원이며, 누군가에게는 바보 노무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결단으로 희망과 실망을 함께 안긴 대통령이다. 그 강렬한 장면들이 어떻게 하나의 생애로 이어졌는지를 처음으로 꿰어보려 한 시도가 이 책이다. 기억 속의 노무현을 역사 속의 노무현으로 옮기는 작업의 첫 삽인 셈이다.
어느 정치인의 영혼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 8월 29일 제17회 봉하음악회(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린 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평전>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앞에 헌정하며 인사를 드렸다.
노무현재단
저자 윤태영은 1988년 노무현과 처음 스치듯 만났다. 의원회관 보좌관으로 일하다 옮긴 출판사에서 노무현의 첫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출간 작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말과 글을 다루게 됐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두 차례의 대변인, 제1부속실장과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냈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귀향한 뒤 '봉하 집필팀'을 이끌었다. '노무현의 필사', '노무현의 복심'으로 불렸다. 지은 책으로 <대통령의 말하기>, <기록>, <바보, 산을 옮기다> 등이 있다.
그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맺는다. "게으름과 무기력함의 소산이었던 이 책을 이제 두려움으로 세상 밖에 내보낸다"고. 본 대로 들은 대로 쓰라던 노무현의 숙제를 부족하지만 이것으로 마무리한다고. 그리고 "굴곡진 역정 속에서도 지향은 언제나 곧았던 어느 정치인의 영혼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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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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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노무현'을 '역사 속의 노무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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