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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갱이년 잡아라"... 보리짚가리에 숨은 여성의 마지막

    [김삼룡과 6.25 ④] 김삼룡 조카의 비극과 공동열 집안의 몰살

    등록 2026.09.14 16:55수정 2026.10.0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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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제석 마을주민 김희열과 공동열 집안이 몰살된 사연을 증언한 공제석
    ▲공제석 마을주민 김희열과 공동열 집안이 몰살된 사연을 증언한 공제석 박만순

    치마를 움켜잡은 여성이 보리짚가리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우연찮게 이 모습을 지켜본 공제석(당시 10세)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보리짚가리로 숨어든 이가 마을에 사는 여성 김희열(약 25세)이었기 때문이다. 공제석은 집 흙담에서 목을 쭉 빼고 보리짚가리를 주시했다.

    "이 빨갱이 년이 어디로 갔을까?"

    몽둥이를 쥐고 대열의 선두에 선 여성이 악을 썼다. 몽둥이를 든 여성들은 근처 집을 샅샅이 뒤졌다. 방과 다락은 당연하고 심지어 변소 문까지 열었다. 소년 공제석은 씩씩거리며 분탕질하는 이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한 여성이 몽둥이로 보리짚가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다른 여성들이 일제히 보리짚가리를 에워쌌다. 공제석은 순간 움찔했다. 김희열이 잡히는가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짚가리를 밀치자, 김희열이 사시나무 떨 듯했다.

    "빨갱이 년 여기 있다"라는 환호성과 함께 맨 앞에 선 여성의 손에 들려 있던 몽둥이가 춤을 추었다. '악'하는 비명과 함께 김희열은 정신 줄을 놓았다. 동시에 이를 지켜보던 소년 공제석이 오줌을 지렸다.

    얼굴에 찬물을 쏟아붓자 김희열이 신음을 내며 정신을 차렸다. 분이 가시지 않은 여성들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을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이들은 이집 저집 다니며 "빨갱이 년 잡았다"고 외치며 몽둥이찜질을 했다.

    마을을 한 바퀴 다 돈 후 김희열은 어딘가로 끌려갔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목격한 이는 없으나, 그녀가 엄정지서 순경에게 넘겨졌을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6.25 전쟁이 끝난 후에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봐서는 그녀가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거라는 것도 뻔한 일이었다.


    보리짚가리에 숨어 있던 김희열이 같은 마을 여성들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간 것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며칠 만인 1950년 6월 말이었다. 충주군에서 제일 먼저 예비검속 당해 군경에게 학살당한 이가 김희열일 것이다. 그녀는 남로당 조직 총책이던 김삼룡의 조카였다. 즉 김삼룡의 형 김쌍룡(1897년생) 딸이었다.

    김희열은 전쟁 전 충북 충주군 엄정면 소재지인 용산리에서 유봉리 막골마을로 시집을 왔었다. 그녀는 전쟁이 나자마자 김삼룡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다.


    아기를 업고 간 청년

    1950년 6월 말 김희열이 끌려간 뒤, 그해 9월 말에는 공동열 일가에게도 비극이 닥쳤다.

    "아기도 많이 먹어라!"

    작은할아버지가 마냥 귀엽기만 한 조카 손주에게 정을 듬뿍 담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동그란 밥상에는 공동열의 어린 아들 공봉춘(6세), 공제석과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 자리에 공제석의 사촌 형 공동열은 없었다. 그는 군경이 수복하기 직전 행방불명되었다. 즉 공동열의 아들 공봉춘은 졸지에 천애 고아가 된 것이다. 여성들은 다른 밥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이날은 공제석 집에서 타작한 날이었다. 온 집안이 모여 타작을 했기에 그날 저녁은 식구들이 다 같이 식사를 했다. 행방불명된 사촌 형 공동열을 대신해 그의 어린 아들 공봉춘과 여동생 공복남이 사촌인 공제석네 집 식사 자리에 함께한 것이다.

    된장국에 숟가락이 부딪힐 때였다. "공동열 나와!"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방문이 부서졌다. 불청객의 침입에 오순도순 밥을 먹고 있던 공제석 식구들은 혼비백산했다.

    인공 시절을 뒤로 하고 군경이 수복한 시기에 공동열이 작은아버지 집에서 버젓이 밥을 먹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엄정지서 경찰들과 마을 청년들이 공제석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은 공동열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공동열 집안의 싹을 뽑기 위해서였다.

    밥상을 구둣발로 찬 경찰은 옷장과 다락을 뒤졌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뒤에 서 있는 이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한 청년은 공동열의 여동생 공복남(당시 11세)을 마당으로 끌고 갔다. 다른 청년이 공동열의 아들 공봉춘을 둘러업었다.

    잔뜩 긴장한 공복남은 얼굴만 새파래졌을 뿐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청년의 등에 업혀 가는 공봉춘은 울음보를 터뜨리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6살 아이의 발버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엄정지서 경찰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끌려간 공동열의 아들 공봉춘과 여동생(공복남)은 엄정면 유봉리 막골마을 막고개에서 생을 달리했다. 이날 생과 사를 달리한 이들은 공동열의 여동생과 아들 공봉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인공 시절 부역했다는 혐의로 마을 주민 20여 명이 생을 다했다. 1950년 9월 말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김희열이 먼저 학살되고, 공동열은 군경 수복 직전 행방불명되었다. 이어 공동열의 아들과 여동생 역시 1950년 9월 말 막고개에서 인간 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엄정지서 경찰 민◯◯이 장총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다면 공동열의 부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군경이 수복한다는 소식에 충주군 앙성면으로 피난 갔던 공동열의 부모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소위 빨갱이와 그 가족을 숨겨준 이도 범인은닉죄로 처벌받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막골마을로 돌아오던 공동열의 아버지 공재룡은 몽유병자처럼 말을 내뱉었다.

    "이◯◯, 네놈들의 손에 죽지는 않겠다."

    슬픈 눈망울을 한 아내 오학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유봉리 버들골 담 안 도랑에 뛰어들었다. 투신자살한 것이다. 한국전쟁 초기 김희열의 학살을 시작으로, 그해 9월 말에는 어린 자식과 여동생, 부모마저 목숨을 잃으며 공동열 집안 역시 완전히 몰살되었다. 그 비극의 배경에는 공동열이 좌익 김◯◯와 한 패거리라는 낙인이 있었다.

    막골마을로 돌아오던 공동열의 아버지 공재룡은 몽유병자처럼 말을 내뱉었다. "이◯◯, 네놈들의 손에 죽지는 않겠다." 슬픈 눈망울을 한 아내 오학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을에 겹친 좌우의 비극

    충북 충주군 엄정면 유봉리에는 한국전쟁 전에도 갈등이 있었다. 마을 청년들이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며 감정 대립이 늘 있었던 터였다. 유봉리의 우익은 엄정지서 민◯◯의 끄나풀 역할을 했다.

    좌익 김◯◯와 그의 영향을 받은 청년들은 툭하면 우익 이◯◯와 그의 패거리들에게 테러를 당했다. 또한 엄정지서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평소에 우익지도자 이◯◯는 좌익 지도자 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공 세상이 펼쳐졌다. 평소 순박하기만 했던 김◯◯는 이때다 싶어 이◯◯를 해코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부산으로 피난 간 상태였다. 이◯◯의 집에는 임신한 아내만이 있었다. 김◯◯가 공포를 쏘자 임산부인 이◯◯의 아내가 혼절해 죽었다.

    1950년 가을에 이◯◯의 둘째 부인이 된 유씨(1930년생)가 시댁 식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이◯◯의 부모는 지방 좌익들에게 추평초등학교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평소 우익 집안이라고 찍힌 사람들이 있었다. 정작 우익은 없었다. 이◯◯처럼 전쟁이 나자마자 남쪽으로 피난을 갔기 때문이다.

    결국 추평초등학교에는 우익 활동가 본인은 빠진 채 그들의 부모와 아내, 어린아이들만이 갇혀 있었다. 이들은 무치고개에서 후퇴하는 인민군과 지방 좌익에게 죽임을 당했다.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는 죽임이었다. 이른바 대살(代殺)이었다. 1950년 추석(9월 26일) 직전이었다.

    추평초등학교 우익인사들이 학살되기 전 구금되었던 추평초등학교
    ▲추평초등학교 우익인사들이 학살되기 전 구금되었던 추평초등학교 박만순

    피의 제전이 끝난 후에 유봉리로 시집온 유씨는 시댁의 사연을 듣고 기겁을 했다. 시부모와 형님(이◯◯의 첫째 부인)의 사연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진저리를 쳤다. 자신이 시집오기 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어떻게 한 마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자신이 시집온 사연을 되돌아보니 유씨는 문득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씨는 일찌감치 인천 동양방직에 취업했다. 6년째 일하는 와중에 전쟁이 터졌다. 전쟁으로 인해 그녀는 고향인 충주 용산동으로 낙향했다.

    인공 시대가 끝나고 엄마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자기보고 시집을 가라는 것이었다. 유씨는 결혼을 생각지도 못한 터에 엄마의 다그침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남편 될 자가 11살이나 연상이었고, 한 번 결혼했던 이라는 것이다. 즉 재취 자리였다.

    유씨가 펄쩍 뛰면서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지만 허사였다. 사실 그녀의 결혼은 유씨 집안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씨의 엄마가 인공시절에 인민위원회 사람들 밥을 해 주었던 것이다. 즉 경찰 입장에서 보면 부역자였다. 유씨 엄마가 신분 세탁을 하려면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딸내미를 우익 집안에 시집보내는 거였다. 그것도 인민군과 지방 좌익에게 가족이 학살당한 집안에 재취 자리로 시집보내는 거였다. 결국 유씨는 엄마와 친정 식구들의 안전을 위한 희생양처럼 결혼하게 됐다.

    마을의 비극을 넘어 국가의 책임으로

    6.25 전부터의 좌·우 갈등과 전쟁기 보복 학살은 엄정면 유봉리에 어두운 그림자가 상존하게끔 했다. 전쟁 때 있었던 일에 대해 누구도 입을 여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을 좌익 지도자 김◯◯는 인민군 후퇴기에 월북했다가 남파되었다. 여관에서 잠꼬대를 하다가 여관 주인의 신고로 검거되었다. 오랜 교도소 생활 끝에 모범수가 되어 석방되었다. 그가 고향인 엄정면 유봉리에 몇 차례 왔었지만, 그곳에 정착할 수는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데면데면하게 대한 것도 있지만 일부 사람들과는 원수지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엄정지서의 눈초리를 감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를 따르던 청년들은 학살되거나 행불되었다. 공동열 집안처럼 싹쓸이된 집도 있었다. 그나마 남은 이들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반면에 우익 사람들은 날개를 활짝 폈다. 이◯◯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큰소리를 치고 살았다.

    유봉리의 비극은 단순히 마을 청년들의 좌·우 갈등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다. 엄정지서라는 국가공권력의 존재가 배후에 있었던 것이다. 엄정지서 민◯◯이 우익의 뒷배로서의 역할을 했다. 군경이 수복한 후에 우익 청년들이 "오늘은 누구를 죽일까?"라며, 마을 한복판에 잡아 놓은 사람들을 경찰 민◯◯이 저녁때마다 유봉리로 와서 막골고개에서 죽였다.

    특히 김삼룡의 조카 김희열은 전쟁이 나자마자 죽임을 당했다. 경찰이 후퇴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김삼룡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유봉리 여성들을 동원해 체포했다는 것이다. 엄정면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되기도 전에 말이다. 정치와 안보에는 무능했던 정부가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에는 귀신처럼 잽싸게 행동한 대표적 사례이다.

    유봉리의 비극은 단순히 마을 청년들의 좌·우 갈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이와 집단을 배제한 이승만 정부에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대한민국 전체와 충주군, 엄정면, 유봉리에 동일하게 관철되었다.
    #보리짚가리 #김삼룡조카 #엄정지서 #대살 #추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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