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디세이> 중 오뒷세우스가 저승에서 뛰쳐나오는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2 남편 잃은 아내처럼 울다
기자 : 원작의 오뒷세우스를 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영화의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보셨나요?
덕후 : 영화에서는 오뒷세우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죄책감, 후회 등을 굉장히 많이 보여주고 있잖아요.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 성벽이 무너지고 불탈 때 계단참에 쓰러져 허망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회상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그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눈빛이 나옵니다. 사실 그건 고대 희랍의 전통적인 영웅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원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와요.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스케리아 섬(칼륍소의 섬을 떠나 바다에서 난파 후 도착한 곳이자 고향 이타케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 - 기자 주)에서 잔치를 대접 받을 때 음유시인 데모도코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노래를 불러주거든요. 정말 근사한 노래를 부르는데 오뒷세우스는 그걸 들으면서 막 울어요. 그때
적군의 칼에 쓰러진 남편을 애도하는 아내와 같이 울었다고 나오거든요. 그 장면에서 저는
오뒷세우스가 승자지만 패자 측과 동일시된다고 읽었고, 승자임에도 마냥 기뻐하지 않은 모습이 영화에도 반영이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교수 : 에밀리 윌슨(여성 최초로 <오뒷세이아> 번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같은 사람은 (원작의 그 모습이) 인간성(humanity)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그 대목을 살렸어야 한다고 (비판적으로) 평론하기도 했는데요. (덕후가 말한) 원작의 그 대목을 두고 후회와 반성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저는 전쟁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태세 정도로 봐요.
<일리아스>가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오뒷세이아>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전쟁이라는 광기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칼을 들었던 군인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영화에 담았다고 생각했어요. 칼 휘두르는 마음가짐 그대로 집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노스토스(νόστος, 귀향)의 모티브(원전 <오뒷세이아>의 핵심 목표가 고향 이타케로의 귀향 - 기자 주)도 그 과정에 있다고 보고요.
끝판왕 : 이 단어가 적합한 단어인지 모르겠는데 덕후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원작의 그 대목은 핵심 대목입니다. 그 대목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갈릴 수도 있어요. 교수가 더 나을 것도, 덕후가 더 나을 것도 없어요. 해석에 있어서는 모두 동등하다고 봐요. 저는 우리 안 교수보다는 덕후 쪽에 좀 더 기울어 있어요(웃음). 물론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오뒷세우스를 단순한 전사가 아닌
'목숨을 뺏으려는 상대방 입장에 설 수 있다'라고 표현한 중요한 서시의 첫 구절이 '도시 파괴자'예요. '도시를 파괴하는 자로 명성을 얻은 뒤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사나이' 이렇게 얘기가 나와요. ("여신이여, 내게 말해주소서, 그 많은 꾀를 지닌 사나이를,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아주 많이 떠돌았던 그 사나이를" - <오뒷세이아>)
(오뒷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군은) 도시를 파괴하며 트로이아 남자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잡아갔어요. 그런데 (그리스군의 수장 중 하나인) 오뒷세우스가 노예로 끌려가는 여자와 눈물을 쏟았다고 묘사된 건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쓰러져 죽은 남편 위에서 남편을 부둥켜안은 아내를 창끝으로, 요샛말로 개머리판으로 막 치며 일어나라고 하는데, 그런 여자의 눈물을 오뒷세우스가 쏟았다고 나오니 지나칠 수 없는 엄청난 변화죠.

▲ 영화 <오디세이>에서 불타는 트로이를 바라보는 오뒷세우스.
유니버설 픽쳐스
#3 포세이돈과의 화해
교수 : 말씀하신 부분은 <일리아스> 23권 중 헤카베(아킬레우스에 의해 아들 헥토르를 잃은 어머니)가 우는 대목이 떠오르게 하죠.
끝판왕 : 더해 <일리아스>에서 대단원으로 꼽는 장면 중의 하나가 프리아모스(트로이아의 마지막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헥토르 시체를 찾아갈 때예요. 이때 (간청하는 프리아모스를 보며) 아킬레우스가 늙으신 (자기) 아버지 생각을 한다고. 그 입장에 한 번 서보는 거죠. (목숨을 뺏으려는 상대방 입장에 선다는) 공식이 여기에도 있는 거예요.
교수 : 소위
적과의 화해 가능성. 이 주제는 (호메로스 작품의) 핵심 주제죠.
환대의 핵심이에요. 적대가 환대로 통할 수 있는 적과의 관계.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환대는 희랍어로 크세니아[ξενία]이며 영화의 '제우스의 법'이 이를 의미 - 기자 주)
끝판왕 : <오뒷세이아>의 핵심이지만 영화에 안 나온 장면이 있어요. 오뒷세우스가 10년을 거쳐 고향에 갈 수밖에 없었던 건 포세이돈이 미워해서잖아요? 포세이돈과 오뒷세우스는 척을 진 사이예요. 그런데<오뒷세이아> 원문에 예언 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오뒷세우스가 노를 짊어지고 노와 소금을 모르는, 즉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존재도 모르는 동네에 가서 노를 꽂아놓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요.
교수 : 그러니까 (오뒷세우스는)
포세이돈과의 화해도 이뤄낸 것이죠. 그런 깊은 메시지가 있는 대목이에요.
끝판왕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마지막에 (오뒷세우스가) 서쪽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서쪽은 죽음의 땅이거든요. 두 번째 항해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 그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교수 : 제가 놀란 감독의 인터뷰를 봤어요. 왜 (오뒷세우스가) 서쪽으로 가나 했더니, 놀란 감독의 동생이 '형,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테니슨은 시 <율리시스(Ulysses, 1842)>를 통해 서쪽 바다로 항해하는 오뒷세우스를 묘사 - 기자 주)를 읽어야 돼'라고 했다더라고요.
끝판왕 : 테니슨이나 단테 같은 사람은 오뒷세우스를 귀향하는 인물이 아니라
떠나는 인물로 더 강조했어요. 단테의 경우 (<신곡> 지옥편에서) 오뒷세우스를 아예 지구 끝까지, 서쪽 끝까지 가도록 해 지옥으로 떨어뜨리거든요. 그런 계보가 또 있어요. 괴테의 <파우스트>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걸 알기 위해 영혼을 파는, 지옥도 마다하지 않을 존재들의 원형으로 오뒷세우스를 삼고 있는 거예요.

▲ 영화 <트로이>(2004)의 헥토르(왼쪽)와 아킬레우스.
워너 브라더스
[시논] #1 원작에선 스파이(a.k.a 또 다른 오뒷세우스)
기자 : <오디세이>가 처음 나온다고 했을 때, 시논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거 좀 제대로 만들어 보려고 하는 건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논이 원작 <오뒷세이아>에는 없는 인물이잖아요.
덕후 :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활동하던 베르길리우스(단테의 <신곡>에도 안내자로 등장 - 기자 주)라는 시인이 <아이네이스>를 썼어요. 트로이아 측 전사였던 아이네이아스가 불타는 트로이아를 탈출해서 자신의 도시를 세우기 위해 여행하는 내용을 쓴 서사시예요. 이때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아를 빠져나와서 처음 도착한 곳이 지금의 북아프리카 지역의 카르타고예요. 거기서 여왕 디도를 만나서 그동안 겪은 이야기를 패배자 측 시선에서 회상하듯이 해주는데, 거기서 시논이라는 인물이 나와요. 영화에서 시논은 오뒷세우스와 같은 마을 출신인 부하라고 나오는데, <아이네이스>의 시논은 그런 이야기는 없고요. 희랍군 중 한 명이자 공모자로 나옵니다.
교수 : 그리스어로 (시논이) '해코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덕후 : 맞아요.
아예 대놓고 스파이로 나오거든요. 트로이아 사람들이 '너 뭐냐'고 했을 때 자기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엄청 강조해요. '내가 사실은 오뒷세우스와 척을 졌다. 전쟁을 마치며 희랍군 한 명의 피를 바쳐야 한다는 예언이 나왔는데 내가 뽑혔다. 근데 나는 죽기 싫어서 탈출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남았다. 이 말(목마)은 재물이다. 아테나를 위한 재물이기 때문에 너희가 안으로 들고 가야 된다. 성벽 안으로. 절대 해치지 말고.' 시논이 굉장히 거짓말을 잘해요. '저를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 나는 지금 희랍군에게도 버림받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나를 죽여도 좋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
교수 :
오뒷세우스의 또 다른 모델이죠. 그런데 영화에서는시논을 아주 그냥 멀쩡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미군으로 만들어놨더라고요.

▲ 영화 <오디세이> 중 시논이 트로이 목마 앞에서 등장하는 모습.
유니버설 픽쳐스
기자 : 이렇게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시논과 놀란 감독의 시논은 완전히 다른데, 변용한 시논은 어떻게 보셨나요?
덕후 : 저는 이 영화의 수혜자로 넘버원 아가멤논, 넘버투 시논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영화 속 시논은 완전 순진한 병사처럼 묘사됐잖아요. 교활함 등이 싹 빠지고 전쟁에 막 참여한 풋내기 병사처럼요.
끝판왕 : 애당초 시논이 참전하게 된 것도 병역 비리잖아요. 월남전에 끌려간 몬태나주의 어떤 '빽' 없는 시골 마을 출신 농군 아들처럼. (신화와 고전은) 얼마든지 창작, 재창작 권한이 있어요. 그리고 그걸 놀란 감독이 잘 사용했다고 봐요.
시논을 자기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주 적합한 인물로 만들어놨죠. 원작을 꼭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라고 봐야 될 이유는 없어요. 왜냐면 트로이 전쟁 후 오뒷세우스의 귀환 얘기는 호메로스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전승이 쭉 있었던 신화들이거든요. 신화를 두고 저작권 따질 것 없어요. 다 가져다 써야 하고 그대로 쓸 수도 없어요. 살을 붙이고 변형을 해야죠. 놀란은 놀란대로, 호메로스는 호메로스대로 권한이 있는 거예요.
원작에서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기억처럼 언급만 되지 사건 자체는 다뤄지지 않아요.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에서 어떻게 그걸 포기해요? 원작을 읽은 사람이든 소문으로 아는 사람이든 머릿속에 오뒷세우스 하면 트로이 목마거든요. 그게 상표거든요. 그렇다면 (관객은) 의문이 들죠. '트로이 목마를 대체 왜 성안에 집어넣었어? 무슨 이유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면 별도리 없이 시논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죠.
기자 : 군대에 다녀온 입장에서 원작 <오뒷세이아>만 보면 전쟁 중에 목마를 갖고 들어가는 모습은 사실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끝판왕 : 누가 봐도 그건 개연성이 없는 얘기예요.
교수 : 영화에서는 시논이 다리 역할을 해요. 얘기를 풀어가는 개연성이 있어야 입장권이 생기죠.

▲ 페데리코 바로치 작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이아스>. 가운데 투구를 쓴 인물이 아이네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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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름 없는 군인의 상징
기자 : 저승에서 시논이 등장한 장면도 감명 깊게 봤습니다.
덕후 : 사실 원작에서 저승 장면은 나름 훈훈한 분위기예요. 오뒷세우스가 아킬레우스·아가멤논·자신의 어머니도 만나요. '어머니, 왜 돌아가셨어요?' 하면서 둘이 정말 애틋해하고,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근데 영화에서는 정말 무섭게 나왔잖아요. 시논의 첫 마디도 '당신은 끝까지 나를 기만했어' 이런 대사였고, 또 오뒷세우스가 미처 장사를 못 지내준 부하들이 진짜 벌떼같이 일어나잖아요.
이름 없는 전사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 한 명, 한 명에 대사를 줄 수 없으니까 집단적으로 모습을 드러나게 해서 오뒷세우스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오뒷세우스와 다른 부하들에게도) '너도 곧 이렇게 죽을 것이다'라고 암시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저승에서) 탈출하면서 오뒷세우스의 부하 중 한 명도 '저게 우리의 미래입니까'라고 하잖아요.
전쟁이 가져다주는 죽음의 무게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교수 :
이름 없는 군인들을 보여주려는 점도 시논을 등장시킨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특히 원전에는 엘페노르(키르케의 섬에서 술에 취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오뒷세우스의 부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저승에서 오뒷세우스를 다시 만남 - 기자 주)라고 술 먹다가 죽은 놈이 있어요. 이 엘페노르 대신 시논이 이름 없는 군인으로서 등장한 것이죠.
끝판왕 : <일리아스>와 달리 <오뒷세이아>는 여러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틀을 짜줬어요. 영웅들과 전사들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우선 목소리를 내고, 하인이 목소리를 내고, 거렁뱅이가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 개도 목소리를 내요. 그중에 목소리를 낼 자격이 가장 없는 존재를 일부러 등장시킵니다. 그 인물이 영화에는 안 나오는 엘페노르예요.
이름 없는 존재를 등장시키는 건 영화에서는 참 어려워요. 카메라에는 항상 초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름 없는 존재는 초점을 흐려지게 하니까요. 그래서 엘페노르 같은 인물은 담기 어렵죠. 그런데 영화와 달리 산문은 소위 이탈과 여담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판소리를 들어보면, 이야기가 급박하게 진행될 것 같은데 쓸데없는 말들도 중간에 많이 있죠.

▲ 테오도르 판 튀르덴 작 <엘페노르의 시신을 화장하는 오뒷세우스>. 가운데 죽은 채 나체로 누워 있는 인물이 엘페노르, 우측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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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흥부전에 나오는 화초장 대목 중 제일 재밌는 얘기가 제비가 날아오는 부분이에요. 갑자기 제비가 날아오는 코스가 이어지는 지리학서와 다름없거든요. 춘향전에도 빨리 와야 할 군인 놈이 무주에서 놀고 있어요. 그럼 (화자가) 무주 이야기를 막 해요.
끝판왕 : 그렇지. 무주 이야기할 찬스지. 가령 영화 <오디세이>에서 페넬로페(오뒷세우스 아내)가 활을 들고 구혼자들 앞에서 '활쏘기 시합을 하겠다'고 하면 지금부터는 정말 숨 가쁜 스토리가 전개돼야 해요. 그런데 원작에서 그 장면을 보면 '그 활이 어떤 활이냐 하면' 이러면서 오뒷세우스에게 오기까지의 활의 이력이 잔뜩 이어져요.
교수 : 아, 족보 있는 활이라고 설명을 해줘야죠. 명품 증명을 해줘야죠.
끝판왕 : 그렇지. '그게 사연이 있는 활이야'라고. 그러니까 (산문에선) 이야기가 늘어져요. 아르고스(오뒷세우스의 개)도 영화에선 한두 장면이잖아요. 원전의 아르고스 얘기를 영화의 아르고스 장면에 다 담을 수가 없어요.
교수 : 아르고스는 놀란 감독 입장에선 뺄 수 없는 대목인 것 같아요.
*[오디세이 심화반 ②] 에우마이오스X안티노오스X아르고스 편으로 이어집니다.

▲ 영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목마가 나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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