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앤세테라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가 조합된 '치매'라는 말은 그 언어 안에 이미 깊은 편견을 내재하고 있다. 치매를 '병리적 결함'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치매에 걸린 사람에 대한 부정적 '낙인 효과'를 유발한다. 현대사회가 만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치매는 격리와 관리의 패러다임 안에 위치한다. 인지 기능의 상실을 사회적 유용성 상실로 치환해 버리는 편견은 치매 당사자를 주체적인 시민으로 존중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용인한다.
치매는 단일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 기능이 저하되어 나타나는 일종의 '증후군(Syndrome)'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 질환 및 인자는 70~100여 가지에 달한다. 뇌신경 전문 학자들은 치매가 신경 퇴행성 원인, 뇌혈관성 원인, 대사성 원인, 유전적·생물학적 원인, 사회적 위험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현된다고 본다.
치매 담론에 대한 인문 사회적 관점의 전환이 돌봄의 현장에서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실증하는 기록이 있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삶 자체가 퇴행하는 것은 아니다. 이혜주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장이 쓴 책 <몇 번을 처음 만나도 좋은 사람>(2026년 5월 출간)은 '기억의 결핍'이 '인격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려 깊고 다정한 언어로 써 내려간다.
책에 등장하는 어르신들의 모습과 각양각색의 상황들이 하나같이 전부 '남 얘기' 같지 않다. 우리가 돌봄의 현장에서 매일 겪는 '일상다반사'다. 24년차 사회복지사인 저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어르신들의 일상다반사를 보듬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동행한다. 치매 증상이 얕으면 얕은 대로, 깊으면 깊은 대로 어르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매일을 공존 공생한다.
"저는 어르신을 찬찬히 살피고, 관찰하고, 보호자와 이야기하며 실마리를 찾습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치매 어르신의 두서없는 말 속에서, 한숨과 스트레스로 응어리진 보호자의 자조 섞인 이야기 속에서 말입니다. 실마리를 찾으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어르신 마음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여러 방법을 찾다 보면 반짝하고 길이 보입니다. (중략)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 이유가 없을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행동으로, 온몸으로 표출하지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르신들을 계속 알아가려고 합니다. 내가 듣지 못하는 말은 없는지, 절박한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꿈틀거리는 본심을 지나치지 않았는지 하면서요." (35~37쪽)
치매 어르신들은 다양한 'BPSD'(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치매의 행동심리 증상)를 보인다. 단순 기억 소실에서부터 망상, 배회, 불안, 우울, 폭력성, 공격성 등 모습은 다양하지만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행동이 곧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서 '폭력적인 사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방금 전에 한 말을 잊어버린다고 해서 '우매한 사람'으로 볼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면, 그 광활하고 깊은 내면의 심연까지 이해하는 건 간단치 않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에서 '실마리를 찾는다'는 표현이 가장 좋았다. 어르신들 앞에서 조심스럽고 망설이게 되는 마음이 느껴졌다. 섣불리 문제로 단정하기 전에 판단을 유보하고 전후 맥락을 살피는 태도,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되 하나의 결론이 아닌 다른 가능성도 열어 놓는 태도, 무엇보다 문제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 온전히 집중하려는 끈질긴 노력 끝에 우리는 비로소 작은 '실마리' 하나를 얻게 된다.
이는 다양한 형태로 발신하는 치매 어르신들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 주파수에 맞춰가려는 실천적 돌봄의 방법론이다. 우리는 이 상호적인 '돌봄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몇 번을 '처음' 만나도 반갑게 '안녕'을 건네는 사회
치매에 대한 인식 전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매 돌봄 정책의 초점을 개인이 아닌 사회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몇 번을 '처음' 만나도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치매안심사회'라는 말은 단순한 관리 예방적 관점을 넘어 치매에 걸려도 자기 삶의 주체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일본은 2023년 '공생사회의 실현을 위한 인지증기본법'을 제정했다. 법안 제정을 통해 치매를 개인의 질병 문제에서 사회 전체가 함께 살아가는 시민적, 인권적 문제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치매 당사자를 사회의 능동적인 주체로 존중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경제,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세대 간 연대를 촉진하고 치매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등 '공생 사회'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올해 3월부터 본격 시행된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취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의료-돌봄-주거-이동-식생활-관계-문화-사회 참여-자기 결정권' 등을 연결해 서비스의 통합을 넘어 '삶의 통합'을 실현하고, 치매에 걸렸더라도 '삶의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저자는 "언젠가 돌봄의 시간 앞에 서게 될 우리에게 치매를 이해하는 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안녕을 묻는 법을 건네고 싶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쇠약해지며 돌봄을 필요로 하는 취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돌봄의 시간 앞에 서게 될' 우리의 미래는 '공생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금 '현재'에 속하는 것이다.
몇 번을 처음 만나도 좋은 사람 - 기억을 잃어도 서로의 안녕을 주고받는 치매 돌봄 이야기
이혜주 (지은이),
앤세테라,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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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차 사회복지사가 치매 어르신의 말 속에서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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