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허진호 감독이 1974년 8월 15일에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과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을 모티브로 연출한 작품이다.
하이브미디어코프
그러나 당시부터 한국 정부의 설명과 일본·미국 측 판단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일본 경찰 특별수사팀은 같은 해 12월 말 수사를 마치면서 문세광의 단독 행동에 무게를 두었으며, 북한이나 조총련이 사건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공개된 미 국무부 기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주한 미국대사관 역시 그해 9월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북한 또는 조총련의 직접적인 지령을 받았다는 한국 정부 발표를 독자적으로 확인할 증거가 없다고 보고했다.
미국 측은 동시에 박정희 정권이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 조총련 규제와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요구하며 강한 압박을 가하는 상황도 주시했다. 사건은 진상 규명을 넘어 한일 관계와 국내 반공 정치가 얽힌 외교·정치적 쟁점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물론 이 기록이 박정희 정권이나 중앙정보부의 개입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이를 증명하는 결정적 자료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사건을 둘러싼 의문 자체가 영화가 뒤늦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암살자(들)>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경찰과 기자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공식 기록과 남은 의문 사이를 추적한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뿐 아니라 유신체제 아래 언론 통제와 정보기관의 사찰, 반대세력 탄압이 이어지던 시대상도 함께 비춘다.
진실을 좇는 경찰과 기자는 수사와 취재 과정에서 권력의 압박과 정보 차단에 맞닥뜨리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영화가 묻는 것은 누가 방아쇠를 당겼느냐만이 아니다.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에 무엇이 사실로 기록되고, 무엇이 사라지며, 누가 그 경계를 결정하는가를 묻는다.
영화는 판결문도 연구논문도 아니다. 확인된 사실을 고의로 왜곡해 사실인 것처럼 제시해서는 안 되지만, 공식 기록에 남은 공백을 상상하고 질문할 자유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공식 기록을 부정하는 것'과 '공식 기록에 질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코퍼스 크리스티>, <암살자(들)>은 소재도 시대도 다르다. 그러나 세 작품은 사회가 '여기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선을 그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만난다. 종교는 신성함을 이유로, 국가나 사회는 권위와 공식 기록을 이유로 어떤 질문을 불온하거나 모욕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영역일수록 예술의 질문은 필요하다.
금기는 표현 하나를 막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을 물어서는 안 되는지까지 사람들에게 학습시킨다.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금기를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금기 때문에 사라졌던 질문을 다시 공론의 장으로 불러오는 데 있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불쾌함이 아니다. 작품이 거슬리고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작품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은 별개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는 사실과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는 주장은 구별해야 한다.
예술의 자유는 사실을 마음대로 바꿀 자유가 아니다. 그러나 이미 확정됐다고 여겨지는 믿음과 기록을 다시 묻는 자유는 포함한다. 상상을 사실로 속이지 않는 한 질문을 금지해서도 안 된다.
질문할 수 없는 진실은 진실이라기보다 금기에 가까워진다. 예술은 바로 그 금기의 문을 열어 다시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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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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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암살자(들)'까지, 금기를 묻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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