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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래·유시민 부러울 때 있지만 후회 안 한다"

    [특별기고] '정인' 혹은 황광우 작가 "나는 왜 <빨치산 리포트>를 썼나"

    등록 2026.09.07 17:41수정 2026.09.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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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명 ‘정인’을 쓰는 황광우 작가가 최근 펴낸 <빨치산 리포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1918~1954)를 본격 조명했다.
    ▲ 필명 ‘정인’을 쓰는 황광우 작가가 최근 펴낸 <빨치산 리포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1918~1954)를 본격 조명했다. 다큐북스 제공

    "광우, 자네가 전두환은 이겨도 미국은 못 이기네."

    내가 장가를 간 것은 1984년 3월 17일. 장인 어르신은 사위에게 몸조심하라면서 이렇게 훈계하였다. 장인 어르신의 친구들이 모두 남로당 당원이었고, 죽어간 친구들을 안타까워했다.

    1945년~1954년 10년의 현대사는 미국의 '남로당 박멸사'

     수도사단장 송요찬 장군과 미군 코너드 힐데란트 대령이 생포된 빨치산들을 지켜보고 있다. 부상당한 두 빨치산은 생포되었을 것이다. 그 뒤로 트럭에서 아직 내리지 않은 여성들이 보인다.
    ▲ 수도사단장 송요찬 장군과 미군 코너드 힐데란트 대령이 생포된 빨치산들을 지켜보고 있다. 부상당한 두 빨치산은 생포되었을 것이다. 그 뒤로 트럭에서 아직 내리지 않은 여성들이 보인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우리는 해방 정국을 이승만 대 남로당의 대결로 보았다. 승자는 이승만이고 패자는 남로당인 것으로 알았다. 이 인식 틀이 잘못이었다. "이승만은 자기가 각본을 쓰고, 자기가 연출하고, 자기가 배우를 맡았다"고 이병주(소설가)는 썼다. 아니다. 해방 정국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담당한 이는 미국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이 쓴 연극 대본의 배우였다.

    해방 정국에서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지도자는 다 암살되었다. 1945년 12월에 송진우가 죽었고, 1947년 7월에 여운형이 죽었으며, 1949년 6월 김구가 죽었다. 암살자의 배후는 저마다 다르지만 외세에 반대한 토착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세 분은 공통된다.

    남로당은 떼죽음이었다.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것은 남로당의 목을 조이기 위한 올가미였다. 10만 명을 잡아들였다. 1950년 7월 5일, 이승만 정부는 좌익수를 처형하였는데 이때 미 헌병의 입회하에 처형이 진행되었다. 이어 보도연맹원들을 죽였다.

    1950년 12월부터 양민학살을 개시했다. 영광에서 함평에서 장성에서 '광주 학살' 100배 규모의 잔인한 짓이 소리소문없이 전개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산으로 올라간 6만 명의 젊은이들이다. 1951년 3월, 미군은 비행기로 세균을 뿌렸고, 이어 네이팜탄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국제법을 위배한 학살행위였다.


    1945년에서 1954년에 이르는 10년의 현대사는 미국의 '남로당 박멸사'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코리언' 부족 30만 명을 죽였다. 교활하게도 코리언 용병을 앞세워 코리언 부족을 죽였으니 이것이 해방 후 전개된 좌우 대결의 실상이다. 백선엽은 미군이 고용한 용병 대장이었다. 산으로 올라간 젊은이들을 죽인 자는 맥아더 후임 '제임스 밴 플리트'였다.

    번역, 구로동 '마찌꼬바'에 취업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


    1983년 나는 구로동에 널려 있는 조그만 철공소, 마찌꼬바(소규모 가내공장이나 영세한 동네 철공소를 뜻하는 용어-편집자 말)에 취업했다. 온 힘을 다하여 일하고 있는데, 반장이 나를 불렀다.

    "야, 너, 학교 어디까지 나왔어?"
    "중학교 나왔지라."
    "인마, 일은 힘으로 하는 게 아냐. 머리로 하는 거야, 머리."

    그날 돌아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이 스물다섯 살을 먹도록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번역이었다.

    빨치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빨치산 리포트>를 썼다. 김선우의 육필 편지를 정서하였고, 경찰의 토벌 일지 <데일리 리포트 Daily Report >를 번역한 것 외엔 다 남의 글을 빌려와 짜맞춘 것이다.

    젊은 시절 혜당 스님은 <더 게릴라 워페어 인 베트남 The guerilla warfare in Vietnam >이라는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베트남 게릴라 전사>를 번역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형님으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데일리 리포트>가 어렵지 않았다.

    "나는 100만 부 나갔는디"... 정인, 황인평, 조민우, 최윤희, 이종수, 홍승기

     <빨치산 리포트>를 쓴 황광우 작가는 그동안 여러 필명으로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
    ▲ <빨치산 리포트>를 쓴 황광우 작가는 그동안 여러 필명으로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 황광우 작가 제공

    우스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황광우가 돈을 추구하여 책을 쓴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사익을 위해 책을 쓴 적이 없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혁명운동이었고, 집필은 혁명운동을 위한 프로파간다였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집필하고서 받은 원고료가 담뱃값도 안 된다고 투덜거렸으나, 나는 지난 10년 동안 <광주 이야기> 24권을 쓰면서 담뱃값도 받지 않았다. 거지가 되지 않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이 신통할 뿐이다.

    황광우가 이름을 날리기 위해 책을 쓴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2014년 즈음의 일이다. 작고하신 홍세화 선배는 광주에 올 때마다 나를 만났다. 하루는 홍세화 선배에게 물었다.

    "<택시운전사>를 포함하여 책이 몇 부 나갔습니까?"

    한창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70만 부?"

    그때 나는 말했다.

    "나는 100만 부 나갔는디."

    문제는 100만 부의 저자가 다 다르다는 거다. 운동권의 교과서가 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은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했다. 정인은 '바르게 사는 사람'이다. 노동운동을 위해서, 조직운동을 위해서 나는 실명을 숨겼다. 대신 등장한 이름이 정인, 황인평, 조민우, 최윤희, 이종수, 홍승기이다.

    1985년 <러시아혁명과 볼셰비키당사>의 역자는 황인평이다. 빨치산 선배들이 읽었다는 전설의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나를 대신하여 출판사 사장 박윤배(서울대 77, 철학과)가 옥살이하였다.

    유홍준이 부럽고, 조정래가 부럽고, 유시민이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이름 없이 사는 것이 좋다. 그래서 <빨치산 리포트>의 필자를 '정인'으로 썼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혁명이었지 글을 쓰고 이름을 날리는 것은 안중에 없다.

    '황광우의 광주 이야기' 24번째 <빨치산 리포트>

     황광우 작가가 쓴 <빨치산 리포트>의 뒷표지. 이 책을 통해 본격 조명한 김선우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의 사진이 보인다.
    ▲ 황광우 작가가 쓴 <빨치산 리포트>의 뒷표지. 이 책을 통해 본격 조명한 김선우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선우의 사진이 보인다. 다큐북스 제공

    황지우 시인을 만나면 솔직히 말한다.

    "형, 나도 작가회의에 출입하면 안 될까? 시와 소설은 못 써도 평론은 쓸 수 있는데."

    형의 긍정적 답을 기대했으나 거꾸로였다.

    "야, 인마, 내 '나와바리'야."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12시간 책을 쓴다. 20년 전 내습한 중풍 때문에 왼손으로 글을 쓴다. 책 한 권을 출간하기 위해 2~3년 동안 땀을 흘린다. 책을 출판하고 나면 내가 하는 일은 책을 들고 가 벗들에게 우송하는 일이다. 300권을 우송한다. 그대, 우체국에서 박스 작업을 해 보셨을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책을 쓴다. 젊은 시절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에 미쳐 살았다. 지금은 역사를 바로 기록하는 일에 미쳐 살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났고, 무등산을 바라보며 자란 광주의 아들로서 <빨치산 리포트>를 출간하게 되어 기쁘다. 이제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10년의 장정 속에서 작성한 24권의 '광주 이야기'의 목록을 여기에 공개한다. 그동안 도와주신 여러 선배, 동료들께 감사를 올린다.

    황광우의 광주 이야기
    1. <박효선 희곡전집>(3권, 2016)
    4. <윤한봉>(2016) : 오월 광주의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이야기
    5. <임을 위한 행진>(2017) : 영문으로 쓴 윤한봉 이야기
    6. <재미한청련 회고집>(3권, 2018) : 윤한봉의 미국 투쟁 이야기
    9. <빛고을 아름다운 사람들>(2019) : 김남주,윤상원,윤한봉,박효선 이야기
    10. <나는 왜 이제야 아는가>(2019) : 한말호남의병장 10인의 이야기
    11. <윤상원 일기>(2020)
    12. <윤석동 일기>(2020)
    13. <무등의 빛>(2020) : 광주학생독립운동가 16인의 이야기
    14. <이름 없는 별들>(2021) : 호남독립운동가 26인의 이야기
    15. <김영철 평전>(2021)
    16. <김순자 수기>(2021)
    17. <그 시절, 광주 사람들>(2022) : 김남주,박석률,이강 이야기
    18. <역사 달력>(2021, 2022)
    19. <시민군>(2023) : 300인의 육성으로 재현한 오월 광주 10일의 이야기
    20. <오월이 온다>(2025) : 사진으로 보는 오월 광주 이야기
    21. <역사가 온다>(2025) : 독립과 민주에 얽힌 이야기
    22. <권오을 장관께 드리는 독립유공자 272인의 서훈 요청서>(2025)
    23. <학생탑의 후예>(2026) : K-민주의 새벽을 연 젊은이들의 이야기
    24. <빨치산 리포트>(2026)

     <빨치산 리포트>의 황광우 작가가 편저한 <시민군>. 이 책은 시민군 300인의 육성을 통해 재현한 1980년 5월의 이야기다.
    ▲ <빨치산 리포트>의 황광우 작가가 편저한 <시민군>. 이 책은 시민군 300인의 육성을 통해 재현한 1980년 5월의 이야기다. 한출판 제공





    덧붙이는 글 황광우는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75년 고교 시절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되었다. 1977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978년 광화문 시위에 연루되어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1984년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를 집필하였고, 1985년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출간하였다.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을 주도하였다. 1996년 ‘플라톤논술아카데미’를 창립했고, 2001년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전남대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2014년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2019년 ‘(사)인문연구원동고송’을 창립하였고, ‘장재성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정인‘은 황광우의 필명이다.
    #황광우 #정인 #빨치산리포트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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