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다, 인생의 가을을 마주하다

숲의 강인한 생명력 속에서 발견한 인생 가을의 소박한 바람

등록 2026.09.10 10:58수정 2026.09.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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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걷는 산책길에는 나무와 숲, 그리고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낸 길의 온기가 어우러져 있다.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산책 도중 길에서 짐승이 남긴 배설물 흔적을 발견할 때면, 이곳 숲 속에도 수많은 짐승이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반가운 증거로 다가온다.

숲 속은 조용하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현장이다. 말라죽은 고목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목에는 무수한 버섯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숲길 옆, 말라죽은 거대한 나무 기둥에 하얀 버섯들이 촘촘하게 기생하여 자라고 있다.
▲ 숲길 옆, 말라죽은 거대한 나무 기둥에 하얀 버섯들이 촘촘하게 기생하여 자라고 있다. 김종섭

또한 세월의 풍파를 견딘 거대한 그루터기에는 그것을 둥지 삼아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또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죽어간 그루터기의 품에 의지해 뿌리를 내리고 몸을 기대어 성장하는 나무의 모습을 본다. 이것이 단순히 다른 생명에 더부살이하는 기생일지, 아니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숲 속 생태계의 경이로운 생존 법칙일지 생각해 보며 숲이 품은 생명력의 깊이를 실감한다.

 다 죽어가는 고목의 그루터기를 단단히 움켜쥐고 곧게 자라난 생명력 넘치는 나무의 모습
▲ 다 죽어가는 고목의 그루터기를 단단히 움켜쥐고 곧게 자라난 생명력 넘치는 나무의 모습 김종섭

오늘 산책길에서는 생명의 집념이 느껴지는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죽은 나무 한쪽에 오목하게 파인 작은 틈새로 도토리나무 싹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도토리 형태가 그대로 보존된 채, 도토리 껍질을 뚫고 연약한 새순으로 고개를 내밀며 생명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도토리가 이 좁은 나무 틈에 떨어져 싹을 틔웠는지, 자연의 조화를 볼 때마다 신기하고 경이롭다.

 썩은 나무속 흙에서 도토리의 껍질을 터트리고 나온 새순
▲ 썩은 나무속 흙에서 도토리의 껍질을 터트리고 나온 새순 김종섭

집 화단에 정성을 다해 물을 주고 날마다 손길을 가해도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에 비하면 숲 속의 식물들은 누구의 손길 하나 없이도 척박한 환경을 제 힘으로 견뎌내며 자생한다. 흔히 보호받으며 자란 꽃을 '온실 속 화초'라 부르지만, 숲의 생명들은 정해진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스스로 삶을 일궈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숲길에서 마음에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계절의 변화를 숲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기에 산책길을 더 자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늘 푸른 침엽수와 달리, 가을을 맞이한 활엽수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푸른 옷을 갈아입는다.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모습은 쓸쓸하기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물들어가는 가을 숲의 풍경을 보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산으로 몰려드는 이유일 것이다.

자연이 빚어낸 은은한 단풍빛을 바라보며 곁에서 함께 걷던 아내에게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2030대는 화장을 안 해도 꽃처럼 예쁜데 다들 열심히 치장을 할 필요가 있을까? 화장은 사실 젊은 날보다는 주름살이나 피부 흔적이 늘어가는 우리 같은 나이에 더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자 아내는 "그래도 젊을 때 화장을 해야 더 예쁘지, 나이 들어서 하면 뭐 그리 예쁘겠어요?"라며 웃는다. 숲길을 스쳐 가는 가을바람 속에 소소하고 정겨운 대화가 어우러진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어, 인생의 계절로 치면 가을 한복판에 서 있다.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봄날 같은 2030 대도 아름답지만, 세월의 깊이가 묻어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은은함 역시 그에 못지않게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 산을 찾아 많은 이들이 오가듯, 60대라는 나이 역시 걸어온 길만큼이나 깊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계절이 아닐까 하는 위안을 산책길에서 얻어간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숲 속 생명들이 전해주는 순리가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는다. 타인에게 짐이 되거나 부당하게 의지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저마다의 자리를 건강하게 지키는 자연의 모습이 참 닮고 싶어진다. 거창하고 화려한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숲길을 걸으며 아내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건강을 지켜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을길을 지나가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소박한 바람이다. 오늘도 숲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를 낙엽 밟듯 사뿐히 밟으며 산책을 마무리한다.
#숲길산책 #생명력 #단풍과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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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거주,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다음'브런치'활동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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