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 중반,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주 일주도로 220km를 무작정 걸었다.
픽사베이
발바닥 물집은 첫날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발바닥 전체가 물집이 되었으나, 나는 내 발이 아닌 듯 그냥 걸었다. 큰 물집이 터질 때는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이내 양말이 축축해진다. 걸으면서도 물집이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바람 부는 날도 하루 종일 걸었다. 그날 걷기를 끝내고 나서는 온몸에서 각질이 밀가루 반죽처럼 끊임없이 나왔다. 그러나 다음 날 제주 하늘은 예쁘기만 했다. 비, 바람 맞으며 걸었을 때의 어려움을 지우개로 지운 듯했다.
3일, 4일째쯤 되었을까.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분명 제주 바다를 보며 걷고 있었고 파도 소리도 들렸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아무리 땅을 디디려고 해도 발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몸이 너무 지쳐 정신까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걸었던 길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거의 없다. 10년 후 다시 일주도로를 걸을 때, 혼이 나가 걸었던 길이 일부라도 생각이 날까 했는데 전혀 기억에 없었다.
일주일 뒤, 나에게 준 한 잔의 커피
결국 일주일 만에 출발점에 도착했다. 일주일 만에 일주도로를 걷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다고 한다. 도착하고 보니 내가 장하기도 했지만 너무 불쌍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돈을 아껴야 해서 제주의 그 많은 카페를 단 한 곳도 이용할 수 없었다. 한 끼 식사 값이 되는 커피 한 잔 대신 오로지 편의점 커피를 마시며 다녔다. 그래서 한 번도 사 마시지 못한 카페 커피를 나에게 상으로 주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가니 아저씨 사장님이 일을 하고 계셨다. 그분이 물어보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저요, 일주일 전에 이곳에서 출발해서 지금 도착했어요. 그런 제가 너무 장해서 내가 나에게 상을 주고 싶어요. 아이스아메리카노 주세요."
사장님은 내가 주문한 것보다 더 큰 잔에 얼음을 가득 넣어 커피를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그 상은 자신이 주겠다며 돈을 받지 않으셨다.
길 건너 쉼터에 앉아 상으로 주신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혼이 나갈 만큼 힘들고 보니 진짜 힘들면 비명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명이 나온다는 것은 덜 힘들다는 뜻이었다.
갖고 다니던 종이 지도는 글씨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너덜거렸고, 물집이 생겼다 터졌다를 반복한 발바닥은 지도와 비슷하게 되었다. 발톱 세 개가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공항 거울 속에서 만난 나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때는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을 때였다. 멋지게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내가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얼음땡이 되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면 더러운 것을 피하듯 길이 일시에 갈라졌다.
그때 내 모습은 영락없는 노숙자였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모자도 없이 선크림 한 번 바르지 않았고, 손에는 장갑도 없이 6월 제주 햇볕을 일주일 동안 고스란히 받으며 걸었으니 오죽했을까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공항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동안의 내가 아니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노숙자였지만, 내가 본 나는 달랐다. 죽음을 넘어선 전사의 모습이었다. 자랑스러웠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가 나를 이렇게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55년 동안 덧대기만 해서 누더기가 되어 있는 나에게서 깨어나기 위해 혼이 나갈 만큼의 힘든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 안에서는 제주를 갈 때의 내가 아니었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내 안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또 집에 와서는 내 의식 속에 다른 흐름이 생겼다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쉬어졌다. 숨이 쉬어지니 답답하기만 했던 가슴이 살 것만 같았다. 상황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죽어가던 발톱 세 개는 빠졌다. 돈을 계산해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그만큼 궁색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내 삶은 조금씩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걷는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72살이다. 돌이켜보면 그날 제주에서 내가 걸었던 것은 220km의 길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20년 전 한 여성이 내게 건넨 한마디가 있었다.
"도보 여행하세요."
그 말은 그때는 그저 한마디였지만, 내 인생에서는 아니었다. 그 한마디가 내 가슴에 씨앗 하나를 떨어뜨렸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 씨앗을 따라 길 위에 섰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도보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72살이 된 지금도 나는 걷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세상 끝까지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는 여행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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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어느 여름 치열하게 걸었던 지주일주도로 220km가 작가에게 도보여행가라는 표징의 작은 시작점이 되었다. 그 이후 10년동안 틈이 날 때마다 길 위에 서서 자신의 발자국으로 길과 길을 꿰메어 잇듯이 걷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와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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