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책 표지
민음사
곤충 채집 나간 교사, 그대로 실종
주인공은 교사로 일하는 31살 사내 니키 준페이다. 그에겐 취미라고 하기엔 좀 진지한 가욋일이 하나 있다. 바로 곤충을 채집해서 들여다보는 일이다. 아마추어 곤충학자라고 해도 되겠는데, 그에게는 곤충 채집으로 도달하고픈 나름의 대단한 목표까지 있는 것이다. 이제껏 세상에 드러난 적 없는 곤충을 발견하여 발표하는 것, 그리하여 복잡다단한 생명나무의 계보 가운데 곤충의 자리를 주는 게 그가 휴일마다 곤충채집통을 들고 오지를 나다니는 이유다.
생물학의 역사에 조예가 깊은 이라면 알 것이다. 니키 준페이가 시대를 200년 쯤 잘못 타고났다는 것을 말이다. 저 유명한 칼 폰 린네와 찰스 다윈을 거치며 생물학은 한동안 이전의 박물학을 뛰어넘어 과학 최전선의 학문 자리를 공고히 했다. 린네의 시대엔 생명의 나무에 알려지지 않은 생물의 자리를 채워나가는 것이 신이 창조한 세계의 지도를 밝혀나가는 일이었다. 다윈의 시대엔 생명이 그 스스로 변화하고 분화한 흔적을 추적해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니키 준페이의 시대엔 이미 대부분의 생물이 제 자리를 찾아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니키 준페이가 모처럼 쉬는 날에 하고 많은 생물 중에서도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곤충, 그것도 오지에 사는 벌레를 찾아 외딴 사막지대로 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래의 여자>는 니키 준페이의 실종을 다룬다. 사라질 이유가 없는 사람의 실종이 읽는 이의 흥미를 끈다. 누구에게도 귀띔 않고 나선 길, 그가 사라져야 할 이유 같은 건 일터에도, 집 안에도 없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역사 직원은 그가 등산객 복장으로 기차에서 내렸다고 증언했다던가. 그런 복장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사내의 이야기는 경찰도, 읽는 독자도 알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다.
소설은 니키 준페이가 외딴 부락에 감금된다는 설정을 두고 있다. 여기선 꽤나 환상적인 설정이 부여되는데, 모래사막 언저리에 위치한 부락에선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모래가 쌓여서 악착같이 퍼내지 않으면 집도 생물도 모두 파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모래 위로 비스듬한 경사, 그러나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는 모래벼랑 아래 놓인 가장 아랫집에 웬 아낙과 함께 갇힌 니키 준페이는 제 이해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한다. 아낙은 매일 밤 수 시간씩 모래를 퍼낸다. 가만히 있으면 지붕 위, 방 안, 몸 곳곳을 가리지 않고 쌓여버리는 모래의 퇴적에 저항하는 길은 그뿐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루만 묵고 떠나려 했던 사내다. 그러나 집이 있는 구덩이를 벗어나 마을 밖으로 향하는 길까지 나갈 방도가 없다. 사내를 이 집으로 안내한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모래를 퍼낼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도록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그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다.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구덩이 위에서 줄에 묶여 내려오는 물도 주어지지 않으므로 사실상 모래를 퍼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마을 사람과 한통속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를 해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여자도, 마을 사람들도 그가 여자와 함께 일손을 돕길 바란다. 이 지독한 퇴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탱하기 위해서.
<모래의 여자>는 이처럼 당혹스런 설정 속에서 니키 준페이가 겪는 인식의 변화를 그린다. 달아나기 위해, 또 살아남기 위하여 용을 쓰는 사내의 모습은 절박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베 코보가 마련한 세계는 아무렇지 않게 사내 위로 떨어지는 모래처럼 자꾸만 독자들을 이 당혹스런 설정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무방비의 퇴적 앞에 저항할 도구란 건 오로지 부삽 하나와 그를 들고 모래를 퍼낼 두 팔 뿐이다. 하루하루 전력으로 버텨내지 않으면 모래에 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이 비참한 생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내의 눈에 비친 여자의 삶이란 목표도, 꿈도, 거창한 무엇도 없는 시시하고 비루한 것일 뿐이다. 그 대척점에 세상에 밝혀진 바 없는 곤충을 찾아 제 이름을 딴 학명을 달아주고 세상 앞에 발표하는 니키 준페이의 모습이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소설이 무엇에 천착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주인공 니키 준페이는 그저 노동의 고됨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아니다. 그가 고통 받는 건 자유의 상실이다. 그러나 자유는 그 자체로써 의미를 갖지 않는다. 소설은 조금씩, 그러다 마침내 자유가 지닌 진짜 의미를 비춘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자유란 그것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목적이 있을 때에야 그 의미를 발하는 것이 아닌가. 니키 준페이가 모래사막으로 나아오기 전, 그러니까 곤충채집과 대비되는 학교 교사의 삶을 서술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보인다.
통상의 시각으로 니키 준페이의 직업은 교사다. 그에게 곤충을 채집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이다. 그러나 니키 준페이가 저 자신을 규정짓는 자세는 어떠한가. 그 삶에 미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일의 의미는 또 어떤가. 소설은 그가 교사란 업을 바라보는 자세를 드러낸다. 학생들은 성장하여 떠나가고 남겨진 교사는 정체돼 있을 뿐이다. 변화도, 성취도, 이렇다 할 의미도 없는 삶의 연속이다. 반면 곤충을 채집하는 건, 그러니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아직 누구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그 존재가 발표된 적 없는' 곤충의 최초 발견자가 되는 일은 삶 전체를 가름할 중한 것이다. 니키 준페이는 그를 위해 교사로서는 감당하지 않을 것까지 감당하려 든다. 그 결과로써 모래사막 가운데 있는 부락에 붙들리기 전까지는 제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었으리라.
이 소설이 훌륭한 이유를 묻는다면
<모래의 여자>는 빼어난 작품이다. 특히 그 결말부의 전환이 그렇다.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비로소 주인공이 집에 돌아온 뒤에야 훌륭해지듯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제 집 누추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운 노인이 비로소 꿈을 꿀 때에야 탁월해지듯이, 꼭 그렇게 저만의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이것이 아직 읽지 않은 이의 감상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써낼 수 있는 최선의 비평이겠다.
'부채꼴로 넓게 벌어져 있는 모래의 사면에 기와 지붕과 양철 지붕, 판자 지붕이 거뭇거뭇 보여 있고…… 빈약하나마 소나무 숲도 있고, 연못 같은 것도 보였다. 이까짓 풍경을 지키기 위해 바다에 접한 열몇 가구가 노예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가마니에는 새끼줄 사다리가 걸려 있지 않은 곳도 있지만, 걸려 있는 가마니가 더 많은 듯했다. 이미 탈출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뜻일까?'
- 166p
<모래의 여자>가 그 자체로 현대사회의 상징적 우화처럼 보인다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를테면 니키 준페이가 갇힌 부락의 가장 아래쪽 구덩이 가운데 놓인 집은 끝없이 모래를 퍼내야만 간신히 생존한다. 그 노동의 대가로써 저 위 마을 사람들로부터 물과 생필품, 이따금은 라디오나 거울 같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을 살 돈을 구한다. 이들이 요구받는 어처구니없이 고된 노동 덕분에 마을 전체가 존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노동에 대한 대가는 마을 전체가 얻는 이익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만 하다.
이들 뿐 아니라 노동을 요구받는 아랫집 주민들이 적잖다. 니키 준페이의 눈에 비친 이들은 탈출에의 의욕조차 잃은 채 그를 제 삶 가운데 받아들인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반자발적 노예상태처럼도 보인다. 니키 준페이의 곁을 지키는 여자가 그렇듯이. 가장 낮은 이가 가장 고된 노동을 한다는 사실,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노동의 대가로써 주어지는 이익이 턱없이 적다는 것, 그럼에도 점차 그 사실에 적응하고 주어진 노동을 제 선택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현대사회와 꽤 닮아 있지 않은가. 왜 사는지, 무얼 위해 일하는지도 따져 보지 않고서 끝도 없이 쏟아지는 모래를 파내며 살아가는 비현실적 공간 속 군상들로부터 소설 바깥 진짜 세계를 떠올리게 된단 게 의미심장하다.
소설의 미덕 가운데 하나가 삶과 세상을 새삼스런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이라면 <모래의 여자>만한 작품도 흔치는 않을 테다. 부디 이 작품을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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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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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채집하러 사막 갔다 노예노동 하게 된 교사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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