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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9.14 15:07수정 2026.09.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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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밭농사를 짓겠다고 고향으로 내려와 동네 방앗간을 찾은 적이 있다. 논으로 사용하던 땅에 밭농사를 지으려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배수였다. 왕겨를 흙에 섞으면 물 빠짐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남편과 나의 계획을 들은 방앗간 사장님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 왜 밭농사를 지으세요? 얼마나 힘든데... 그냥 논으로 관리하세요. 밭농사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농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들은 첫 만류였다. 처음 들판을 드나들며 밭농사 준비를 할 때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도 너도나도 "아니 멀쩡한 논을 왜 밭으로 바꿔? 밭농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그 힘든 걸 왜 해?"라며 한마디씩 보탰다.
농사꾼들의 조언

▲배수로 작업중인 남편 밭 가장자리로 배수로를 정비하고 있는 남편, 농기계임대사업소에서 장비를 빌려준다.
김희
또 한번은 모종 키우는 일을 하는 육묘업자(씨앗을 뿌려 밭에 심기 전까지의 어린 모종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사람)를 만났을 때다. 그분은 귀농해 밭농사를 지어보겠다는 내게 "생업은 아니죠? 밭농사는 정말 생각보다 힘들어요. 쉴 틈이 없고 돈도 안 돼요"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도 돌보며 가족들이 먹을거리를 농사짓는다고 말하자 환하게 웃으며 "그러면 다행이네요.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오세요" 하고 마음을 열어주었다.
고향에서 밭농사를 시작한 지 이제 2년째, 조급했던 첫해를 지나 두 번째 가을을 시작하는 지금, 주변 사람들이 왜 그토록 밭농사를 말리고 걱정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온몸으로 알아가고 있다.
남편이 쉬었던 지난 12~13일, 해야 할 일들이 산적했다. 3주 이상 비가 오기를 반복해 미뤄 놓은 밭일이 많아서다. 우리는 밀린 숙제를 해치워야 해 주말 날씨에 온 관심을 기울였다. 다행히 하늘은 개고 가을볕이 좋다는 주말, 우리는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밭으로 향했다.
주말 동안 밭 가장자리 배수로를 정비하고, 3주간 따지 못한 끝물 고추를 수확해 고추 건조기에 넣고, 엄마가 목 빠지게 기다리는 참깨를 털어야 했다. 한동안 비가 오는 바람에 제때 약치지 못한 고추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반은 성하고 반은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남편과 마주 앉아 고추를 따며 아까운 마음이 왈칵 밀려왔지만, 남편의 한마디 "하늘이 먹지 말라는데 어쩌겠어"에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법, 결국 농사도 욕심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 하늘과 나누어 갖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반이라도 건지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며 하늘이 딱 줄만큼만 주는 거겠지, 그게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하며 서운함을 달랬다.
다음 숙제는 엄마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던 참깨를 털 차례였다. (관련기사:
참새부대와의 밀당, 엄마의 국산 참깨 사수기) 비가 오기 한참 전 극성을 부리던 참새떼로부터 어렵게 사수한 참깨를 비닐하우스 안에 널어두었었다.
3주간 비가 내리는 동안 참깨들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꼬투리 끝까지 야무지게 익어 이제는 털어도 될 만큼 여물어 있었다. 비가 그치고 참깨 터는 날을 엄마는 목이 빠지게 기다리셨다. 이번 추석에 자식들이 내려오면 이 참깨를 깨끗이 씻어 말리고 덖어서 직접 짠 국산 참기름 한 병씩을 꼭 안기고 싶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줄 기름 한 병을 위해 참새와 밀당을 하고 하늘 눈치를 보며 속을 끓이던 엄마는 가을볕에 널어놓은 턴 참깨를 만지며 한동안 미소 지으셨다.
마지막 숙제 고구마밭

▲첫 고구마 수확 땅속에서 흙에 묻혀 있던 고구마와 만나는 순간, 참으로 신기하고 재밌다. 땅속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김희
주말 동안 배수로 정비를 하고, 끝물 고추를 수확해 건조기에 넣고, 참깨를 털어 널고, 주말을 꼬박 밭에 매달려 일을 하느라 우리는 녹초가 되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지만, 마지막 숙제인 고구마밭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구마는 모종을 심고 110~130일 정도 지나면 수확할 수 있다. 우리 밭 고구마는 모종을 심은 지 120일 정도 되었는데 추석에 고구마전을 해 먹으려면 지금 캐서 숙성해야 했다.
몸은 무겁지만,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고구마를 생각하며 우리는 고구마 덩굴을 걷어냈다. 지난해에는 크게 수확하지 못했던 고구마였지만, 그래도 다시금 기대를 품고 호미질을 시작했다. 그 순간 호미 끝에 무언가 묵직하게 걸리는 느낌이 왔다. 줄기를 걷어내고 땅속에서 고구마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신기하게도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갔다.
대체 어디에 힘이 남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던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호미질을 반복했다. 하나가 나오면 또 그 밑에 하나가 있어 흙 속에서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다. 고추를 수확하며 간신히 잠재운 욕심이 고구마밭에서 다시 발동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줄기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고구마를 보며 손길이 바빠지던 나의 욕심을 남편이 "오늘은 그만하자"며 단호하게 멈춰 세웠다. 잠깐 수확한 고구마만으로도 다가오는 추석에 부칠 고구마전으로는 충분히 넘치는 양이었다.
더 욕심을 내어 전부 파헤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의 한마디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이미 소진한 체력에 힘들어하는 몸의 신호를 알아챈 것이고, 며칠 더 땅속에 두면 한층 더 튼실하게 여물 고구마에게 주어진 자연의 속도를 지켜주어야 함을 담고 있다. 남편은 자신의 몸을 돌보고 살피는 것도 땅의 흐름에 우리를 맞추는 순응의 일부라고 말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렸다가는 주말 이틀 동안 허리 한번 펴지 않고 일한 몸이 탈이나 며칠을 고생할 게 뻔했다.
호미를 내려놓고 올려다본 하늘(13일 저녁)은 주말 내내 분주히 숙제하느라 애쓴 우리를 위로하듯 맑고 예쁜 초가을을 담고 있었다. 가을볕을 부드럽게 담고 산 너머로 저물어가는 풍경을 남편과 나는 나란히 서서 바라보았다. 밭농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밭농사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단순히 육체적 고단함만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고 깨닫는다.
그건 자연의 속도에 맞춰 농사를 지으며 내려놓아야 할 욕심까지 염려한 인생의 깊은 조언이었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마주한 지금을 오랫동안 경험으로 깨우쳐 알고 이제 막 시작하는 우리에게 지혜를 건네준 셈이다. 남편과 나는 두 번째 맞이한 이 가을밭에서 그 염려와 걱정이 삶의 지혜를 담은 조언이었음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중이다.

▲고추건조기에 넣은 끝물고추 3주이상 비가와 고추들을 많이 수확하지 못했다. 절반이라도 건져서 감사한 마음은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배움이 있어 가능했다.
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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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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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 2년째, 농사꾼들이 왜 말렸는지 이제야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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