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 한쪽에 늘 준비해 두는 화투와 깔판 대용 흰색 비치타월
김종섭
우리 부부에게 화투는 단순한 놀이라기보다 스러져가는 기억을 되살려주는 고마운 뇌 운동 도구가 됐다. 그래서 식탁 한쪽에는 화투와 깔판 대용으로 쓸 넓은 비치타월을 늘 올려둔다. 언제든 자연스럽게 손이 닿아 타월을 펼치고 판을 벌일 수 있도록 식탁 위에 준비해 둔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내와 마주 앉아 화투를 치는 것이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의 정겨운 일상이 됐다.
어느 날은 방금 판을 끝내놓고도 다음 판을 시작할 때면 방금 전 승패조차 잊어버릴 만큼 건망증이 심해졌다. 화투패를 바닥에 내려놓아야 할 짝이 있다는 것을 방금 확인하고도 엉뚱한 패를 내려놓기 일쑤다. 단순한 건망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덜컥 겁이 날 만큼 심각성을 느낀다.
며칠 전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날 때도 가방 속에 화투를 챙겨 갔다. 차츰 굳어가는 기억력을 붙잡는 데 화투가 이토록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될 줄은 몰랐다. 야외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머리의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활기를 불어넣고, 기억을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절박한 노력이자 몸부림이었다.
남의 일이었던 치매가 내 일이 되다
주변에 기억력을 잃고 치매로 힘겹게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을 TV로 보았을 때는,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이전에는 그저 무심코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방금 전 일까지 잊어버리는 현상을 몸소 겪다 보니, 이건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것보다 더 심각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몇 해 전, 여섯 살 위 동서가 목적지를 정해놓고 한참을 운전해 가다가 "내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지?"라며 목적지조차 잊어버리고 되돌아왔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한바탕 웃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황당한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일은 웃어넘길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 바로 내 삶에서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기억하는 자만이 추억을 갖고, 추억하는 자만이 기억할 수 있다."
젊은 날 스스로 이런 문구를 만들어 자주 썼었다. 그때는 기억보다 추억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고, 기억을 머릿속에서 잃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맞닥뜨린 현실은 그때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꿈꾼다. 혹시 미래의 꿈이 흐려진다 할지라도 과거의 기억만큼은 온전히 존재해야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과거를 잃어버린 채로는 현재에 만족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진다.
지워야 할 상처나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젊었을 때의 지혜였다면, 이제는 온전히 간직해도 모자랄 만큼 아까운 기억마저 스르르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나이가 됐다.
잊어가는 기억을 붙잡는 작은 몸부림
때로는 방금 전 승패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현실과 마주할 때마다 순간 허무함이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패를 집어 들고 짝을 맞추며 몰입하는 그 순간만큼은 굳어가던 뇌가 다시 살아 숨 쉬는 듯한 활력을 느낀다. 깜빡깜빡 지워져 가던 기억의 테두리를 다시 또렷하게 이어주는 소중한 자극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식탁 한쪽에 올려둔 화투패를 집어 든다. 이 패를 잡고 집중하는 동안만큼은 잃어가던 기억도 다시 돌아오고, 오늘이라는 삶을 향한 애착도 더 깊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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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거주,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다음'브런치'활동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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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승패도 잊어버리는 현실, 화투 한 판에 기억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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