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학생대표들은 굳이 승동교회로 갔을까?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각종 사회단체에 대한 압박이 심해진 가운데 비교적 종교 활동은 자유로웠고, 김원벽 등이 승동교회 교인이었기에 낙점됐던 것은 아닐까? 특히 승동교회는 3.1운동의 시발지인 탑골공원에서 걸어서 채 2~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4 / 6