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주일미국대사관도 이 사건에 대한 일본 내의 의혹을 본국에 보고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1974년 12월 27일 자 주일미국대사관 보고서는 한·일 정부의 발표가 서로 달라 일본 내에서 의문이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한 뒤, 이를 문세광에 대한 신속한 사형 집행과도 연관시켰다.
이 보고서에서 주일미국대사관은 한국 정부의 수사 결과가 일본과 불일치한 것은 "문(文)에 대한 신속한 사형집행이 증거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는 믿음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 정부가 뭔가 숨기고자 사형 집행을 서둘렀다는 일본 내의 인식이 미국 정부에도 전해졌던 것이다.
한편 당시 일본 정부와 특권층을 괴롭히는 반체제 조직이 있었다. 동아시아 재벌자본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그것이다. 이 단체는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에 폭탄 공격을 가하고, 미쓰이물산·데이진중앙연구소·가지마건설·하자마구미 등도 공격했다.
또 한국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는 숨은 기능을 한다는 이유로 도쿄의 한국산업경제연구소도 공격했다. 이곳에 대한 공격은 한국 민중에 대한 연대감을 표시할 목적으로 1975년 4월 19일 단행됐다. 이 단체의 세계관 속에서는 한·일 지배세력이 한편이고, 한·일 민중이 또 다른 한편이었다.
바로 이 동아시아무장전선이 문세광의 한국 입국을 도운 인물과 접촉했다는 것이 일본 경찰의 뒤늦은 수사 결과다. 1975년 6월 3일 자 <경향신문> 7면은 <산케이신문> 보도를 인용해 "일련의 기업 폭파 사건으로 체포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일당이 반한(反韓)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재일한국인 조직과 8·15 사건으로 처형된 문세광과 문(文)의 여권 위조를 도와준 요시이 미끼코 등과 접촉을 했던 사실이 경찰의 조사에서 드러났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경찰은 문세광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접촉 사실에 더해 추가적인 자료도 찾아냈다. 이 단체 조직원인 아라이 마리코의 집에 문세광 사진이 있었던 점도 알아냈다.
위 <경향신문>의 6월 16일 자 7면에 의하면, 문세광은 고등학교 시절인 1969년부터 폭력혁명고교전선이라는 반체제 그룹에 가담했다. 반일무장전선과 컬러가 비슷한 단체 활동을 10대 때부터 했던 것이다.
문세광과도 접촉하고 문세광의 여권 위조를 도운 인물과도 접촉한 반일무장전선은 그가 한국에서 일을 벌이기 하루 전인 8월 14일에 히로히토를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히로히토가 탑승한 열차를 폭파하는 것이 이 단체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했다.
그날 터지지 못한 폭탄은 육영수 피격 보름 뒤의 미쓰비시중공업 폭파 때 사용됐다. 8월 14일에 일왕의 열차에서 폭탄이 터진 다음날에 서울 국립극장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훨씬 더한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육영수 피격을 북한과 조총련이 벌인 일로 몰고 가고자 애썼고, 일본 정부는 김대중-박정희 갈등 구도 속에서 이 문제를 부각했다. 이로 인한 양국의 갈등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끈 뒤에, 위와 같이 뒤늦게 일본 경찰 수사에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의 관련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정부는 기존 수사 결과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1974년 8월 15일의 그 일은 아직 사건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한·일 양국이 계속해서 규명해 나가야 할 과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8
홈:kimjongsung.com**오늘의주요뉴스:sisahistory.com**김종성역사아카이브:https://db.kimjongsung.com**제15회 임종국상**저서:제도밖의권력 영부인 리스크,아무도몰랐던독립운동이야기,친일파의굴욕,친일파의재산,반일종족주의무엇이문제인가,조선상고사,역사추리조선사,한국중국일본그들의교과서가 가르치지않는역사 등.
공유하기
육영수 피격 사건 1년여 뒤, 일본 경찰이 찾아낸 또 다른 '자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