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7
댓글잘 읽었습니다. 먼저 신뢰할 만한 자료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위키피디아는 이른바 '붉은 깃발법'에 대한 오류를 확산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이거니와, 위에 올려주신 위키 자료에도 (1978년에 법개정으로 사라진) '적기조례'가 1896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잘못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영국의 월터 핸콕은 1833년 세계 최초로 증기버스를 운항하기 시작했지만, 이 실험은 1840년에 끝납니다. '붉은 깃발법'이 입안되기 15년 전의 일이지요. 도로 증기운송기관이 마차보다 높은 통행료를 내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버스사업을 접게 만든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과 안전 문제였습니다. 증기버스 역시 (이후에 등장하는) 증기트랙터와 유사하거나 더 심각한 문제(폭발위험, 비효율, 소음)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아래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증기버스는 고르지 못한 길에서 운항하기 어려웠고, 6마일(9.5km)마다 호수나 강에서 물을 채워넣어야 했습니다.
"The steam bus, a brand-new technology, encountered trouble on even slightly rough terrain. The steering was rough, and on early models drivers needed to stop and haul water from a nearby pond or stashed water source every six or seven miles to keep the steam going."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steam-buses-horse-carriages-fight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안전 문제였습니다. 이미 증기실린더 폭발과 오작동 사고로 많은 희생자를 냈던 터라, 승객들이 증기실린더와 객차가 붙어있던 버스를 기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940년부터 증기기관과 객차를 분리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그 결과로 진화한 것이 증기트랙터입니다. 증기트랙터라는 '동차'에 객차나 화물차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운항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증기트랙터는 기존 일체형 버스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통행료를 말씀하셨지만, 영국은 이미 17세기부터 마차의 종류, 말의 두수, 마차 바퀴의 크기에 따라 차등화된 통행료를 징수해 왔고, 증기운송기관에 대한 차등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얼마나 도로 면적을 많이 차지하고, 도로에 얼마나 큰 무리를 주며, 다른 운행수단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고속도로통행료는 자동차 크기와 종류에 따라 차등부과합니다.)
당시 영국의회가 증기운행수단를 바라본 방식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이 새로운 기술이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으니까요 (4페이지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https://play.google.com/store/books/details?id=KLGO3hMOWdYC&rdid=book-KLGO3hMOWdYC&rdot=1
'영국의 규제가 내국 자동차 산업을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의 부당함은 기사도 다루고 있습니다만, 높은 통행세나 '붉은 깃발법'과 상관없이 영국 증기자동차는 20세기 초까지 계속해서 만들어졌고, 계속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물과 연료를 동시에 실어야 하며, 고압의 보일러를 가동시켜야 하는 증기기관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결국 사라지고 말지요.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전기자동차와 가솔린 자동차였습니다. 이 현상은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나 미국 등 다른 증기자동차 강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포드도 증기자동차를 만들었지만, 한계를 깨닫고 결국 이 분야에서 발을 떼고 맙니다.
결국 증기자동차의 소멸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증기를 사용한 외연기관의 기본적 한계때문이었습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만, 열린 마음과 신뢰할 만한 자료를 가지고 토론하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사붉은 깃발법이 한국에서 고생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