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2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대국민 정책 토론회에서 수요계획소위원회 위원장인 허진 이화여대 교수가 수요전망 종합발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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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정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토론회에서 2040년 전력수요 전망을 내놨다. 넉 달 뒤인 8월, 같은 위원회가 그 전망을 다시 계산했다. 연간 전력 소비량이 190TWh 늘어 있었다.
190TWh는 쉽게 와닿지 않는 숫자다. 2024년 서울시가 1년 동안 사용한 전력이 약 50.35TWh였음을 감안하면, 넉 달 사이 늘어난 수요는 서울 전체가 약 3년 9개월 동안 사용할 전력과 맞먹는다. 전기를 쓰는 공장이 갑자기 가동된 것도, 인구가 급증한 것도 아니다. 서울이 4년 가까이 쓸 전기가 종이 위에서 새로 생겨난 셈이다.
숫자를 바꾼 것은 정부가 6월 29일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였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하다는 전력수요를 기업의 투자계획을 토대로 기존 전망 위에 얹었다. 4월 전망에서 각각 4GW였던 첨단산업과 데이터센터 추가 수요는 재전망에서 각각 24.6GW와 11.9GW로 급증했다. 문제는 이 숫자가 실제로 발생할 수요인지, 아니면 기업들이 밝힌 희망의 총합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의 투자계획을 재조사한 결과 2040년 계약전력 기준 약 40GW의 잠재수요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36.8GW를 제12차 전기본에 우선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계약전력은 실제 사용량이 아니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약정한 최대 용량이다. 그런데 재전망에는 35.8GW가 최대전력으로 반영되었다. 계약전력의 97%가 동시에, 사실상 상시로 걸린다고 가정한 셈이다. 아직 착공조차 하지 않은 공장들이 거의 최대 부하로 가동된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전망도 석연치 않다. 6월 메가프로젝트에서 제시한 2029년 1단계 목표는 8.4GW였는데, 두 달 뒤 재전망에서는 10.8GW가 됐다. 불과 두 달 만에 28% 늘었지만 무엇이 추가됐고 어느 정도 확정된 사업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인공지능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과 확정은 다른 개념이다. 기업의 투자계획은 시장 상황, 기술 변화, 자금 조달 여건에 따라 축소되거나 연기될 수 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계약전력을 확정 수요처럼 반영한다면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될 경우 수요를 어떻게 조정할지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정부 자료 역시 투자 불확실성에 대응해 단계별 점검과 조정이 가능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수요 전망에는 그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않았다.
늘어날 가능성은 계산하고, 줄어들 가능성은 지웠다
재전망은 기준안과 상향안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러나 첨단산업과 데이터센터 수요는 두 시나리오에 공통으로 포함되었다.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141TWh와 데이터센터 58TWh가 양쪽에 똑같이 반영된 것이다. 불확실성이 가장 큰 항목이 정작 불확실성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정부는 하방 시나리오를 두지 않은 이유로 비관적 전망을 작성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기업의 낙관적인 투자계획은 국가 계획의 근거로 인정하면서, 그 계획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은 정보 부족을 이유로 배제한 셈이다.
수요를 늘리는 요인은 최대한 반영했으나 줄이는 요인은 소극적으로 다루어졌다. 수요관리 목표량은 4월 123.2TWh에서 재전망 139TWh로 늘었으나, 기준수요 대비 절감률은 15.8%에서 14.1%로 오히려 낮아졌다. 데이터센터 효율 개선, 에너지 효율 향상, 전기요금 변화, 자가용 태양광 등 수요를 낮출 수 있는 요인들은 정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전기화 수요의 정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화석연료로 움직이던 자동차와 난방, 산업공정을 재생에너지 전기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산업·수송·건물 전기화에 따른 2040년 전력 소비량은 4월 전망 112.6TWh에서 재전망 112TWh로 오히려 감소했다.
넉 달 만에 늘어난 약 190TWh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기화가 아니라 사실상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서 나왔다. 탄소중립 전기화는 제자리인데 특정 산업의 신규 부하만 계획을 끌고 간다. '전기국가'는 본래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 전기로 대체하자는 개념이지, 전력 다소비 산업에 전기를 무한정 공급하자는 말이 아니다.
전력원 단위 산출 과정에서도 이상한 결과가 나타난다. 기준 시나리오는 2026년부터 2040년까지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1.02%로 설정했다. 15년 동안의 누적 성장은 약 16.5%에 불과하다. 반면 전력 소비량은 2025년 실적 549.4TWh에서 2040년 847.3TWh로 54% 급증한다.
이를 단순 비교하면 국내총생산(GDP) 1단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력이 15년 동안 약 32% 늘어나는 셈이다.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경제가 오히려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해 같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구조로 바뀐다는 뜻이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원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효율을 높이고 사회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제12차 전기본 논의에서는 어떤 수요를 줄일지, 산업별 효율 목표를 어떻게 강화할지, 전력 다소비 시설의 입지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보이지 않는다. 공급 계획은 거대해졌지만 수요관리와 총량 감축의 자리는 비어 있다.
시점이 맞지 않는 원전 확대 논리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7월 13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첨단산업 전력·용수 공급 인프라 혁신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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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려진 수요는 결국 원전 확대라는 정해진 결론으로 귀결된다. 신규 대형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그리고 설계수명을 마친 노후 원전의 계속 운전 추진이 그것이다.
그러나 시점부터 맞지 않는다. 정부가 시급하다고 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는 2020년대 후반부터 발생한다. 신규 대형 원전은 부지 선정과 주민 의견 수렴, 환경영향평가, 인허가와 건설에 10년 이상 걸린다. 영덕 신규 원전의 준공 목표도 2038년이다. 소형모듈원자로 역시 안전성 실증과 표준설계인가를 거쳐야 하므로 2035년 이전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2020년대 후반에 필요하다는 전기를 2030년대 후반에 들어올 원전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시간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부족을 메운다는 명분은 결국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으로 이어진다.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다시 가동할지는 최신 안전기준과 설비 노후화, 사고 위험, 주민 보호 가능성을 기준으로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전력수요 전망으로 안전성 판단을 압박할 문제가 아니다. 수요를 부풀려 부족을 유도하고, 그 부족을 이유로 원전을 계속 가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면 안전 심사는 이미 결론이 정해진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게 된다.
기업의 투자계획은 바뀔 수 있지만 한번 지은 원자로와 그것이 남기는 핵폐기물은 되돌릴 수 없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충돌, 그리고 방치된 재생에너지
원전 확대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전력 계통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봄과 가을 낮 시간대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는 반면 전력수요는 줄어들어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 이때 필수적인 것은 발전량을 신속하게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그러나 원전은 일정한 출력으로 운전하는 데 특화된 경직성 전원이다.
제12차 전기본 토론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원전 출력 제어는 2020년 2회에서 2025년 27회로 급증했으며, 2026년 상반기에만 이미 15차례 시행되었다.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은 앞으로 확대해야 할 재생에너지의 출력 제어를 미리 예약해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 확대하겠다고 공언하지만, 두 전원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의 출력을 줄일지, 그에 따른 비용은 누가 부담할지, 반복적인 원전 감발 운전의 안전성은 어떻게 확보할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원전은 기후 재난에 취약한 전원이다. 대량의 냉각수와 외부 전력망에 의존하며, 폭염, 해수온 상승, 산불, 태풍, 홍수, 가뭄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고준위 방폐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 문제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원전을 추가로 짓고 노후 원전을 연장 가동하는 것은 기후위기의 위험 위에 핵사고와 핵폐기물의 위험을 중첩하는 일이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방치되어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누적 설비는 39.1GW에 불과하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반기마다 평균 6.8GW를 새로 보급해야 하는데, 이는 최근 5년 반 동안의 반기 평균 실적(1.7GW)에 비해 네 배 빠른 속도다. 태양광은 약 3.6배, 풍력은 약 10배 이상 보급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부지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국내 태양광 기술적 잠재량을 분석한 결과, 전국 옥상 태양광 잠재량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104.7GW에 달한다. 서울시의 경우 잠재량이 8.7GW로 정부가 제시한 서울 보급 목표(1.3GW)의 6.6배에 이른다.
진짜 문제는 공간이 아니라 공간과 발전사업을 연결할 정책의 부재다. 옥상, 주차장, 산업단지, 유휴 부지를 활용할 시간표, 인허가 및 계통 접속 대기 해소 방안, 주민과의 이익 공유 체계가 실종되어 있다. 송전망 부족으로 호남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차단하는 동안 수도권의 전력 수요만 키우는 구조를 방치한 채 발전설비만 늘리는 것은 올바른 에너지 전환이 아니다.
수요는 확정하고, 기후 대책은 미뤘다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오른쪽)과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8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경인건설본부에서 열린 에서 추진 배경 등 발표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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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전망의 절차적 과정도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8월 20일 토론회는 개최 6일 전에 공지됐고 방대한 발표 자료는 당일 배포됐다. 함께 다루기로 했던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은 행사 직전에 별도 토론회로 미뤄졌다. 수요는 공개했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지는 빠졌다.
늘어난 수요부터 사회적 사실로 굳혀놓고 공급 방안을 나중에 논의하겠다는 순서다. 이렇게 되면 다음 논의의 출발점은 "그 수요가 타당한가"가 아니라 "이미 확정된 수요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로 왜곡된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원전과 가스발전이 대기하게 된다.
기후위기 대응은 전력 계획의 부속 항목이 아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탄소 예산이 전력수요의 한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산업과 데이터센터의 규모와 입지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재전망에서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전력을 먼저 확정한 뒤 감축목표와 발전설비를 거기에 맞추는 자리바꿈이 일어났다.
정부는 수요를 과소 예측하면 전력 부족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과다 예측은 불필요한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을 유발하고, 그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전가하며, 좌초자산과 심각한 지역 갈등을 남긴다. 원전이라면 핵폐기물까지 다음 세대의 몫이 된다.
메가프로젝트 수요의 산정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확정 수요와 잠재수요를 엄밀히 재검증해야 한다. 사업 지연과 취소를 반영한 하방 시나리오도 필요하다. 에너지 효율과 수요관리, 데이터센터 효율 기준, 자가용 태양광처럼 수요를 줄이는 요인을 증가 요인과 같은 정밀도로 계산해야 한다. 부풀린 수요를 근거로 한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신규 원전 추진도 중단해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그래프를 그리는 일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 초고압 철탑이 서고, 어느 마을이 원전을 안고 살아가며, 누가 그 전기를 쓰고 누가 비용과 위험을 떠안을지 정하는 일이다. 넉 달 만에 서울시가 4년 가까이 쓸 전기가 새로 생겨났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으로 공급할 것인가가 아니다. 그 수요가 정말 필요한가, 기후위기 시대에 감당할 수 있는가, 위험과 비용은 누가 떠안는가. 12차 전기본이 확정되는 12월 이전에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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