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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무슨 날이야?" 자투리 재료로 만든 특별식

    불린 당면과 야채 듬뿍 넣고 오징어 순대 만들기

    등록 2026.09.08 11:29수정 2026.09.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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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날 만들 반찬을 미리 정했을 때와 무엇을 만들지 고민이 될 때이다.

    미리 정했다면 냉장고 문을 여닫는 것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필요한 재료만 턱턱 꺼내면 되니 시간도 절약되고 전기 요금도 아낄 수 있다. 반면 아직 결정하지 못했을 때는 냉장고 속에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일일이 훑어봐야 한다. 냉장고에서 문을 빨리 닫으라고 '삐삐' 경고음이 울려도 손은 갈 곳을 잃기 일쑤다.


    불린 당면을 발견한 날

    재료완성 집에 있는 자투리 재료로 오징어순대 소 만들 준비 완료. 채소 다지기가 열일했죠.
    ▲재료완성 집에 있는 자투리 재료로 오징어순대 소 만들 준비 완료. 채소 다지기가 열일했죠. 황윤옥

    오늘이 그런 날이다. 뭘 할까? 냉장고를 열었다. 맨 아래 칸에 있던 투명 용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건 뭐지? 아, 맞다!'

    용기를 꺼내는 순간에야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며칠 전 고추잡채를 만들고 남은 불린 당면이었다. 요리에 다 넣으려다가 너무 많은 것 같아 물에 불린 채 넣어둔 것이었다. 느릿느릿하던 내 머릿속이 초고속 회전판처럼 팽글팽글 돌아갔다.

    당면을 넣어서 할 수 있는 요리는 닭볶음탕인데 주재료인 닭이 안타깝게도 없었다. 서둘러 김치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고기와 통오징어, 이 녀석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무 재료나 데리고 나올 수는 없는 법, 또 머리를 굴렸다. 일단 김치냉장고 문을 닫고 냉장실 야채칸을 열어보았다. 당근과 며칠 전 먹고 남은 부추와 버섯이 들어있었다. 가운데 서랍에는 된장찌개 끓이고 남은 두부 반 모가 찬물에 담긴 채 용기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어.'

    우리 집은 장을 볼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몇 가지의 식재료가 있다. 그게 바로 고기와 오징어이다. 고기와 오징어는 밤에 퇴근해 온 남편이 반찬 겸 안주로 즐겨 찾는 재료들이다. 오징어는 손질된 것을 살 때도 있고 손질이 안 된 통오징어를 사 두는 때도 있다. 손질된 것은 주로 데쳐서 오징어무침을 하거나 초장에 찍어 먹는 용도이고, 통오징어는 링 모양 그대로 썰어 오삼불고기를 해 먹는다. 그러면 맛도 좋지만 보기에도 너무 예쁘다.


    냉장고에 있는 불린 당면은 빨리 처리해야 한다. 당면이 들어가면서 집에 있는 자투리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는 '오징어순대'로 당첨되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 선뜻 잘 하지 않는데 요즘엔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좀 있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어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장만해야 하나 고민하던 채소 다지기를 며칠 전에 집으로 들였기 때문이다. 품을 덜 들일 수 있으니 갑자기 자신감이 솟구쳐 올랐다.

    속 재료 다양하게 넣은 오징어 순대

    요리완료 오징어순대 만들고 남은 재료로 동그랑땡까지 만들었어요.
    ▲요리완료 오징어순대 만들고 남은 재료로 동그랑땡까지 만들었어요. 황윤옥

    통오징어 두 마리를 꺼내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두었다. 몸통에서 잘라낸 다리는 살짝 데쳤다. 두부는 물기를 꽉 짠 후 손으로 으깼고, 부추와 파는 칼로 잘게 썰었다. 색을 책임질 양파와 당근은 채소 다지기에 넣었다.

    씹히는 맛을 즐기기 위해선 너무 잘게 다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소 다지기 줄을 당기며 다짐 상태를 확인하니 딱 좋았다. 데친 오징어 다리와 당면도 채소 다지기에서 다졌다. 세상에! 완전 신세계였다. 이렇게 편리한 걸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거리가 백 분의 일로 줄어드는 이 편안함, 침대는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는 말이 왜 생각나는 건지. 채소 다지기야말로 과학이다.

    이제는 양푼에다가 모든 재료를 다 투하했다. 거기에 밀가루와 달걀을 풀어 넣었다. 재료가 도망가지 않고 서로 뭉쳐지게 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꼭 필요하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 주고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넣은 후 반죽을 치댔다.

    다음은 오징어 속에 소를 채워야 한다. 속 재료를 오징어 몸통에 채울 때는 배가 터질 만큼 꽉 채우면 안 된다. 찌면서 재료는 부풀어 오르고 오징어는 줄어들기 때문에 80% 정도만 채워야 터지지 않는다. 그런 다음 이쑤시개로 바느질하듯 아랫부분을 꿰맨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냄비에 채반을 올려 물을 먼저 끓인다.

    만두 찔 때와 마찬가지로 물이 펄펄 끓으면 오징어를 올리는 게 좋다. 재료가 채반에 달라붙으면 보기도 안 좋고 떼기도 힘들다. 중간 불에서 20분 정도 찐 후 10분 정도 식혀 칼로 자르면 맛있는 오징어순대가 된다.

    속 재료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오징어순대를 만들고 남은 소는 달걀물을 입혀서 기름에 구워주었다. 동그랑땡처럼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아직 더 남은 속 재료는 다음 날 반찬으로 구워 먹으려고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반찬 걱정 하나 덜었으니 이만하면 '일타쌍피'다.

    오징어순대에 청양고추 다짐 반찬을 올려 먹었다. 담백한 맛에 매콤한 맛이 더해지니 궁합이 환상적이었다. 우리 부부의 젓가락은 오징어순대로 계속 향했다.

    "당신 이거 손 많이 가서 안 하던 거잖아. 오늘 무슨 날이야?"
    "자투리 재료가 많이 남은 데다가 채소 다지기도 있어서 해 봤어."

    퇴근길 고단함이 싹 가신 표정으로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는 남편을 보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떤 요리를 해도 시간과 정성은 들어가게 되어 있다. 집에 남아 있는 자투리 재료로 뚝딱 만든 오징어순대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번거롭다고 미뤄뒀던 오징어순대를 이렇게 뚝딱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새로 들인 채소 다지기 덕분이다. 작은 살림 하나 늘었을 뿐인데 요리하는 손길에 여유가 생기고 마음까지도 든든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오징어순대 #자투리재료 #불린당면덕분 #동그랑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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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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