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9.10 15:45수정 2026.09.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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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부터 약 1년여간 브런치 활동을 이어가며 가끔 서로의 글을 읽고, 라이킷(브런치 독자들이 글을 읽고 공감이나 지지를 표현하는 기능)만 주고받던 작가들이 있었다. 특별히 댓글을 달거나 왕래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는 정도의 관계. 나는 이걸 '완벽한 타인'이라고 부른다.
지난 6월, 내가 쓴 책이 출간됐다. 자기 홍보의 시대이니만큼 나도 내 책의 홍보를 위하여 생전 하지 않던 SNS에 가입했다. 인스타그램과 스레드였다. 이름만 들어봤지 내가 직접 이곳에서 활동하게 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던 곳이라 적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팔로우, 언팔, 스하리, 반하리... 사용되는 단어들부터 서로 다른 문화까지, 모든 것이 생소했다.
스레드 문화에 어느새 적응이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계정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머나먼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과할 만큼 내향인적 성향을 가진 나였지만, 알 수 없는 반가움에 브런치 작가들에게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반말을 사용하는 스레드의 문화에 적응이 되어있었다.
브런치에서는 온갖 고상한 척, 점잖은 척은 다 해놓고 다른 플랫폼에서는 까불고 다니다 보니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극은 묘한 혼란과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홍보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하며 애써 흐린 눈을 떴던 것 같다.
1980년대생인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수고가 꽤 많았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가정용 전화기를 사용해야 했다. 일일이 두꺼운 전화번호부나 수첩에 적어둔 전화번호를 찾아 하나하나 버튼을 누르는 번거로움이 더해져야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전화를 가족 중 누가 받을지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몇 번의 고민과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감수한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플랫폼마다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시대다. 그것은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을 몇 번만 움직이면 단 몇 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뜻이라는 말이다. 참 편리한 시대다.
때로는 소통의 홍수 속에 사는 것이 피곤할 때도 있다. 내가 메시지를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까지 확인이 가능하니, 어쩌면 수신자의 자유는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연락받지 않을 자유, 답하지 않을 자유까지 줄어든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스레드에서 몇몇 작가가 손편지나 엽서를 받고 싶은 사람을 모집하는 걸 보게 되었다. 평소라면 '좋아요'만 주고받았을 '완벽한 타인'들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제안이 반가웠다. 옛날 생각도 나고, 손편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은근한 향수도 느껴졌던 것 같기에 냉큼 손을 들고 주소를 알려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편지가 올까 싶었다.
직장과 육아, 집안일과 부업, 집필 활동을 하며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편지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거기에 더해 회사는 2층, 우편함은 지하 3층에 있으니 일부러 내려가지 않는 이상은 우편함 자체를 볼 일이 없었으니까.
어느 날부턴가 스레드에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람들의 게시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혹시나 싶어 내려가봤지만 우편함은 비어 있었다. 지역마다 도착 시간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또 까맣게 잊어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9월 10일 오전, 편지를 보낸 작가에게 "혹시 편지 못 받으셨어요? 다른 곳으로 갔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라고 DM이 왔다. 그제야 편지가 생각났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편함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정말 편지 한 통과 엽서 한 통이 들어있었다.
손편지의 향수

▲ 브런치 작가님들께 받은 엽서와 손편지
유수영
따스한 갈색 빛의 엽서와 상큼한 연녹색의 봉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손에 쥐니 중학생 때가 떠올랐다. 당시엔 청소년 잡지들이 꽤 유행이었다. 내가 특히나 좋아했던 잡지엔 예쁜 편지지와 연예인 소식들로 꽉 차 있었다. 맨 뒷부분에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소와 간단한 소개가 적힌 곳이 있었다. 나는 종종 그 부분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친구를 사귀었었다. 김해에 사는 언니, 충주에 사는 동생, 서울에 사는 친구 등등.
편지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울에 비친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 그 때와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쓱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여전히 그때와 닮아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곱게 접어 넣은 편지를 펼쳤다.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봉투에 찍힌 우편 소인, 손으로 꾹꾹 눌러쓴 잉크펜, 종이에 남은 미세한 요철과 손에 묻어 번진 흔적. 손으로 썼다는 사실이 글씨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쩐지 잉크펜의 냄새도 미세하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예전처럼 손편지를 즐겨 쓰는 시대가 아니다. 편지를 쓰려면 일부러 편지지를 사야 하고, 주소를 적어야 하고, 우체국에 가야 한다. 한 줄을 쓰고 지우는 일도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휴대폰 자판으로 쓰는 데 익숙해진 만큼 펜을 쥐는 일 자체도 낯설어졌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 내 일상을 적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다.
하지만 나는 그 불편함이 참 좋았다. 한 줄을 쓰기 전에 상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어떤 말을 건넬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몇 초 만에 상대에게 닿을 수 있는 메시지와 달리 편지는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 기다림까지도 편지의 일부가 아닐까.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나는 가끔 천천히 도착하는 마음을 기다려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며칠 안에 답장을 쓸 생각이다. 편지지를 사고, 펜을 고르고, 주소를 적고, 우체국에 가야 한다. 휴대폰으로 몇 번 두드리면 끝날 일을 굳이 돌아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보려고 한다. 몇 번의 라이킷만 주고받던 완벽한 타인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 편지 한 통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중학생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조금 어색하고, 조금 불편하고, 조금 귀찮은 이 아날로그가 오늘은 나를 꽤 행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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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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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에게 받은 편지, 심장이 두근... 이상하게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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