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품격>은 막말과 비난이 난무하는 사회에 진정한 소통과 대화를 위한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이혁진
말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대화가 없으면 소통도 없다. 적절한 말과 행동은 의사소통뿐 아니라 인생살이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말이 너무 넘쳐 사달이 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은 네 챕터에 총 24개 꼭지에 걸쳐 말의 품격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례가 풍부하고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 술술 읽힌다. 책에는 말의 품격을 살릴 수 있는 지혜들이 차근차근 펼쳐진다.
요즘 말이 넘쳐나 피곤한 세상이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듣기는커녕 상대의 말을 가로막고 비난하거나 자기주장만 하는 걸 보면 자괴감이 들 정도다. 말의 품격이 실종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목받는 이유인지 모른다.
말의 품격을 보여주는 두 사례... 오바마 전 미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책에는 말의 품격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많이 인용된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상대를 존중하는 말과 행동으로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그의 포용력과 리더십이 나온다고 지적한다.
이민자 추방 문제를 연설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추방 반대를 외치는 청년 앞에서 오바마는 제지하는 대신 그의 입장을 존중하고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해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대통령은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바마는 '식사 정치'도 잘 활용한 대통령이다. 물론 식사는 형식이다. 밥을 먹으면서 진심 어린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가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과 개인적으로 식사하면서 난제를 푼 일화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바마는 우리가 자주 건네는 "한번 밥 먹자"의 의미를 현직에 있을 때 누구보다 적절히 실천한 사람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말의 품격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특히 충무공은 '경청의 대가'이다. 그는 서재 겸 집무실인 운주당(運籌堂)에서 부하는 물론 주민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지방 군사와 주민들의 말을 새겨듣고 이를 전술에 적극 반영한 것이다.
당시 운주(運籌)는 전략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순신 장군은 운주당을 병사들에게 개방하고 전략을 위한 경청하는 장소로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여기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 충무공은 난중일기에 "병사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말은 질문하면서 성장하는 대안학교
한편 말의 참뜻은 질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저자의 통찰이 눈길을 끈다. 일례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임동창씨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의 질문법을 소개하고 있다.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인 대안학교는 아이들에게 교실에 있기보다는 텃밭을 가꾸거나 자연을 벗 삼아 호흡하는 시간을 더 많이 제공하고 있다.
임 씨의 질문법도 독특하다. 수업시간에 두 학생이 사소한 일로 다툴 때 임 씨는 아이들을 혼내거나 둘이 화해토록 종용하지 않는다. 대신 두 학생을 지그시 바라보며 상대방의 기분과 태도에 대한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며 솔직한 답변을 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대안학교에 오기 전 학생들은 조금 잘못하면 회초리를 맞거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통제당했지만 여기서는 존중받는 것 같아 세상을 향해 굳게 닫은 마음을 열고 하나 둘 속마음을 열게 됐다는 것이다. 교사와 부모는 일방적인 생각이 아닌 상대를 존중하는 질문으로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적게 하더라도 '스몰 토크' 시도할 생각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끈 대목은 '스몰 토크'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오늘 가을 날씨가 좋지요!"처럼 일상의 가벼운 화젯거리다.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맺으려면 스몰 토크를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스몰 토크가 인간관계의 시작임을 강조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상대에게 협조를 구하거나 듣는 이가 무겁게 받아들이기 쉬운 '빅 토크'에 익숙했다. 은퇴 후에도 이러한 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말수는 적게 하더라도 스몰 토크를 자주 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젊을 때와 달리 말수가 없어지고 상대의 말을 듣는데 익숙한 편인데도 나중에 복기하면 후회할 때가 많다. 가만 보면 하지도 않을 말을 괜히 한 것이다. 과언무환(寡言無患 :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이 딱 들어맞는다.
모임과 만남은 말하기 위한 자리다. 하지만 말로 상대를 피곤하게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은 삼가야 한다. 흔히 "저 사람은 말본새가 왜 저래?"하며 씁쓸해하는데 실은 그것이야말로 거울 앞에 나를 비추는 질문이다. 내가 혹여 상대에게 거부감 주는 표현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며 나는 진정 말의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삶의 지혜는 말하기보다 듣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새삼 되새긴다. 오늘 저녁에 있는 모임을 앞둔 지금 모나지 않은 넉넉함으로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고르고 있다.
말의 품격 (양장)
이기주 지음,
황소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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