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비룡소
소설에는 새 아파트에 사는 '1군' 가족과 사거리 건너 빌라촌에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는 집과 동네가 사람의 수준을 가르는 기준처럼 작동한다. 수림이의 가족 역시 그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살면서도 자신들이 누리는 생활을 당연하게 여기고, 더 좋은 조건을 갖지 못한 것을 불평한다.
그러던 가족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집을 잃고 자신들이 낮춰 보던 빌라촌으로 들어오면서 삶의 자리가 뒤바뀐다. 나는 이 설정이 단순히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잘 사는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지를 되묻게 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늘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보다 '무엇을 가질 것인가'를 먼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좋은 성적과 좋은 직장, 넓은 집과 비싼 아파트가 한 사람의 가치를 설명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보다 경쟁의 기준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례주택>은 그 질문을 수림이의 눈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으며 '잘 사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순례씨에게 배운 것
무엇보다 마음을 빼앗긴 인물은 순례씨였다.
젊은 시절 세신사로 일해 마련한 돈으로 건물을 사고, 그곳을 '때 탑'이라고 부른다. 세입자의 형편을 살펴 보증금을 나중에 받기도 하고, 주변보다 저렴한 임대료를 받는다. 옥탑에는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주목한 것은 그의 선행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되 사정을 캐묻지 않는다. 남의 어려움을 소문 거리로 만들지도 않는다. 도와준 사실을 내세워 상대에게 빚진 마음을 갖게 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나는 생활 지능이란 무엇인지 생각했다.
생활 지능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것.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것. 무엇보다 타인의 삶에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례씨는 돈이 많아서 좋은 사람이 아니다. 돈과 사람을 대하는 자기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다. 가진 것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 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삶이 보여준다.
순례씨가 수림이에게 묻는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말처럼 다가왔다.
수림이의 부모는 나이로는 어른이지만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보다 부모에게 기대고, 아이의 성적과 남의 시선에 흔들린다. 반면 아직 중학생인 수림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도움을 받았을 때 자존심보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안다. 그래서 어른이라는 말을 나이와 분리해서 바라보게 됐다.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쓴다'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 몫까지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에 가깝다. 혼자 서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반대말이 아니었다.
아이의 성적표에는 없는 것들
수림이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학원을 많이 다니고 성적이 좋은 언니 미림이에 비해 엄마의 눈에는 부족한 아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변에서 바라보는 수림이는 상황을 살피고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아이다. 이 모습을 보며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기준도 돌아보게 됐다.
성적표에는 숫자가 적혀 있지만, 그 숫자만으로 한 아이의 삶을 설명할 수는 없다. 돈을 어떻게 다룰지,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지, 도움을 받았을 때 어떻게 감사할지는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능력이야말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필요한 공부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순례주택>은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읽어볼 만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지 서로 묻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례씨는 말한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이 말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관광객처럼 살면 늘 부족하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물건, 더 많은 돈을 바라보게 된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이 머문다. 반면 순례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과 만나는 사람, 오늘 주어진 시간도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나 역시 필요 이상으로 쌓아두지 않고 덜 소비하며,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쉽지는 않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을 지키며 살아가는 순례 씨가 더욱 존경스럽다.
말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책에서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다. 순례씨가 수림이에게 고구마를 건네며 말한다.
"수림아, 말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야. 내 사랑을 받아줘."
수림이는 더 묻지 않고 고구마를 받아든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에서 사랑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걱정한다는 이유로 삶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사랑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묻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상대가 말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일 수 있다.
마지막에 순례 씨는 정현종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시를 읽으며 말한다.
"이 시가 내 인생 같아."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시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떨어진다. 가진 것을 잃기도 하고, 계획이 어긋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튀어 오를 힘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힘은 혼자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말없이 건네는 고구마 하나, 묻지 않고 기다려주는 마음,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이 우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순례 주택>을 덮으며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많이 가진 사람보다 자기 삶의 몫을 감당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도움을 주면서도 생색내지 않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판타지 하나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을 책을 읽으며 만났는데, 이상하게 가장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있었다. 순례씨였다. 어쩌면 요즘 같은 세상에 순례 씨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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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를 읽고, 글을 씁니다.나이 들어가는 삶의 감각과 가족. 부부의 시간, 일상에서 건져 올린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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