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기기(Closed Caption Device) 구즈넥에 달려있는 자막기기이다. 미국 대부분의 영화관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조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장애인뿐 아니라 자막이 필요한 외국인, 보청기 사용자도 무료 대여할 수 있다.
장소영
영화관 로비에서 자막 기기를 대여할까 잠시 고민했다. 고전 작품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보니 영어식 지명과 인명을 빠르게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중언어(Bilingual) 사용자인 아들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현대적인 대사로 영화를 만들었으니 괜찮을 거라며, 웅장한 화면에 집중하자고 권했다. 다행히 아들의 말이 맞았다. 3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에 압도되었다. IMAX 화면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져서, 8월에는 IMAX 상영관이 있는 또 다른 동네 영화관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SNS를 하다가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분을 만났다. 그분에게 내가 빌리려 했던 자막 기기(Closed Caption Device)를 소개해 드렸다. 장애인이 아니어도 빌릴 수 있는지, 대여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지, 대여 가능한 영화관이 따로 있는지, 기기 사용은 쉬운지 여러 가지 질문을 해오셔서 사진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지난달 8일, 이번에는 딸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고객 서비스 데스크로 가서 자막 기기를 대여하고 싶다고 했다. 서비스 연결을 위해 직원이 영화와 상영관을 확인하고 내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것으로 절차가 간단히 끝났다.
직원은 혹시 넥 루프(Neckloop)같은 오디오 장비도 필요한지 물어왔다. 넥 루프가 뭐냐고 물었더니 목에 걸고 사용하는 음향보조기(Sound Headset)인데 보청기 사용자들이 주로 찾는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음성 증폭기를 말하는 듯싶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해설 기기도 있다고 한다. 나는 자막 기기만 빌렸다.
내가 대여한 기기는 구즈넥(Gooseneck-거위 목) 홀더에 달려 있었다. 좌석 팔걸이에 있는 컵홀더에 끼워서 고정하고, 구즈넥을 휘어서 자막 기기를 원하는 위치에 두면 된다. 기기는 탈부착이 가능했다. 음료가 있어 컵홀더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나, 나처럼 일부 대사에서만 자막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기기를 구즈넥에서 빼서 사용하면 된다.

▲ 2016년에 발표되고 2017년부터 시행중인 영화관 최종 규정에 따라, 미국의 영화관에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장치가 구비되어 있다. 화면에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영화의 경우 자막 제공을 위한 디바이스나 음성해설 디바이스가 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향보조장치도 구비되어 있다.
장소영
읽기 편한 대로 가로, 세로로 모니터를 돌려 사용할 수 있고, 글자 크기 조정도 가능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자막 기능이 켜지기 때문에 따로 기기를 조작할 필요가 전혀 없다.
디지털카메라로 자막 기기 작동 상태를 찍어 약속한 분께 보내 드렸다. 스마트폰 화면 밝기가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카메라를 준비해 갔다.
한국에서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에 대한 소송이 시작되던 해인 2016년, 미국에서는 장애인법(ADA)에 따른 영화관 최종 규정(Final Rule)이 발표되었다.
미국 장애인법(ADA)은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이 차별이나 불편을 겪지 않도록 편의 시설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영화관에서는 자막이나 음성 해설을 위한 보조장치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자막 서비스가 필요한 외국인이나 보청기 사용자도 무료로 보조장치를 대여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M:NI (Music: Not Impossible) 장비 청각장애인도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웨어러블 장비이다. 몸과 손목에 찬 밴드를 통해 연주 즉시 음악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장소영
미국 장애인법(ADA)의 영향은 보조장치를 비치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장애인의 평등한 문화 관람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끌어올려 창의적인 시도와 기기 개발, 펀드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맨해튼 링컨 센터에서 한국의 유명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공연이 있었다. 매년 열리는 링컨 센터의 여름 페스티벌(Summer of the City) 피날레 무대였다. 로베르트 슈만과 아내 클라라 슈만의 곡들이 연주되었고,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클라라 슈만의 미완성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중간 휴식 시간에 특이한 기기를 몸에 부착한 관객들이 내 곁을 지나갔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역시 청각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장비였다.
내가 본 것은 M:NI(Music: Not Impossible, 음악감상도 불가능하지 않다) 조끼였다. 몸에 착용한 조끼와 손목에 감은 밴드를 통해 연주를 즉시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장비다. 최근에는 사운드셔츠(SoundShirts)라는 첨단 셔츠가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발명품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곡가이자 음악 교사인 아버지 홀랜드가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학교 강당을 특별하게 꾸민다. 조명과 무대 진동을 통해 아들과 친구들이 콘서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 홀랜드는 아들에게 '너는 음악을 듣지 못하잖아. 그러니 나에게 비틀스가 어떤 의미인지, 음악이 어떤 것인지 알 리가 없다'라고 거칠게 말한다. 그러자 아들은 '듣지 못해도 느낄 수는 있다, 나도 비틀스가 누구인지 안다'라며 격렬한 수어를 통해 그동안 쌓인 서운함을 터뜨린다. 이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콘서트를 즐기는 자리에서 홀랜드는 아들에게 화해와 사랑의 뜻을 전한다.
장애를 넘어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홀랜드처럼 뒤늦게라도 깨닫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작은 자막 기기 하나로도 장벽을 뛰어넘어 작품에 쉽게 닿을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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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영화관에서 빌려주는 물건... 한국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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