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다스리지 말고 함께 살아야... 프놈펜이 찾은 방법

[프놈펜에서 만난 비 ③] 전통 지혜를 기후위기 시대의 행동원칙으로

등록 2026.09.10 11:16수정 2026.09.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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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문제이고, 오랫동안 내리지 않아도 문제다. 몬순 지역에서는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되풀이된다. 그런데도 앙코르와 메콩, 인도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곳곳에서는 오랜 문명이 번성했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변덕스러운 몬순을 견디고, 그 비를 문명의 힘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지난 9월 3일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에서 열린 제4차 IWA 빗물관리 국제학회에서는 이 질문을 중심으로 '몬순 위즈덤 포럼(Monsoon Wisdom Forum)'이 열렸다. 포럼에 이어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Phnom Penh Rain Dialogue)'가 진행됐고, 김학수 전 유엔 사무차장이 전체 논의를 총평했다. 이날 논의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옛사람들의 '몬순 위즈덤'을 오늘날의 행동으로 옮기는 새로운 개념으로 '몬순 웨이(Monsoon Way)'를 제안했다.

몬순위즈덤포럼 9월 3일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에서 열린 ‘몬순 위즈덤 포럼’. 한윤선 서울대학교 교수, 좌장인 폰 카세카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 박사, 필자 한무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왼쪽부터)가 몬순 지역의 전통적 물관리 지혜와 현대적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몬순위즈덤포럼 9월 3일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에서 열린 ‘몬순 위즈덤 포럼’. 한윤선 서울대학교 교수, 좌장인 폰 카세카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 박사, 필자 한무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왼쪽부터)가 몬순 지역의 전통적 물관리 지혜와 현대적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무영

비가 많이 내리는데 왜 물이 부족할까

몬순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그러나 그 비가 연중 고르게 내리는 것은 아니다. 짧은 우기에 비가 집중되고, 건기에는 몇 달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문제는 연간 강수량의 총량만이 아니다. 비가 내리는 시기와 장소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데 있다. 그 결과 같은 나라, 때로는 같은 지역에서 홍수와 가뭄, 침수와 식수 부족이 동시에 발생한다.

현대의 물관리는 이러한 변동성을 불편한 것으로 여겨왔다. 비가 많이 내리면 가능한 한 빨리 하천과 바다로 내보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댐을 만들거나 먼 곳의 수원에서 물을 끌어왔다. 도시에서 빗물은 소중한 자원보다 빨리 제거해야 하는 골칫거리로 취급됐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비를 완전히 통제하려 하기보다 비가 내리고 그치는 계절의 리듬을 관찰했다. 비가 올 때 물을 담아두고, 비가 오지 않을 때 나누어 사용했다. 몬순의 변동성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라 그 변화에 적응했던 것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문명은 거대한 바라이와 운하, 해자와 농경지를 서로 연결했다. 우기에 내린 물을 저장하고 건기에 이용하면서 물과 도시, 농업과 종교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경관으로 만들었다.
메콩 지역 주민들은 강물이 불어나는 계절과 줄어드는 계절에 맞춰 농사와 어업, 이동과 생활방식을 바꾸었다. 물의 변화를 무조건 막기보다 그 변화에 맞춰 공동체를 운영했다.


한국에서도 비를 관찰하고 측정하는 지혜가 발달했다. 세종 시대에 시작된 측우제도는 단순히 비의 양을 재는 기술이 아니었다. 어느 지역에 얼마만큼 비가 내렸는지를 국가가 파악하고, 농업과 백성의 생활을 돌보려는 제도였다.

이러한 경험은 몬순 위즈덤이 단순한 옛날 수리기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몬순 위즈덤은 물과 토지, 생업과 문화, 공동체와 문명을 연결했던 삶의 방식이다.


현대인은 물을 관리한다고 말하면서 그 물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자주 잊는다. 강물도, 지하수도, 저수지의 물도 처음에는 하늘에서 내린 비였다. 모든 물의 시작인 비를 보지 못한다면 물문제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물을 통제하는 방식에서 비와 함께 사는 방식으로
몬순 위즈덤 포럼의 중심 질문은 명확했다. "옛사람들이 몬순과 함께 살아온 지혜에서 오늘날 세계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폰 카세카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 박사가 좌장과 진행을 맡았고, 한윤선 서울대학교 교수가 공동좌장으로 참여했다. 필자는 세계 강우의 변동성과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을 발표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산, 메콩 지역 공동체의 경험과 국제적인 빗물관리 사례도 함께 논의됐다.

몬순 위즈덤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홍수가 나면 빗물을 모두 버리고, 가뭄이 오면 먼 곳에서 물을 가져오는 방식만으로는 기후위기 시대를 감당하기 어렵다. 지역에 내리는 비를 이해하고, 가능한 곳에서 저장하며, 필요한 용도에 맞게 안전하게 사용하는 분산형 물관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댐이나 광역상수도 같은 중앙집중형 시설을 모두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중앙집중형 물공급 체계와 지역의 빗물시설이 서로 보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 지붕에 내리는 비는 학교에서 저장하고, 마을에 내리는 비는 마을에서 관리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빗물을 침수 저감과 조경, 지하수 함양에 이용할 수 있다. 수질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곳에서는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 빗물을 내린 곳 가까이에서 관리하면 먼 곳에서 물을 운반하는 비용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주민과 학생이 직접 시설을 관리하면서 물과 기후를 배우는 교육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의 목소리를 모은 레인 다이아로그
몬순 위즈덤 포럼에 이어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가 열렸다. 김성인 전 대사가 진행을 맡고, 탄자니아, 미국, 태국, 미얀마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전문가와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의견을 나눴다.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 몬순 위즈덤 포럼에 이어 열린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 김성인 전 대사의 진행으로 각국 참가자들이 빗물을 기후위기 대응과 안전한 식수 공급에 활용하기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 몬순 위즈덤 포럼에 이어 열린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 김성인 전 대사의 진행으로 각국 참가자들이 빗물을 기후위기 대응과 안전한 식수 공급에 활용하기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무영

참가자들은 빗물 문제를 기술자들만의 주제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비의 생성과 순환, 저장과 이용을 가르쳐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직접 제안하고 관리해야 한다. 정부는 빗물을 홍수 대책의 일부로만 보지 말고 식수와 기후적응, 지역개발을 연결하는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몬순은 한 나라에만 내리는 비가 아니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대기와 물의 거대한 순환이다. 따라서 각 나라에 흩어진 경험을 서로 연결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캄보디아가 아시아의 챔피언이 될 수 있다"
포럼과 다이아로그가 끝난 뒤 김학수 전 유엔 사무차장이 전체 논의를 총평했다.
 김학수 전 유엔 사무차장이 9월 3일 몬순 위즈덤 포럼과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를 마친 뒤 총평하고 있다. 그는 안전한 식수 공급을 위한 SDG 6.1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앙코르의 물관리 유산을 가진 캄보디아가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을 이끄는 아시아의 대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학수 전 유엔 사무차장이 9월 3일 몬순 위즈덤 포럼과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를 마친 뒤 총평하고 있다. 그는 안전한 식수 공급을 위한 SDG 6.1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앙코르의 물관리 유산을 가진 캄보디아가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을 이끄는 아시아의 대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무영

김 총장은 이번 학회를 지금까지 네 차례 열린 IWA 빗물관리 국제학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행사라고 평가했다. 특히 캄보디아의 장관급 회의에서 크메르의 지혜와 앙코르의 문화유산을 오늘날의 물관리 문제와 연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는 빗물 연구와 실천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며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가운데 SDG 6.1, 즉 모든 사람이 안전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에 주목했다. 아직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이 안전한 식수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빗물이 더 이상 일부 지역의 작은 문제가 아니라 국가정책의 우선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앙코르의 역사와 물관리 유산을 가진 캄보디아가 새로운 물관리 패러다임을 이끄는 아시아의 대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밝혔다.
"우리에게는 아시아의 챔피언이 필요합니다. 캄보디아는 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의 총평은 몬순 지역을 기후위기의 피해자로만 바라보던 시각을 뒤집었다. 오랫동안 몬순과 함께 살아온 아시아가 오히려 세계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몬순 위즈덤에서 '몬순 웨이'로
이날 논의를 지켜보며 필자는 '몬순 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몬순 위즈덤이 조상들이 몬순과 함께 살아오며 축적한 지혜라면, 몬순 웨이는 그 지혜를 오늘의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몬순 웨이는 하나의 시설이나 특정한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비를 대하는 태도와 물관리의 방향을 의미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골칫거리로만 보지 않고 생명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것, 가능한 한 비가 내린 곳 가까이에서 저장하고 이용하는 것, 중앙정부와 전문가뿐 아니라 학교와 마을, 시민이 물관리의 주체가 되는 것이 몬순 웨이다.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뜻도 아니다. 옛 지혜에 현대 과학과 수질관리, 디지털 모니터링과 교육을 결합해야 한다. 조상들이 터득한 지혜를 오늘의 과학으로 검증하고, 현재의 생활환경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

몬순 위즈덤이 '우리는 과거에 어떻게 비와 함께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면, 몬순 웨이는 '오늘부터 우리는 비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앙코르의 물길과 메콩의 계절생활, 한국의 측우제도와 오늘날의 레인스쿨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밑에는 하나의 공통된 생각이 흐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이해하고, 땅에 담아, 사람의 생명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몬순 위즈덤이며, 이를 오늘의 세계가 함께 실천하는 길이 몬순 웨이다.

대화가 끝난 뒤, 하나의 선언이 시작됐다
몬순 위즈덤 포럼에서 되살린 과거의 지혜는 프놈펜 레인 다이아로그를 거치면서 오늘의 행동과제로 발전했다. 김학수 총장의 총평은 이를 유엔의 SDG 6.1과 국제사회의 과제로 연결했다. 그리고 이날의 논의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김학수 총장의 총평이 끝난 뒤 속 터치 캄보디아 왕립아카데미 총장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포럼과 다이아로그에서 모은 생각을 바탕으로 세계를 향한 새로운 약속을 발표했다. 바로 '프놈펜 빗물선언'이었다. 프놈펜에서는 세계를 향해 무엇을 선언했을까. 그 내용과 의미는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4차 IWA 빗물관리 국제학회의 현장을 전하는 ‘프놈펜에서 만난 비’ 세 번째 기사다. 앞선 기사에서는 캄보디아에서 빗물을 안전한 식수로 활용하려는 노력과 국제학회의 주요 현장을 소개했다. 이번 글에서는 앙코르와 메콩, 한국의 전통적 물관리 경험을 ‘몬순 위즈덤’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를 기후위기 시대의 행동으로 옮기는 새로운 개념으로 ‘몬순 웨이’를 제안했다. 다음 4탄에서는 9월 3일 포럼과 국제적인 대화를 거쳐 발표된 ‘프놈펜 빗물선언’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소개한다. 또한 이 선언을 각국의 정책과 교육, 지역사회의 실천으로 발전시키고, 장차 유엔의 ‘비의 날’ 제안으로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몬순위즈덤 #몬순웨이 #국제빗물학회 #김학수전UNESCAP총장 #레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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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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