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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텃밭 노각 열 개가 탄생시킨 초보 요리사

    유튜브 레시피 보며 만든 노각무침에 아내 "일류야, 일류!"... 부부에게 안긴 뜻밖의 즐거움

    등록 2026.09.11 11:59수정 2026.09.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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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하늘을 보면 가을을 실감한다. 파란 하늘은 한층 높아 보이고, 하얀 구름도 층을 이루어 멋진 연출을 펼칠 때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그렇고, 들판의 빛깔도 어느새 달라졌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벌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풍요롭다.
    ​
    우리 텃밭에도 가을 냄새가 풍긴다. 열흘 전 모종을 옮겨 심은 김장배추가 제법 제구실을 하고 있다. 무는 속잎이 나와 쑥쑥 자랐다. 고구마순은 기세가 대단하다. 궁금한 마음에 며칠 전 몇 뿌리를 미리 캐봤더니 벌써 밑이 제법 들었다. 들깨밭에는 하얀 꽃이 피었다. 떨어진 꽃들이 마치 쌀알을 흩뿌려 놓은 듯하다. 요즘은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보물 찾듯 캐낸 늙은 오이 몇 개​
    ​
    그날도 텃밭을 둘러보고 있는데, 반찬거리를 찾던 아내가 나를 불렀다.
    ​
    "여보, 이것 좀 봐요. 숱하게 따먹던 오이를 그냥 놔뒀더니 노각이 됐네. 잎은 거의 다 말랐는데."

    "아니, 정말이네. 이거 노각무침 해 먹어도 괜찮겠는데?"


    "물론이지!"
    ​
     껍질이 갈색으로 변하고 거칠어진 늙은 오이들. 가을이 건네준 귀한 선물이다.
    ▲ 껍질이 갈색으로 변하고 거칠어진 늙은 오이들. 가을이 건네준 귀한 선물이다. 전갑남

    아내는 하나, 둘, 셋 손가락을 세어가며 노각을 따기 시작했다. 잊고 지내던 것을 찾은 사람처럼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겉면이 거칠고 까칠해진 노각이 열 개 남짓 바구니에 담겼다.

    "이걸로 뭐 하지?"

    "뭐 하긴요. 노각무침 하면 얼마나 맛있는데."
    ​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는 매년 이맘때면 오이 노각무침을 해 먹곤 했다. 손이 조금 가고 번거롭기는 해도, 아내가 무쳐놓으면 맛이 좋았다. 밥 한 숟가락에 노각무침을 올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다.
    ​
    "나 읍내에 볼일이 좀 있는데, 당신이 한번 해보면 어떨까?"

    "내가? 당신 솜씨를 내가 어떻게 흉내 내?"

    걱정스러운 내 표정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
    "한번 해봐요. 부탁해!"
    ​
    그러더니 차를 쌩 몰고 읍내로 내빼버리는 게 아닌가.
    ​
    유튜브 선생님과 함께한 초보 요리사의 도전​
    ​
    하는 수 없었다. 이럴 때 유용한 만능 선생님, 유튜브를 켰다.


    검색창에 '노각무침'을 치니 만드는 법이 수십 가지나 쏟아졌다. 유명 셰프가 하는 레시피부터 집밥 고수들의 비법까지 다양했다.

    "이 정도면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는데?"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손질한 노각. 하얀 속살이 드러난 늙은 오이가 맛난 음식으로 변한다.
    ▲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손질한 노각. 하얀 속살이 드러난 늙은 오이가 맛난 음식으로 변한다. 전갑남

    우선 감자칼과 칼, 숟가락을 챙겼다. 노각 껍질을 감자칼로 싹싹 벗겨내니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속을 깨끗이 긁어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양푼에 담았다. 소금과 물엿을 넣어 절이는 것으로 재료 손질은 끝냈다.

    노각이 절여지는 동안 양파 하나, 부추와 청양고추 몇 개를 준비했다. 그런데 텃밭에서 베어 온 부추에 하얀 부추꽃이 피어 있었다.

    "이걸 먹어도 되나?"
    ​
    잠시 망설였지만 꽃대만 올라왔을 뿐, 잎은 아직 야들야들했다. 깨끗이 씻어 함께 쓰기로 했다. 20여 분이 지나자 노각에서 물이 많이 나왔다. 수분이 많은 오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마른 면포를 찾아 노각을 싸고 힘껏 짜내어 물기를 뺐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노각을 소금에 절이는 중. 소금기가 더해져 수분을 빼내고 간이 배인다.
    ▲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노각을 소금에 절이는 중. 소금기가 더해져 수분을 빼내고 간이 배인다. 전갑남

     양념 무침에 들어갈 다른 재료들을 준비했다. 채 썬 적양파, 다진 고추, 마늘 등이 함께 버무린다. 여기에 부추를 넣어 무쳤다.
    ▲ 양념 무침에 들어갈 다른 재료들을 준비했다. 채 썬 적양파, 다진 고추, 마늘 등이 함께 버무린다. 여기에 부추를 넣어 무쳤다. 전갑남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맛있게 무쳐진 노각무침. 가을에 먹는 색다른 맛이다.
    ▲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맛있게 무쳐진 노각무침. 가을에 먹는 색다른 맛이다. 전갑남

    ​이제 양념을 넣을 차례. 며칠 전 빻아놓은 햇고춧가루를 먼저 넣고 버무렸다. 붉은 고춧가루가 노각에 골고루 묻으니 제법 먹음직스러운 빛깔이 돌았다. 고추장을 조금 넣고 다진 마늘, 썰어놓은 양파와 부추, 송송 썬 청양고추를 넣었다. 액젓과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들기름을 듬뿍 둘렀다. 마지막으로 참깨를 솔솔 뿌렸다. 드디어 끝났다. 한 젓가락 집어 맛을 보았다.
    ​
    "음, 제법 그럴듯한데?"

    내 입에는 조금 싱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짠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
    "일류야, 일류!" 아내의 칭찬과 다음 숙제​
    ​
    얼마 후 읍내에 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
    "당신, 아까 내놓은 숙제 다 했을까?"

    "하긴 했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
    나는 숙제 검사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내가 만든 노각무침을 아내 앞에 내놓았다. 아내가 한입 맛보는 동안 나는 괜히 긴장한 채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아내가 환하게 웃었다.

    "와! 일류예요, 일류!"
    ​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세웠다. 나도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별것 아닌 반찬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 마치 어려운 숙제를 멋지게 해낸 것처럼 뿌듯했다. 그런데 아내가 씨익 웃으며 생뚱맞은 말을 덧붙였다.

    "이제 당신이 만든 반찬 매일 먹어야겠네."
    ​
    순간 웃음이 터졌다. 칭찬인 줄 알았더니 숙제 검사가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 숙제를 슬쩍 내놓은 셈이다.
    ​
     완성된 노각무침을 그릇에 담았다. 맛있는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었다.
    ▲ 완성된 노각무침을 그릇에 담았다. 맛있는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었다. 전갑남

    기분 좋게 속아 넘어가며 사는 맛​
    ​
    가을 텃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각 열 개가 우리 부부에게 뜻밖의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아내는 맛있는 반찬을 얻었고, 나는 노각무침 만드는 법을 하나 배웠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앞으로 나에게 맡길 반찬거리가 하나 더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부부가 오래 함께 산다는 것은 별것 아닌 일에서도 재미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슬쩍 숙제를 내고, 다른 한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해본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눈치를 살피고, 상대는 "일류야, 일류!" 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러면 또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속은 것 같아도 괜찮다.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

    내일 아침은 텃밭에 나가 어디를 둘러봐야 할까? 혹시 아는가. 텃밭 한쪽에서 또 다른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노각오이 #늙은오이 #노각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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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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