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케찰테낭고의 산간마을에서 맹인 아버지와 어린 딸이 들로 향하는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내 마음이 착해지는 풍경이었다.
이안수
우리는 지난 6월 말부터 길 위에서 우리의 모든 세포를 관통하는 시간과 길 위의 조우들에 경황이 없었다. 역사와 기억의 저편에 있었던 오래된 시간의 지층을 통과하는 그 여정을 단순히 경험이라고 말하기는 충분하지 않았다.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나의 치과 치료로 체류 6개월 시한의 5개월을 다 소진해 버렸기 때문에 1개월 이내에 멕시코 경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지나야 할 먼 길을 생각하면 마음도 몸도 종종걸음이어야 했지만, 자꾸만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산등성이마다, 계곡마다 각기 다른 사연과 풍경, 색과 속삭임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시 과테말라
우리가 사랑한 멕시코의 환대에 무례를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결과 체류 허용 기한을 넘기지 않고 과테말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멕시코와의 사랑은 가슴에 품고 국경을 접한 과테말라 서부와 북부 지역에서 몇 개월 동안 마야 키체족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간을 살아볼 예정이었다.
낙담과 환멸, 증오와 혐오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의 대척점에서 오직 순수와 희망을, 존중과 연대를, 공감과 사랑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은 맞서야 할 일에 맞설 수 있는 큰 용기가 된다. 내 속의 용기는 유한해서 자동차의 연료처럼 계속 채워주어야 한다.
이 길 위의 시간 속에서 이런 이들과의 조우가 '정의롭게, 순수하게' 살아갈 용기를 다시 충전해 주는 기회가 된다. 지난해 과테말라에서 보낸 시간은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열 개의 산 아래에서
우리는 지난 7월 16일 과테말라 서부 고원지대 케찰테낭고(Quetzaltenango)에 도착했다.
멕시코의 체류 만료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악사카의 동남부 지역은 우리의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고 답사할 궁금한 내용도 많아 여정에 좀 무리를 했다.
케찰테낭고에 도착했을 때는 한 발 더 움직일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근육이 소실된 육신을 좀 돌보면서 새로운 기운을 채우고 싶었다.
케찰테낭고는 주(州) 이름이자, 그 주도(州都)의 이름이기도 하다. 스페인 정복 이후, 멕시코 동맹군이 나우아틀어로 붙인 이름으로 '케찰(새)의 성벽 아래'라는 뜻이다. 하지만 과테말라 인구의 약 56%를 차지하는 라디노(Ladino, 스페인어를 쓰는 혼혈 메스티소 중심의 '비원주민' 집단) 비율이 높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마야계 원주민(주로 키체 K'iche'와 맘 Mam)의 구성비가 높아 여전히 마야의 뿌리를 담은 셸라(Xela)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Xela'는 '셸라후(Xelajú)'의 축약형으로 Xelajú는 키체(K'iche') 마야어 '열 개의 산 아래(Xe laju' noj)'라는 의미이다.

▲케찰테낭고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해발 3,772m의 거대한 성층화산인 산타마리아 화산.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이며, 산티아기토(Santiaguito) 용암 돔에서 지속적인 분출이 이어지고 있다.
이안수
어떤 운명인지 도착 다음날 한 교민을 만났다. 과테말라로 온 지 30년. 그중 25년을 케찰테낭고에 사신 분이었다. 우리는 만난 지 10분 만에 서로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고 헤어졌다.
나와는 나이가 같았지만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우리는 그 후 거의 매일 만났다. 한국에서의 성장과 청년기를 살았던 시대 정서를 공유한 점이 밑도 끝도 없는 신뢰였던지 지난 69년의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성으로 통제가 불가능했던 지난 시간의 열망과 방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개인이었다가, 가정이었다가, 원수의 이야기였다가, 우정의 이야기가 되고, 사람의 애환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 종교와 섞이고 결국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되었다. 하소연은 회한으로 이어졌고, 증오는 연민으로 끝났다.
해발 0m를 찾아서
우리가 케찰테낭고에 도착한 이후, 아내와 번갈아 감기 기운과 함께 몸살이 지속되었다. 나는 그것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무리한 일정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 교민께서 우리의 증상을 눈치챈 뒤 조언을 주셨다.
"해발 0m에 한 번 다녀오시죠. 이곳은 해발 약 2330m입니다. 이곳에 오신 선교사님들께서 간혹 해변으로 가서 며칠간 몸을 회복하고 오시곤 하죠. 그럼에도 몇 년간 지내다가 결국 건강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시곤 하세요."
우리는 이미 멕시코 여러 2500m 내외의 산간 마을에서 몇 개월씩 지냈기 때문에 이곳 고도 정도에는 몸이 충분히 적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케찰테낭고의 구도심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 도시를 둘러싼 산허리에는 거의 매일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안수
그러나 새롭게 안 사실은 고산 지대에서 몇 년을 살아도, 그곳에서 태어난 토착민처럼 완전한 적응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인체는 호흡과 심박수를 높이고 적혈구 수치를 늘려 산소 운반 능력을 향상 시킨다. 하지만 유전적 적응 메커니즘이 없는 외지인은, 수천 년 동안 고산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안정적 생리 적응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이곳의 해발고도라면 해수면보다 산소 농도가 약 25% 정도 감소하므로 숨 쉴 때 들어오는 산소량은 4분의 1가량 적은 셈이다.
"목요일 아침 7시, 숙소에서 만나요."
그 교민은 우리의 증상을 고산병 탓으로 짐작했다. 결국 우리가 그의 조언을 실행하지 않자 해발 0m의 치유 시간을 계획한 것이다.
칼도 데 마리스코
케찰테낭고에서 3시간 쯤 달려 도착한 툴라테(Tulate)의 태평양 해변은 에스테로(Estero, 하구 습지, 갯벌, 늪지대 등을 포함하는 좁고 긴 수역)를 통해 바다와 연결되는 독특한 지형으로 보트로 건너 접근할 수 있었다. 수로의 맹그로브 숲에 한눈을 파는 사이, 배는 금방 검은 화산 모래 해변(Playa de Tulate)에 닿았다.
케찰테낭고의 새벽 기온 11도 추위에 기상해서 높은 한낮 기온 20도가 될 때까지 양지를 찾아야 했던 선선하고 건조한 고원성 기후에서, 불과 170km 남짓 떨어진 낮 기온 34도쯤인 툴라테의 습한 열대 해안 날씨에 노출되니 기온 변화가 신기할 정도였다.
고도가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약 0.6°C 정도 낮아지는 기온감률 덕분에 해발 0m에서 감기 기운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섬이나 암초 하나 없는 망망대해의 파도가 높아서 누구도 수영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물속에서 해안으로 직각으로 치는 파도와 해안과 나란히 치는 파도의 위험한 파랑을 두어 시간 즐기다 보니 몸이 더워지고 호흡도 편안해졌다.

▲얼큰한 해물탕, 칼도 데 마리스코와 튀긴 생선 요리인 모하라 프리타. 툴라테 해변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대표적인 현지 음식이다.
이안수
중식으로 미리 조리를 주문해 둔 툴라테의 대표적인 현지 음식인 칼도 데 마리스코(Caldo de Mariscos 새우, 게, 조개, 생선 등 해산물을 듬뿍 넣고 허브와 향신료로 깊은 맛을 낸 얼큰한 해물탕)와 모하라 프리타(Mojarra Frita 생선을 통째로 깨끗이 손질한 뒤 소금, 마늘, 라임으로 간하고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생선 요리)로 보양하고 돌아오니 여러 날 휴양지에서 보내고 온 듯 몸이 가뿐해졌다.
다녀온 다음 날부터 실제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으니 태평양 연안 마을에서의 하루는 우리 부부의 개인적인 회복에는 약을 먹는 것보다도 효과가 좋았다.
뜨거워지는 바다
최근 네팔에서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실종되는 참사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몸을 회복 시켜준 툴라테의 따뜻한 해수 온도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태평양 바다 물속의 온도는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 샤워실의 최고 온수보다도 높게 느껴졌다. 전 세계 해양 수온 변화를 실시간·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인 NOAA(미국 해양대기청)의 자료를 살폈다.
중미 태평양 연안 일대의 해수면 온도는 지난 수십 년간 완만히, 그러나 꾸준히 상승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NOAA는 올해 6월 이미 엘니뇨, 그것도 '슈퍼 엘니뇨'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점친 엘니뇨를 선언한 뒤였으니, 그날 우리 몸을 데운 그 이례적인 온기는 장기적인 온난화 위에 일시적인 엘니뇨의 열기까지 겹쳐 얹힌 것이었을 터다.

▲해변의 목동과 소떼. 태평양의 바닷물 속 두어 시간 동안 생명 하나 대면할 수 없었다. 그 검은 화산 모래 해변으로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목동과 소떼가 지난다.
이안수
해수면 온도가 1~2도 높다는 것은 해양 생물에게 작지 않은 스트레스다. 대부분의 열대 해양 생물은 24~30도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서식하지만, 30도 이상이 지속되면 산란·성장·생존에 부담이 커지고 플랑크톤·산호·어류로 이어지는 먹이망 전체가 흔들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생태계 균형 붕괴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증거로 분석한다.
히말라야 고산 지역의 빙하 붕괴와 태평양 연안의 해수면 온도는 결국 공통된 원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욕망과 편리함을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는 인색하다. 그날 우리 몸을 데워주었던 그 따뜻함이, 사실은 경고 신호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바닷물 속에 있었던 두어 시간 동안 단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도 보지 못했다.
바다의 흉년 속에서 태평양 연안 미식 문화인 칼도 데 마리스코나 모하라 프리타 같은 가스트로노미아 차핀(Gastronomía Chapín 과테말라 전통 음식 문화)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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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떨치러 갔다가 따뜻한 바다에서 느낀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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