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의 열정, 화폭에 담다'... 권오철 화백 생애 첫 개인전

태안 갯벌의 '능쟁이' 연작 40여 점 눈길... 불의의 사고와 재활 이겨내고 마련한 고희전

등록 2026.09.14 10:13수정 2026.09.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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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도록 한국화와 한길을 걸어온 초헌(皎軒) 권오철 화백이 교직과 작품 활동, 지역 미술 발전에 바친 50여 년의 시간을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반세기의 열정, 화폭에 담다'를 주제로 한 '초헌 권오철 한국화 작품전'은 지난 5일 개막해 오는 19일까지 태안문화원 제1·2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권 화백이 학창 시절부터 최근까지 그린 한국화 작품 100여 점이 선보인다. 태안의 옛 마을과 항구, 해안 풍경을 비롯해 태안 갯벌의 칠게인 '능쟁이'를 소재로 한 작품 40여 점이 눈길을 끈다.

 초헌 권오철 화백의 생애 첫 개인전이 지난 5일 태안문화원 제1·2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작품전에서는 권 화백이 50여 년 동안 그린 한국화 작품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 초헌 권오철 화백의 생애 첫 개인전이 지난 5일 태안문화원 제1·2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작품전에서는 권 화백이 50여 년 동안 그린 한국화 작품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신문웅

이번 작품전은 단순한 개인전을 넘어 40년 동안 충남 태안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지역 미술단체의 창립과 성장에 힘써온 권 화백의 삶과 태안 미술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자리다.

신문 속 복싱선수 그림에서 시작된 화가의 꿈

권 화백은 경북 의성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림과의 첫 인연은 중학생 시절 우연히 신문에서 본 복싱선수 서강일의 사진을 연필로 따라 그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오일장을 돌며 베니어합판에 그림을 그려 판매하던 노점상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그림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아들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 서라벌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게 됐다.


고교 시절 국전에서 여러 차례 특선과 입선을 한 한국화가 남강 김원 선생을 만나 화실에서 사군자와 수묵화, 목탄 석고소묘를 익혔다. 전국 중·고등학생 미술실기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아 대학 무시험 합격 특전을 얻었지만, 자신의 뜻에 따라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권영우·이종상·조평휘·유지원·오태학 교수 등 당대 한국화의 대가들에게 인물소묘와 수묵산수화, 문인화, 진채화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작품을 그대로 모사하기보다 자연과 대상을 직접 관찰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스승들의 가르침은 이후 권 화백의 실경산수화와 능쟁이 연작을 이끄는 뿌리가 됐다.

 초헌 권오철 화백의 생애 첫 개인전이 지난 5일 태안문화원 제1·2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작품전에서는 권 화백이 50여 년 동안 그린 한국화 작품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 초헌 권오철 화백의 생애 첫 개인전이 지난 5일 태안문화원 제1·2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작품전에서는 권 화백이 50여 년 동안 그린 한국화 작품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신문웅

태안에서 보낸 40년 교직…수많은 미술 인재 키워

1977년 대학을 졸업한 권 화백은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현재의 태안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며 태안과 인연을 맺었다.

상업미술과 상업서예를 가르치며 디자인과 펜글씨 등 학생들의 취업과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펼쳤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밤 10시까지 미술반 학생들의 실기를 지도하고, 휴일이면 천리포수목원과 태안지역 해변으로 나가 야외 스케치를 가르쳤다.

제자들이 전국 미술실기대회에 참가하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했고, 그의 지도를 받은 학생 가운데 다수가 이화여자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등 미술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학생 미술교육과 생활지도에 기여한 공로로 충남도교육감과 태안교육장 표창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2000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우수교사상과 2017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권 화백은 2017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태안여고에서 40년간 장기근속했다. 50년 역사의 태안여고에서 한 학교에 40년 동안 근무한 첫 교사라는 기록도 남겼다.

화방 하나 없던 태안에 미술단체의 씨앗 심어

권 화백은 태안지역 미술계의 기반을 다지는 데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대 후반 태안에는 전문 화방도 미술단체도 없어 미술재료를 구하려면 서산까지 가야 했다. 권 화백은 1978년부터 서산지역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서예가 심응섭·서양화가 왕봉희씨와 함께 첫 전시인 '삼인전'을 열었다.

1981년에는 서산·태안지역 작가들과 순수미술단체 '화촌회'를 창립했다. 회원들과 매월 야외 스케치에 나서고 해마다 회원전을 개최하며 지역 미술의 기반을 넓혔다.

태안군이 서산군에서 분리돼 복군한 이후인 1995년에는 태안 작가들과 '샘골스케치회'를 창립했다. 창립 당시 7명의 회원이 1년 동안 그린 스케치 작품만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웠고, 샘골스케치회는 태안의 대표적인 순수미술단체로 성장했다.

1994년에는 태안지역 중등학교 미술교사들과 '태안군중등미술교육연구회'를 만들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참여한 '밀물과 썰물전'을 2015년까지 21차례 개최하며 지역 학생들에게 작품 발표와 감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2006년에는 샘골스케치회 회원들과 서예 작가들이 뜻을 모아 한국미술협회 태안지부를 창립했다. 권 화백은 이후 한국미술협회 태안지부장과 태안문화원 감사·이사 등을 맡아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힘을 보탰다.

태안 갯벌의 작은 생명 '능쟁이'를 화폭에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태안 갯벌의 칠게인 '능쟁이'를 소재로 한 연작이다.

권 화백과 능쟁이의 첫 만남은 대학 시절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찾아간 소래포구에서 시작됐다. 갯벌에서 처음 본 칠게가 인상 깊었던 그는 시장에서 칠게를 구해 실기실로 가져온 뒤 냄새가 날 때까지 며칠 동안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후 태안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갯벌에서 능쟁이를 다시 만났다. 작은 발소리에도 재빨리 굴속으로 숨고 썰물이 되면 무리를 지어 나와 쉴 새 없이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발견했다.

갯벌의 유기물과 미생물을 걸러 먹으며 생태계를 정화하는 능쟁이는 갯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권 화백은 작지만 쉼 없이 움직이는 능쟁이의 생명력과 공동체성을 수십 년 동안 화폭에 담아왔다.

처음에는 먹의 농담을 살린 수묵으로 그렸고 이후 담채와 진채로 표현 영역을 넓혔다. 하늘에서 갯벌을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으로 그려진 능쟁이 무리는 얼핏 고요해 보이지만 저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권오철 화백이 수십 년간 그려온 능쟁이 연작. 하늘에서 갯벌을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과 수묵·담채·진채기법으로 무리를 지어 끊임없이 움직이는 능쟁이의 생명력과 태안 갯벌의 정중동을 표현했다.
▲ 권오철 화백이 수십 년간 그려온 능쟁이 연작. 하늘에서 갯벌을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과 수묵·담채·진채기법으로 무리를 지어 끊임없이 움직이는 능쟁이의 생명력과 태안 갯벌의 정중동을 표현했다. 신문웅

정낙추 시인은 권 화백의 작품세계를 '정중동의 미학'으로 평가했다. 조용한 화면 안에 자연과 환경, 사람살이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사라지는 태안의 풍경을 기록하다

권 화백의 또 다른 주요 소재는 기와지붕과 낮은 슬레이트집이 모여 있는 시골마을, 한적한 골목과 작은 항구다.

그는 화려하고 웅장한 명승지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태안의 일상적인 공간을 직접 찾아 스케치하고 수묵담채화로 옮겼다.

1990년대 후반부터 농어촌 주거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오래된 마을과 골목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봤고, 기억 속에서 지워지기 전에 그 모습을 화폭에 남겼다.

오래된 집과 낮은 처마, 좁은 골목을 담은 작품에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웃 간 온정이 오갔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배어 있다.

이번 전시는 한 화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개발과 현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태안의 옛 풍경과 갯벌 생태계를 기록한 지역 생활사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사고와 긴 치료 딛고 다시 잡은 붓

권 화백은 교직 생활 때문에 작품 활동에 온전히 전념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정년퇴직 후 생애 첫 개인전을 준비했다.

고희를 맞아 그동안의 작품세계를 정리하는 전시를 열기로 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모든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부상이 심해 다시는 붓을 잡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치료와 재활 끝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중단했던 전시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 작품전에는 그림과 함께한 50여 년의 기쁨과 슬픔뿐 아니라 사고를 이겨내고 다시 화폭 앞에 선 노화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권오철 화백의 첫 개인전이 태안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오철 화백의 첫 개인전이 태안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신문웅

권오철 화백은 "한국화와 함께한 시간이 어느새 50년을 훌쩍 넘었다"며 "교직 생활로 작품 활동에 전념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그동안 걸어온 시간을 이번 전시에 담았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세월 태안의 풍경과 갯벌, 능쟁이를 그리며 살아온 이야기를 군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초헌권오철화백 #칠게 #태안문화원 #태안미술의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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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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