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정이 가는 국립춘천박물관 오백나한

브랜드실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에서 300여 점에 이르는 나한상 상설 전시

등록 2026.09.08 14:48수정 2026.09.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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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원지역대학에 출석수업을 진행하러 춘천을 방문했다. 구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춘천으로 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 원주에 도착해서 다시 춘천으로 향했다. 시외버스는 원주로 가는 길 역시 안동과 영주를 경유했다. 영주에서 다시 출발한 시외버스는 소백산맥 죽령을 넘어 강원도로 들어갔다.

평소 자주 가지 않는 길이다. 나의 고향인 구미에서 윗지방으로 가는 방법으로는 김천을 통한 추풍령, 문경을 통해 넘어가는 조령, 영주를 통해 넘어가는 죽령이 있다. 지금은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가 각각의 길로 연결되었다. 이들 고속도로 모두 구미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번에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춘천을 다녀왔다. 시외버스 창가로 보이는 소백산의 경치가 멋있었다.


 국립춘천박물관 전경
▲ 국립춘천박물관 전경 여경수

원주에서 출발한 시외버스가 춘천으로 들어와서, 춘천교대의 간이정류소에서 정차했다. 여기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서 국립춘천박물관에 도착했다. 국립춘천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강원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강원의 삶과 이상향'이라는 주제로 전시 되고 있었다. 전시실에서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바라보았던 옛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의 '강원의 불교미술, 깨달음을 찾는 길'이라는 전시도 볼 만하다. 강원도에서 불교문화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신라의 이름난 승려들은 금강산과 오대산, 낙산사 등을 찾아 수행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은 양양의 진전사에서 출가했다. 고려시대에는 원주를 중심으로 규모가 큰 사찰들이 세워졌다. 철불과 석불, 금강산에서 발견된 티베트 불교 양식의 보살상 등을 통해 당시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불교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철불 앞에 서니, 강인한 부처님의 인상이 느껴졌다.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철불
▲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철불 여경수

내가 가장 눈여겨본 전시실은 오백나한을 전시한 곳이다. 2001년 영월군의 한 부부가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우연히 나한상 몇 점을 발견했고, 이후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두 차례에 걸쳐 발굴을 진행하여 300여 점에 이르는 나한상을 수습했다. 함께 출토된 '창령'이라 새겨진 기와 조각을 통해 이곳이 오래전 폐사된 창령사 터였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한상들은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지금은 국립춘천박물관의 브랜드실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다. 나한상들 중에는 '바위 뒤에 앉은 나한', '미소 띤 나한', '생각에 잠긴 나한', '합장하는 나한', '대화하는 나한'과 같은 이름이 붙은 것들도 있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뜻하지만, 이곳의 나한상들은 근엄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라 웃고, 생각에 잠기는 등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어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닮았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조각임에도 볼수록 정이 간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돌을 깎아 주먹 쥔 손의 모습을 만들었던 생각이 났다. 이들 나한상 앞에 서니 부처님과는 또 다른, 인간적인 얼굴들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국립춘천박물관의 나한
▲ 국립춘천박물관의 나한 여경수

나는 춘천에서 군 복무를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후반기교육을 받은 뒤, 춘천 외곽의 부대에 배치되어 복무 기간 중 여러 차례 시내로 나갔다. 그때 처음 마주한 소양강의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호수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루 동안 머무른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바라본 문화유산들이 새롭게 보였다. 젊은 군인 시절에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토록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강원도라는 생각이 오늘 하루를 맴돌았다.
#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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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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