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학살범으로, 민주당을 살인마 집단으로 규정한 채 장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 뒤로 중용과 포용의 가치를 섬기는 성공회 성당이 보인다.
서부원
그가 제시하는 정책적 대안은 이 세 가지로 압축됐다. 우선, 누리소통망은 말할 것 없고, 지상파 방송과 현실 속에서 난무하는 기성세대의 혐오 발언부터 제지해야 한다는 것.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그들의 온갖 혐오 표현은 악성 바이러스가 되어 청소년들에게 전염된다는 뜻이다.
'차별 금지법'도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적어도 청소년들에게 대상이 누구든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게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절실하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표현의 자유로 눙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도 당장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학교를 '탈정치적 공간'으로 손발을 꽁꽁 묶어둔 상태에선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체화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참정권의 보장이야말로 그들이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는 주장이다.
16세 청소년 언론인과의 토론에서 나는 제대로 된 반론 한 번 펼치지 못한 채 완패했다. 분명 창피할 노릇이었지만, 외려 뿌듯하고 기뻤다. 처음엔 그저 대견한 청소년 정도로 생각했는데 끝날 즈음엔 그는 나의 스승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게 죽비소리였다.
그와의 행복한 인연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현실을 마주쳤다. 주말 오후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광화문 광장에는 온갖 혐오 표현들이 넘실대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는 제지할 수 없는 성역이라는 듯 경찰들은 그냥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언뜻 살기마저 느껴지는 발화자 앞을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내용이 무엇이든 광장의 발언은 듣는 청중을 전제로 하는 행위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면 굳이 대형 스피커까지 가져와 마이크 앞에서 목청을 돋울 이유가 하등 없다.
호르무즈 파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그들의 주장은 주변의 다른 목소리에 뒤엉켜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펄럭이는 깃발에 적힌 글귀를 통해서 전달될 뿐이었다. 광장은 수많은 목소리가 흩뿌려지는, 흡사 스피커 성능의 경연장 같은 느낌이었다.
부정 선거 주장을 이어가는 시위대가 광장을 순찰하듯 돌아다니고, 주변엔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조희대를 사수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받들어총' 자세의 16개 시설물이 설치된 '감사의 정원'에는 멸공을 외치는 청년들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개신교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했고, 한 대기업에선 오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판촉 행사를 열고 있었다. 이 와중에 광장 한복판 무대 위에서 한복 차림으로 가곡을 목 놓아 부르는 가수가 조금은 애처로워 보였다. 지자체가 주관한 '한복 축제'가 열리는 중이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부정선거' 주장하는 젊은이들

▲ 서울특별시 의회 건물의 입구를 막아선 평등법,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 팻말이 인도를 가로막고 있다. 스피커에선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서부원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혼돈의 광장을 서성이며 '극장의 딜레마'를 떠올렸다. 극장에서 앞자리에 앉은 한 사람이 무대를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서면 모두가 따라서 일어서게 되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의 불합리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규칙의 제정과 외부의 개입 필요성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전방에서 군 생활할 때 경험했던 귀를 찢을 듯한 남과 북의 대북, 대남 방송이 연상되기도 했다. 스피커 볼륨을 끝까지 올리며 자기 할 말만 쏟아내는 모습에 광장의 시민들은 귀를 막고 외면하는 걸로 저항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는 광장의 소음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더욱 큰 문제는 광장의 곳곳에서 돌출되는 혐오 표현들이다. '짱깨', '개××', '빨갱이' 등의 말들이 버젓하다 보니, '처단'이나 '멸공' 등의 용어가 되레 고상해 보일 지경이다. 시의회 입구를 막고 평등법과 차별 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팻말을 세워둔 길을 시민들이 무심히 걷고 있다. 광장에서 어딜 가든 혐오 구경은 피할 수 없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대다수는 어르신들이었다. 사실상 그 둘은 동의어로 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광장엔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이들 중에 청년들이 적지 않고, 멸공을 외치는 이들의 다수도 그들이었다.
확신에 찬 그들의 모습을 통해 "청소년의 극우화는 대한민국 극우화의 산물"이라는 장 편집장의 일갈을 곱씹게 됐다. 온갖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광장은 갈급한 그들의 정치적 호기심을 채우는 진짜 학교였다. 기실 '탈정치화한' 학교에서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 그가 제시한 정책적 대안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내심 다짐하며 혼돈의 광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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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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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극우화? 대한민국 극우화의 산물" 16살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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