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추가 중단과 영덕-기장 신규부지 선정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1일 고리, 영광, 울진, 세종 4곳에서 출발한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 위한 전국행동 ‘탈핵순례단’이 16일 오후 세종대로를 지나 마무리 장소인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성원기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강원대 전자공학과 명예교수)가 ‘32기 너무 많다! 신규핵발전소 NO’가 적힌 가슴현수막을 달고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권우성
달그락거리는 등산용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등산복 차림을 한 백발 남성이 대열 맨 끝의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는 폭염과 소나기에도 걷고 또 걸었다. 이 도보순례의 이름은 '탈핵순례',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까지 순례에 나선 이 남성은 성원기 강원대 명예교수. 청와대는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약 300km에 이르는 순례길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성원기 교수가 순례에 나선 건 두 가지 요구 때문이었다. 오는 10월 공개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신규 핵발전소와 SMR(소형모듈원자로) 추가 반영을 중단할 것, 앞서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경북 영덕 핵발전소와 부산 기장 SMR 신규 부지 선정을 철회할 것. 성 교수를 비롯한 순례단 80여 명은 이날 행진을 마친 뒤 이러한 내용이 담긴 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 탈핵순례였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탈핵순례단 단장(고리핵발전소 출발)을 맡은 성 교수를 따라 16일 서울 삼각지역에서 청와대 인근까지 이동하는 행진 마지막 일정에 동행했다. 그는 행진 중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가) 새로운 핵발전소를 시작하지 않을 거라 믿었는데 배신당했다"라며 "12차 전기본에서조차 신규 핵발전소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이재명 정부를 '핵 진흥 정부'로 규정하겠다"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핵발전소 주변에서 건강과 생명을 잃어가는 주민들의 고통을 들으며 서울로 올라왔다"라며 "지난 1월 느닷없이 신규 핵발전소를 추진한다고 해서 순례했는데, 정부는 영덕에 신규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밀어붙였다. 고통 받는 지역이 있는데 왜 새로운 지역을 또 고통 받게 만들려고 하느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핵발전소 수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라며 "앞으론 재생에너지에다 ESS(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시켜야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고 비용도 핵발전소보다 훨씬 싸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성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부산에서 서울까지... 300km 순례 나선 이유

▲ 성원기 강원대 명예교수(고리핵발전소 출발 탈핵순례단 단장)가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걸은 탈핵순례길을 AI 이미지로 생성한 것.
클로드로 복건우 기자가 생성
- 부산 고리 원전에서 시작해 서울에 오기까지 경로가 어떻게 되나?
"지난 1일 고리 핵발전소에서 출발해 울산으로 넘어갔다. 경북 경주·영천과 대구를 지나 왜관·구미·김천·추풍령을 넘어 충북 영동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옥천·대전을 거쳐 세종까지 갔다. 어제(15일) 세종에서 미사를 드리고 기자회견을 한 뒤 차량으로 서울 노량진에 갔다. 핵발전소가 있는 고리·영광·울진·세종 4곳에서 출발한 순례단이 처음으로 서울에서 모여 한 번에 연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중간중간 방문한 지역들엔 어떤 의미가 있나?
"고리·경주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이다. 울산은 월성·고리 양쪽에 끼여 있어 핵발전소를 많이 끌어안고 있는 지역이다. 핵발전소 주변 지역민들은 '발전소가 폭발하면 우리는 끝난다'며 핵사고 위험을 늘 생각하며 산다. 경주·포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핵사고가 멀리 있는 일이 아닌 거다. 핵발전소 반경 5km 주민들은 실제 몸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기도 한다. 우리는 거기서 건강과 생명을 잃어가는 주민들의 고통을 들으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 성원기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강원대 전자공학과 명예교수)가 ‘32기 너무 많다! 신규핵발전소 NO’가 적힌 가슴현수막을 달고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권우성
- 순례단의 하루 일과는 어땠나?
"보통 오전 8시 순례를 출발한다. 마당에 모여 '생명 세상을 위한 기도문'을 천주교 형식으로 바치고, 사진을 찍으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12차 전기본에 신규 핵발전소 추가 선을 넘지 마라'는 기자회견 문구를 구호로 외친다. '탈탈탈(탈핵·탈석탄·탈송전탑) 순례가'를 부른 뒤 출발한다. 낮 12~1시쯤 점심을 먹고 오후 4시쯤 도착하면 순례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다. 탈핵·환경단체 사무실, 수도원, 가정집 등에서 잠을 잤다."
- 지금도 탈핵 도보순례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이재명 정부 들어 올해 벌써 두 차례 순례다. 지난 1월 느닷없이 신규 핵발전소를 추진한다고 해서 고리·영광 2곳에서 출발하는 순례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영덕에 신규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밀어붙였다. 그래서 이번엔 핵발전소가 있는 네 곳의 고통을 끌어안고 서울까지 온 거다. 고통 받는 지역이 있는데 왜 새로운 지역을 또 고통 받게 만들려고 하느냐.
저는 윤석열 내란을 끝내기 위해 추운 겨울 여의도와 광화문에 선 사람이다. 그때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핵발전소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윤석열이 공사를 시작한 신울진(신한울) 3·4호기를 백지화시킬 수도 있다는 그림을 그렸다. 백지화까진 아니어도 새로운 핵발전소를 시작하진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배신을 당했다. 탈핵 진영으로서 무리한 기대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추가 중단과 영덕-기장 신규부지 선정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1일 고리, 영광, 울진, 세종 4곳에서 출발한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 위한 전국행동 ‘탈핵순례단’이 16일 오후 세종대로를 지나 마무리 장소인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 ‘신규 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추가 중단과 영덕-기장 신규부지 선정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1일 고리, 영광, 울진, 세종 4곳에서 출발한 신규핵발전소저지와 핵없는사회를 위한 전국행동 ‘탈핵순례단’이 16일 오후 세종대로를 지나 마무리 장소인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 신규 원전 건설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부분은 어떻게 보나?
"전기공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얘기하면, 핵발전소는 일정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공급 전력과 수요 전력을 실시간으로 맞춰 공급하는 게 전력공급 시스템이다. 이때 핵발전소에서 발전되는 전기를 충분히 소비하는 수요가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소비가 줄어들었을 때 문제가 된다.
그러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줄여야 한다. 그게 (원전 출력을 제한하는) 감발운전이다. 감발운전은 핵사고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수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런 상태에서 핵발전소를 더 지어 에너지믹스로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건 전력공학적으로 허구다.
옛날엔 핵발전소가 싸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더라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재비, 건설비, 인건비가 올랐다. 2조~3조 원으로 짓던 핵발전소에 이젠 1기당 10조 원이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돈이다.
비싸고 위험한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하려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론 태양광이나 풍력만으론 안 된다. 재생에너지에다 ESS(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시켜야 한다. 그러면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다. 비용도 핵발전소보다 훨씬 싸다."
- 탈핵순례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탈핵순례가 시작됐고 2019년 삼척 핵발전소가 백지화되면서 그해 여름 순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대선이나 총선 기간에 맞춰 순례를 했고, 올해는 탈핵에 집중해 두 차례 순례를 한 것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고 하는데, 12차 전기본은 이재명 정부가 의지를 갖고 세우는 첫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여기서조차 신규 핵발전소가 들어간다고 하면 우리는 이재명 정부를 '핵 진흥 정부'로 규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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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핵발전소라니? 배신당했다"... 어느 백발 남성의 300km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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