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동해안, 해법은 해안에서 찾아야 한다

필요한 시설은 막을 수 없다… 문제는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느냐

등록 2026.09.09 18:47수정 2026.09.0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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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관동대 앵커사업단, 구리야마 박사 특강
▲ 가톨릭관동대 앵커사업단, 구리야마 박사 특강 진재중

동해안의 해안선이 달라지고 있다. 해변의 모래가 줄어들고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밀려나면서 백사장이 사라지는 곳이 늘고 있다. 연안 침식은 단순히 해변의 풍경이 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광자원의 감소는 물론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해양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동해안 곳곳에는 항만과 방파제, 발전소, 에너지 시설 등 다양한 해상·해안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국가와 지역에 필요한 기반 시설인 만큼 모든 구조물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구조물을 설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해안에 맞는 구조물을 어떻게 설치하고 관리할 것인가"다.

9일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 열린 일본 연안·항만 전문가 초청 강연과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주변 해안 현장답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날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는 일본연안기술센터 구리야마 박사의 강연이 열렸다. 주제는 동해안 연안 침식의 원인과 대응 방안이었다. 구리야마 박사는 항만이나 발전소와 같은 기반 시설은 국가와 지역에 필요한 시설인 만큼 건설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해상 구조물 역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구조물을 설치하는 순간 해안의 자연적인 흐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파랑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해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해저의 경사는 어떤지, 모래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에 따라 같은 구조물이라도 해안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구조물 자체가 아니다. 그 구조물이 들어서는 해안의 특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일본 역시 항만과 발전시설을 건설하면서 해상 구조물로 인한 해안 변화와 침식 문제를 경험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구조물의 크기와 형태만을 기준으로 접근해서는 해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본 로미스나야기 , 해안침식 방지를 위한 구조물
▲ 일본 로미스나야기 , 해안침식 방지를 위한 구조물 진재중

연안 침식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해안마다 조건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해변은 모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지만, 다른 해변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래보다 빠져나가는 모래가 많을 수 있다. 해저 경사가 완만한 곳과 급한 곳도 다르고, 파랑이 들어오는 방향과 세기도 다르다. 주변에 항만이나 방파제가 있는지, 하천에서 모래가 얼마나 공급되는지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효과를 본 구조물을 다른 해변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쪽 해변의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 주변 해안의 모래 이동을 변화시켜 다른 지역의 침식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연안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해변 하나만 보고 침식을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안인화력발전소 주변에서 확인한 해안의 변화


 강릉 주문진항
▲ 강릉 주문진항 진재중

강연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주변 해안을 찾았다. 현장에서는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설치된 잠제 등 해상 구조물을 살펴보고 구조물이 파랑과 해류, 모래 이동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특히 안인 해안의 지형과 파랑 조건을 고려할 때 현재 설치된 구조물이 해안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연안 침식을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시설이 필요한지 아니면 기존 구조물의 형태와 기능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이번 현장답사가 의미 있는 것은 발전소 건설이나 국가 기간시설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필요한 시설을 유지하면서도 해안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잠제와 해상구조물
▲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잠제와 해상구조물 진재중

현장에는 가톨릭관동대학교 스마트항만공학과 김규한 교수도 함께했다. 김 교수는 이번 강연과 현장답사가 일본의 사례를 단순히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동해안의 연안 침식 문제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새로운 대응 방향을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동해안에는 발전소뿐 아니라 항만, 방파제, 해안도로, 에너지 시설 등 다양한 인공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따라서 특정 해변의 침식 현상만을 따로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구조물과 해안 변화의 관계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연안 침식은 지역마다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기존 구조물이 해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점검하고 지역의 지형과 파랑, 모래 이동 특성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척 맹방 화력 해상공사
▲ 삼척 맹방 화력 해상공사 진재중

구조물을 더 세우기 전에 해야 할 일

동해안에는 이미 수많은 인공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항만을 보호하기 위한 방파제, 해안침식을 막기 위한 잠제와 돌제, 발전소와 에너지 시설을 위한 각종 해상 시설 등이 해안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구조물을 추가하는 것만이 아니다. 먼저 지금까지 설치된 구조물이 해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구조물 설치 전후의 해안선을 비교하고 모래의 이동량과 이동 방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랑과 해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특히 구조물 설치 이후 침식이 심해진 지역과 반대로 모래가 쌓인 지역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한쪽의 침식과 다른 쪽의 퇴적이 서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 안인 하시동해변 앞 돌제와 잠제
▲ 강릉 안인 하시동해변 앞 돌제와 잠제 진재중

앞으로 항만이나 발전소, 에너지 시설을 건설할 때도 접근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시설을 건설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적으로 침식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설계 단계부터 해안의 자연적인 모래 이동과 파랑, 해류 변화를 분석하고 시설이 들어선 이후의 변화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구조물을 설치한 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설치 이후 해안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장기간 관찰하고 필요하면 구조물의 형태와 배치, 규모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연안 침식 대책을 '공사'가 아니라 '관리'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구리야마 박사, 일본 침식 자료
▲ 구리야마 박사, 일본 침식 자료 진재중

동해안 전체를 하나의 해안으로 봐야 한다

동해안의 연안 침식 문제는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릉과 삼척, 동해, 양양, 속초, 고성 등 동해안 곳곳에서 침식과 퇴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해안은 서로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 어떤 곳은 항만이 원인일 수 있고, 어떤 곳은 발전시설이나 방파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파랑 변화나 해수면 상승, 하천의 모래 공급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안 관리도 행정구역 단위가 아니라 해안의 자연적인 흐름을 기준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 해변에서 모래가 사라졌다면 그 모래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한 지역에 구조물을 설치했다면 인접 해안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동해안의 바다는 하나이고, 모래의 흐름 역시 행정구역의 경계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강릉 주문진 해안도로 도깨비 촬영지 앞 해변
▲ 강릉 주문진 해안도로 도깨비 촬영지 앞 해변 진재중

연안 침식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흔히 두 방향으로 나뉜다. "구조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과 "구조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해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발전소도 필요하고 항만도 필요하다. 지역경제와 국가 산업을 위해 에너지 시설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시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안의 자연적인 흐름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질문은 설치냐 철거냐가 아니라 공존할 방법이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해안의 특성을 조사하고, 구조물의 영향을 예측하고, 설치 후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필요하면 구조물을 조정하는 것. 이것이 동해안 연안 침식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고성 반암 해변 침식 현장
▲ 고성 반암 해변 침식 현장 진재중

동해안의 미래는 '해안에서 답을 찾는 것'

9일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 시작된 일본 전문가의 강연과 안인화력발전소 주변 현장답사는 하나의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연안 침식의 해법은 책상 위가 아니라 해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해안의 해안은 모두 다르다. 따라서 연안 침식 대책 역시 달라야 한다. 필요한 기반 시설은 건설하되 해안의 자연적인 흐름을 최대한 존중하고, 기존 구조물의 영향을 과학적으로 점검하며, 지역의 지형과 파랑, 해류와 모래 이동 특성에 맞는 대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공사로 연안 침식 문제가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해안은 계속 변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연안관리 시스템도 계속 변해야 한다. 동해안의 미래는 바다와 산업시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시설과 살아 있는 해안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답은 결국 각 해안의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강릉 경포해변
▲ 강릉 경포해변 진재중

#연안침식 #구조물 #해안시설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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