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듣기
  • 생일날 정부청사 앞에서... "우리는 피해자도 될 수 없었다"

    [나의 사회주택 일기 4]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다

    등록 2026.10.03 13:11수정 2026.10.03 13:11
    0
    원고료로 응원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공공기관이 땅을 빌려주고, 민간이 건물을 지어 운영되는 주택을 뜻합니다. 녹색친구들은 6개의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운영하는 법인이며, 운영하는 사회주택 모두에서 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현재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3개 지점인 연남, 삼송, 대조 녹색친구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공공기관의 구제도 받지 못한 채 남겨져 있습니다. 한편, 공공기관의 사회주택 사업 지침서에는 정상적인 사회주택 운영이 불가할 경우 공공기관이 주택을 매입하여 대신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기자말]
    9월 22일은 내 생일이었다. 연차를 내고 아침부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생일을 맞이하여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생일이 될 것이 뻔했다. 나는 경복궁역 인근, 정부 서울청사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이웃들이 그 자리에 모였다. 얼마 전 결혼을 한 A씨는 남편과 함께 등장했고, 이전 주택에서 전세사기를 겪어 이 주택을 선택했다는 B씨도 자리에 함께했다. 이 주택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살았다는 C씨도, 일정이 생길 때마다 자리에 함께했던 D씨, 그 외 다른 이웃들도 그 자리에 모였다. 곧이어 우리를 항상 든든하게 도와주는 민달팽이 유니온과 세입자 114 대표님도 나타났다. 고양시에서 머나먼 연남에서도 몇몇 분들이 와주셨다.

    우리는 천천히 모여 몇 가지 피켓을 들었다. "우리는 피해자도 될 수 없었다." 삼송 세입자 14명 중 나를 포함하여 과반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리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연남, 삼송, 대조 녹색친구들 세입자 중 전세 피해자 신청이 받아들여진 세입자는 단 한 명도 없다. 9월 22일은 마침 국토교통부 홍지선 장관이 공식 취임한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국토부의 입장이 궁금했다.

     9월 22일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전세피해 대책위원회와 민달팽이 유니온, 세입자 114에서 함께한 기자회견 사진
    ▲ 9월 22일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전세피해 대책위원회와 민달팽이 유니온, 세입자 114에서 함께한 기자회견 사진 민달팽이 유니온

    나는 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비유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하며 바보같이 사기를 당해놓고 공공기관에 떼를 쓴다는 비난을 듣고, 전세 대출을 갚지 못해 떨어지는 신용 등급과 감당하기 힘든 이자 부담에 벼락 거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도 불안정한 주거 때문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은 일상이 무너졌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하필 날씨가 좋아 가을 무렵인데도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사람들은 걱정 하나 없는 사람들처럼 바삐 발을 움직였다. 이어지는 발언을 들으며 나는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지우려고 노력할 수록 선명하게 머리에 고개를 들고 떠올랐다. 지겨웠다.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벌써 이렇게 산 지도 반년이 넘게 흘렀다.

    우리는 여기 남겨져 버렸다.

    언론 보도를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문제가 되고 있는 녹색친구들 연남, 대조점을 9월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입자들에게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10월이 된 지금, 연남, 대조, 삼송점 중 해결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여전히 세입자들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웬수가 된 집에서 매일같이 전쟁 같은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이 끝난 줄만 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우리는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다.

     삼송 녹색친구들 건물 외벽. 세입자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가 보인다.
    ▲ 삼송 녹색친구들 건물 외벽. 세입자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가 보인다. 신민주

    내가 살고 있는 삼송점은 특히 더 심각하다. 삼송은 사건 초창기부터 공공매입 논의에서 자주 이탈해 있었다. 그 이유를 오랜 시간 동안 모르다가 세 주택의 사업 지침서를 모두 읽어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세 주택 모두 사회주택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공공기관이 주택을 매입하도록 되어있지만, 세부 항목의 차이가 있었다.


    삼송점은 다른 지점과 달리 건물 감정가액의 100%가 아닌 50%로 공공기관이 사업자로부터 주택을 매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공공기관에 매우 유리해 보이는 조항임에도, 사건이 터지자 HUG에서는 그 조항 때문에 공공매입을 결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자칫 그 조항에 따라 50%로 사게 되면 배임 등 법적 이슈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고는 세입자들에게 아주 복잡한 계산식들을 늘어놓으며 이해를 구한다고 했다.

    아직까지도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될 조항을 넣어놓고, 그 조항 때문에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쉬이 이해되지는 않는다. 사업을 시작하며 세입자 보호장치를 마련했다고 홍보하면서도, 사실은 공공기관이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기 싫어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조항을 넣어 두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업 설계부터 이러한 문제를 몰랐더라면, 그것은 공공기관의 무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해당 지침서를 만든 기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땅 주인인 HUG와 사업 설계 책임이 있는 LH는 모두 국토부 소속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토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밝힌 적도 없다. 최소한의 사과도, 유감 표현도, 해결을 위한 대책도,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으로 국토부에 묻고 싶다. 이런 방식의 사업이 청년과 서민을 위한 방법이냐고.

    장관에게 바라는 것.

    기자회견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회견 전, 홍지선 장관의 인사청문회 영상을 열심히 돌려봤다. 홍 장관은 20년 동안 무주택자로 전세살이를 하다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게 되었다고 말했다. 2년마다 이사를 다니는 것이 힘들었다며,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하겠다는 말도 했다.

    홍지선 장관에게 20년 동안의 무주택자 시절은 어떻게 남았을지 궁금하다. 청년 시절에 잠시 겪었던 고생 정도로 그 시기를 넘겨버렸을지, 아니면 정말로 무주택자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싸워 나가겠다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이왕이면 그때의 기억이 본인의 성장 스토리 중 하나로 쓰고 버리는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장관이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홍지선 장관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직 녹색친구들 주택에 살고 있다고. 집이라는 것이 고통의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이후에도 쭉 그렇게 살고 있다고. 이 문제는 사실 끝나지 않았다고. 우리를 한 번만 돌아봐달라고. 우리를 이해해달라고.

    홍지선 장관이 일부 청년들의 불쌍함 정도로 무주택자들의 설움을 취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에 홍 장관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장관이 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하고 싶다면, 이제 국토부가 입을 열어야 한다. 사과와 문제 해결,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외면하지 말라.
    #녹색친구들 #사회주택 #전세사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삼송점에 거주하는 입주민입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진 속에 담긴 진실... 이 대통령은 언제까지 침묵할 건가 사진 속에 담긴 진실... 이 대통령은 언제까지 침묵할 건가
    2. 2 유해진이 '북한상'? 함경북도 경흥에서 온 나는 무슨 상입니까 유해진이 '북한상'? 함경북도 경흥에서 온 나는 무슨 상입니까
    3. 3 대통령이 말한 '태양광 농사', 진짜 유행할까 두렵다 대통령이 말한 '태양광 농사', 진짜 유행할까 두렵다
    4. 4 '강연료 30만원'에 분노한 교수, 그 뒤에 가려진 '6만원'의 현실 '강연료 30만원'에 분노한 교수, 그 뒤에 가려진 '6만원'의 현실
    5. 5 '추·박·임' 검찰개혁 3인방에게(feat. 이재명 대통령) '추·박·임' 검찰개혁 3인방에게(feat. 이재명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