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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에 맺힌 응어리 토하며 쓴 글, '여성시대'가 보낸 답장

    30년 바깥일 내려놓고 집으로... 글쓰기로 다시 세상과 연결

    등록 2026.09.09 15:59수정 2026.09.0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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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백로가 지나니 날씨가 완전히 달라졌다. 밤에 기온이 서늘하게 떨어졌다가 낮이 되면 살랑바람과 함께 따스한 햇살이 찾아온다. 이렇게 좋은 날 어찌 산책을 안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다정하게 길을 같이 걸어줄 옆지기가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옆지기의 마음이 바뀔까 서둘러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 남편은 누룽지를 삶아 주고 나는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노란 호박죽이 담긴 내 밥그릇을 본 남편이 슬그머니 한마디 던졌다.

    "이건 또 어디서 난 거야?"
    "여·성·시·대!"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하고는 먹던 호박죽을 남편 그릇에 조금 덜어주었다.

    산책 후 받은 메시지에 반가운 소식이

    당첨상품 라디오에서 받은 마지막 당첨 상품이 오늘 배송되었습니다.
    ▲당첨상품 라디오에서 받은 마지막 당첨 상품이 오늘 배송되었습니다. 황윤옥

    얼마만의 산책인가. 한여름에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걷지 못했다. 시원한 바람이 몸과 마음 구석으로 송송 들어오니 기분까지 날아갈 듯했다. 오랜만에 오전에 쉬는 남편과 손을 잡고 걷는 산책길은 또 얼마나 정겨웠는지 모른다.

    가벼운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흔한 광고이겠거니 하고 덮으려다가 한진택배에서 보낸 알림창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주문한 물건이 없는데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시지를 열었다.

    "여성시대에서 보낸 땅끝햇살 쌀 10kg 상품이 배송 예정입니다."


    지난 7월 말 카카오톡으로 받았던 당첨 알림이 떠올랐다. 지난 3월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 라디오 방송에 내 사연이 소개된 이후 몇 번 더 글을 보냈다. 한동안 소식이 없어 떨어진 줄로만 알고 잊고 지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사연이 채택되어 방송된다는 알림을 받았다.

    방송 예정일이었던 7월 31일 아침, 어떤 사연이 나올지 설레는 마음으로 미니 mini 라디오 앱을 틀어놓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칙칙폭폭 칙칙폭폭"

    김일중 아나운서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6월 초 라디오 방송국에 보냈던 내 사연이었다. 두 달 만에 식탁 위 노트북을 통해 흘러나오는 내 글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쓴 소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살림에 보탬이 될 선물보다 더 값진 것은 세상과 다시 깊게 연결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60대 평범한 주부다. 30년 넘게 해온 바깥일을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세상은 나이를 정리하고 물러설 때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집안일과 남편 내조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내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건네는 첫 인사가 바로 글쓰기였다. 집이 좁아 마땅한 공부방이 없다 보니 주방 식탁 한편에 노트북과 프린터를 두었다. 그 익숙한 자리가 나에게는 세상과 통하는 당당한 서재이자 일터였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쏟아내는 글을 썼다. 60년 세월 동안 마음에 맺혀 있던 응어리를 토해내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왕 글을 쓰는 거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보고 싶어 도전한 곳이 여러 공모전과 방송국 라디오 게시판이었다. 이제 막 글길에 들어선 새내기이지만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청춘 못지않게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좋았던 점은 내 안에 있던 외로움이나 서러움 같은 감정들이 스스로 치유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소소한 상품이나 상금을 받아 살림에 작은 보탬이 되는 기쁨도 쏠쏠했다.

    이번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내준 선물은 내열유리 밥공기 세트, 혼합 8곡, 홍게간장 세트, 그리고 땅끝햇살 쌀 10kg까지 모두 네 가지다. 앞선 세 가지는 진작에 도착해 살림 밑천으로 알뜰히 쓰고 있었다. 혼합 8곡으로 밥을 지을 때마다, 홍게간장으로 요리할 때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써보는 내열 밥공기에 밥을 담아 냉동실에 넣을 때마다 자꾸만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실실 났다. 사는 맛이 너무 좋았다.

    60대의 새로운 시작

    당첨선물 선물로 받은 홍게간장은 모든 요리에 아주 찰떡입니다.
    ▲당첨선물 선물로 받은 홍게간장은 모든 요리에 아주 찰떡입니다. 황윤옥

    마지막 선물인 쌀이 오지 않아 때마침 백미가 똑 떨어졌는데도 따로 주문하지 않고 기다렸다. 흰쌀 대신에 집에 있는 보리쌀과 찹쌀, 잡곡을 넣어 밥을 지으며 올 때가 지났는데 언제 오려나 동동거리던 참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쌀이 배송된다는 소식을 산책 후에 접했으니 기쁨이 두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60대는 무언가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나이가 아니다. 새로운 꿈을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도 아니다. 글쓰기든 공부든 스스로 만족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나에겐 있다.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간절히 원한다면 나이는 분명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 아침 남편과 나눠 먹은 호박죽 역시 지난 3월에 당첨상품으로 받은 것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지금의 여유가 거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실만을 바란다면 염치없는 욕심일 것이다.

    선물 받은 양념과 쌀이 다 사라질 때까지 우리 집 주방과 식탁에서는 나의 기분 좋은 히죽거림이 계속될 것이다. 공모전에 당선되는 날도 있고 떨어지는 날도 있을 테지만 좀 떨어지면 어떤가. 이젠 마음에도 단단한 맷집이 생겨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풍성해졌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음 기회는 언제나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에게 글쓰기란 단순한 취미를 넘어 60년의 삶이 나에게 보내오는 가장 근사한 답장이다. 나는 오늘도 주방 식탁 서재에 앉아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될 다른 글을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라디오방송 #사연채택 #당첨상품 #60년의삶이보내준근사한답장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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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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