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이 자결한 이후 피묻은 칼을 상청 마루방에 걸어두었는데, 이듬해인 1906년 5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나무 네 줄기가 마루의 피 묻은 곳을 뚫고 올라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영환의 충정이 혈죽(血竹)이 되어 결국 '절죽(節竹)'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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