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콰이아길 가을인가
이인자
'물의 정원'을 찾은 세 번 모두 날씨가 달랐다. 흐린 날, 화창한 날, 북동풍이 선선하게 불던 날도 있었다. 문제는 날씨에 따라 마음도 계속 바뀌었다는 것.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날들인데도 그까짓 날씨 하나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이 못내 마땅치 않았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더 곧고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몇 달 전, 안과를 찾았다. 어느 날부터 오른쪽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동그란 물방울 하나가 맺혀 보였다. 온갖 검사를 하고 나서 젊은 의사 앞에 앉았다. 망막 안에 물이 맺혔다고 했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물을 마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많이 아플 거라고 했지만, 막상 주삿바늘이 눈을 찌르는 순간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뒤였다. 운전하는 내내 눈에 물이 맺힌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상상했다. 강물이 솟구쳐 나를 뒤덮는 최악의 미래를 상상했다. 두 번째 안과를 찾았을 때는 안과 진료인지 상담인지 애매한 이야기를 나눴다. 의사는 나에게 잠을 많이 잘 것을 권했다.
다행히 한 달 뒤에는 물이 말라 있었다. 눈도 맑아졌다. 주사 때문인지, 잠을 많이 잤기 때문인지, 어쩌면 그 둘 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와 모처럼 마주 앉아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 자신을 한번 믿어봐 달라는, 진료 기록에는 남지 않을 다정한 약속을 들었다.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반짝이는 멸치 떼가 눈가에 몰려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까짓 물 한 방울 겁내지 말아야지, 단단해져야지, 나만 보이는 세상을 찾아봐야지, 반짝이는 강물 같은 찬란한 미래를 다시 생각했다.
물의 정원을 걷다 보면 고단함은 사람의 생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문득 느끼게 된다. 가장 무거운 가지를 땅에 대고 긴 잠을 자고 싶은 듯한 나무가 보였다. 그 곁에는 생을 다한 나뭇가지 하나가 두 팔을 벌려 받쳐주는 듯했다. 생을 다해 가는 나무는 그 마음이 고마운 듯 다시 살아볼까, 하는 결심으로 새잎들을 틔우는 것 같았다.

▲오래된 나무 살아보자
이인자
혼자 걷는 사람에게는 혼자 걷는 사람만 보인다고, 타인의 고독이 슬쩍 궁금해지기도 한다. 혼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을 보았다. 오십 미터쯤 떨어져서 나도 책 한 권을 펼쳤다. 하지만 강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면 웬만큼 독하지 않고서는 책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얼마 전, 누군가의 글에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오는 강에 관한 구절을 읽었다. 강물은 언제나 그곳에 머무르며 흐르고 있지만,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찾고 싶을 때마다 강물에게 묻던 오래전 습관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흐린 날, 화창한 날, 바람 부는 날 모두 좋은 곳

▲강만 좋은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산과 들판
이인자
한때 수상 교통의 요지였다는 용진나루터 근처에는 갈대와 거대한 강아지풀을 닮은 수크령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을만 되면 더 멀리 가고 싶어 들썩들썩하던 마음이 싸악 사라진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제주도 산방산이지, 여기가 순천만 갈대밭이지, 싶은 것이다.
'물의 정원'은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니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찾아와도 좋고, 혼자 조용히 걸으며 강물이 건네는 위로를 가만히 받아내도 좋겠다.
흐린 날, 화창한 날, 바람 부는 날 모두 좋다.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의 맹랑함을 관찰하시기를. 능수버들, 물억새, 부들의 유려한 몸짓에 매혹 되시기를.
그리고 나를 한 번 믿고, '조안 씨앗'도 몇 번 입안에서 굴려보시기를. '좋은 씨앗'으로 들리는 착각이 찾아오면, 다정한 가을볕 아래 아직 틔우지 못한 당신 안의 씨앗 하나가 움틀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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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광고 홍보인. 지금은 도서관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책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삶은 도서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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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만 3번 갔습니다... 신도 아름다워 찾을 '물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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